01.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2017) - 김은주 사유는 오직 남성만의 전유물이기에, 남성만의 영역으로 규정지어진 철학이라는 학문에서 여성은 내내 배제되어 왔다. 생각하고, 그래서 의문을 갖고, 그리하여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던 여성들은, 이질적이고 옳지 못한 존재로서 박해당하고 삭제되어왔다. 이 책은 20세기 '여성 철학자'들의 '철학'을 소개한다. 문장이 다소 어렵지만, 스피박의 지적처럼 "쉽게 읽히는 글의 기만성 (p.64)" 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개된 여성 철학자 여섯 명은, 기존 기득권의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언어로 삶을 이해하고 인간을 바라보며 세상을 논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삶, 죽음을 긍정하고, 기존 철학이 단정지은 단일성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스피박은 (...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in 정동극장, 2022.02.02 7시 남명렬 크리스토퍼, 정재은 베스, 오정택 다니엘, 임찬민 루스, 이재균 빌리, 박정원 실비아. 쉽지 않을 극임을 각오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불편한 언어들에 1막 내내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평범하고 일상적인 어휘보다는 다소 극단적인 형태의 현학적인 문장들이 범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비아냥과 비난을 관심과 애정이라 착각하는 이 작디작은 '부족' 공동체의 언어적 대사들과 비언어적 행동들에 배려가 부재하여 폭력적이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으나 존재하고 있지 않은 빌리와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서 폭발하듯 터져버린 2막의 클라이막스가 마땅하고 후련하고 속상했다. 태어날 때부터 ..
지킬앤하이드 in 샤롯데씨어터, 2022.01.30 7시 류정한 지킬/하이드, 선민 루시, 조정은 엠마. 류지킬/류하이드 자열일곱. 류선조 자셋.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완벽한 공연이었다. 17번의 관극 중 손에 꼽히게 좋은 날들이 있었지만, 그중 단 한 회차만 다시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이날을 고르겠다. 류지킬의 미모, 풍성한 음색과 변주, 귀족미 풍기는 노선과 결말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이 극을 보며 지킬의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고 그 여운에 젖어서 커튼콜은 물론 귀갓길 내내 눈물을 뚝뚝 흘린 것도 처음이었다. 지금껏 기다려온 지킬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구나. 이날의 류지킬은 연구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반듯하고 단정한 상류층 지식인으로, 모든 행동에 예의와 기품이 자연스럽게 묻..
리차드 3세 in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22.01.22 6시반 황정민 리차드 3세, 장영남 엘리자베스 왕비, 정은혜 마가렛 왕비, 임강희 앤, 윤서현 에드워드 4세, 박인배 버킹엄 공작 등 전배우 원캐. 황정민 배우의 오이디푸스 연극을 무척 짜릿하게 관극 했던 기억이 생생하여, 다시 돌아온 리차드 3세라는 고전 또한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오이디푸스 후기) 셰익스피어의 작품다운 우아하지만 날카롭고 현학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대사들이 적당한 번역과 각색을 거치며 독특한 매력을 뽐냈다. 그 대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배우들의 톤이 이야기를 한층 쫀쫀하게 만들었다. 특히 객석을 향해 수차례 독백을 하는 황정민 리차드의 대사톤이 어찌나 몰입을 끌어올리는지,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관객들은 그저 휘어잡힐 수밖에..
언더스터디 in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022.01.22 3시 박훈 해리, 강기둥 제이크, 정연 록산느. 극에 무대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을 찾지 못하는 관객이 되었고, 언더스터디라는 신선한 소재가 호기심을 끌어서 표를 잡게 됐다. 무대석은 무대 위에 있는 객석이라 생각했건만, 언더스터디의 무대석은 돌출무대 양 옆의 낮아지는 계단에 의자를 가져다 둔 형태였다. 이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극의 클라이막스 즈음부터 허리가 아팠다. 해리가 혼자 서서 객석에 말을 건네는 첫 장면 도중, 당신한테만 얘기해준다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가에 양손을 모으고 소근대는 이벵석에 당첨되어 특별하긴 했다. 반대쪽 무대석 앞쪽 관객에게는 병사7로써 창을 맡겨두기도 했다. 커튼콜에 알차게 그 창을 수거해서 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