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in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2022.04.23 3시 김소향 프리다, 리사 레플레하, 임정희 데스티노, 허혜진 메모리아. 티몬스테이지. 딤프 초청작일 때부터 관심 있던 극이었고, 2년 만에 만나게 됐다. 마타하리부터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까지, EMK의 창작뮤지컬은 모조리 취향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쟁쟁한 여성 배우들만 잔뜩 나오는데 극이 취향이 아닌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객석의 반응을 끌어내며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레플레하 때로는 사랑스러운 첫사랑으로 때로는 달콤한 죽음으로 프리다의 선택을 종용하는 데스티노, 목소리 톤의 낙폭이 인상적이었던 평행세계의 프리다 메모리아, 그리고 온몸을 불사르며 하나의 생을 살아내는 프리다까지. 무대를 꽉꽉 채우는 네 사람의 열기에 두 시간 내내 ..
죽음의 집 in 두산아트센터 Space111, 2022.04.20 8시 황상호 역 이강욱, 이동욱 역 이형훈, 박영권 역 심완준, 강문실 역 문현정. 반복적이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하루들이 누적되며 무기력과 무의욕이 만성적으로 굳어가고 있다. 원인이야 차고 넘치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아 막연하던 차에, 운 좋게 시간이 났고 타이밍 맞게 매진극의 표를 구했다. 죽음의 집에 방문해보면 죽음을 마주하고 생을 직시하며 삶을 채워갈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얻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의 무력감은 더 깊고 무심함은 더 짙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하나씩 소중하게 늘어놓는 일상의 찰나들이 애틋하다기보다 도리어 숨통을 조여왔다. 무대 위의 언어가 무대 밖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일깨우고 있음..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in 드림아트센터 4관, 2022.04.08 8시 송상은 로리 시국 때문에 펀홈과 스핏을 전부 놓쳐버린 연뮤덕이기에, 아무리 혐업이 바빠도 이 여성 1인극만큼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봐야만 했다. 그래서 일부러 체력과 시간을 내어 대학로를 찾았고, 덕분에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다. 16년 레베카 이후로 처음 만난 송상은 배우는 예상보다 더 완벽하게 90분을 채워낸다. 호흡, 대사톤, 목소리, 행동거지 그리고 눈빛까지, 오롯이 삼키고 온전히 소화한 이야기 그 자체로 무대 위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토록 다채롭게 인물을, 감정을, 공간을, 경험을 묘사하고 표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상상하게끔 만드는 멋진 배우라니! 가벼운 웃음과 무거운 찰나의 완급이 텍스트를..
내가 멜론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in 스튜디오76, 2022.03.26 6시 강애심 윤희, 강보민 숙자.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끄는 극이었는데, 평도 꽤나 좋아서 폐막 직전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고 왔다. 오랜만에 앉은 객석은 소극장답게 불편했으나, 중간중간 암전이 많고 관객의 웃음도 잦아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맛깔 나는 말투와 자연스러운 행동거지와 익숙하고 평범한 상황 덕분에, 마치 옆집 사는 숙자네와 함께 수다를 떠는 듯한 편안한 기분이었다. 때론 유쾌하고 때론 답답한 대화가 점층적으로 집중을 높였고, 중간중간 과거의 다른 장소로 시점을 옮기며 부드럽게 주의를 환기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좋아서 재미있었지만, 극 자체만 놓고 보면 만족보다 아쉬움이 앞선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입장의 두 여성이..
곤투모로우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2022.02.23 7시반 강필석 김옥균, 김재범 한정훈, 박영수 고종, 신재희 이완. 요정옥균, 범정훈, 슈종. 필범슈 페어막. 요범슈 페어막으로 초연을 자첫자막 했었던지라, 이왕이면 재연도 같은 페어의 페어막을 보기로 했다. (초연 후기) 초연 당시 국정농단으로 하수상한 시국이었기에 "갈 수 없는 나라"를 부르짖는 이야기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5년이 지나 재연을 만나고 있는 지금 이 시국 또한 어지럽기 그지없어서 씁쓸하다. 내가 나로서 당당할 수 있는 조선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초연 후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초연 때 불호가 많았기에 재연은 패스할까 했으나, 극이 별로여도 믿고 보는 배우들이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리라는 확신을 안고 객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