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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터디

in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022.01.22 3시

 

 

 

 

박훈 해리, 강기둥 제이크, 정연 록산느.

 

 

극에 무대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호기심을 찾지 못하는 관객이 되었고, 언더스터디라는 신선한 소재가 호기심을 끌어서 표를 잡게 됐다. 무대석은 무대 위에 있는 객석이라 생각했건만, 언더스터디의 무대석은 돌출무대 양 옆의 낮아지는 계단에 의자를 가져다 둔 형태였다. 이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극의 클라이막스 즈음부터 허리가 아팠다. 해리가 혼자 서서 객석에 말을 건네는 첫 장면 도중, 당신한테만 얘기해준다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가에 양손을 모으고 소근대는 이벵석에 당첨되어 특별하긴 했다. 반대쪽 무대석 앞쪽 관객에게는 병사7로써 창을 맡겨두기도 했다. 커튼콜에 알차게 그 창을 수거해서 손에 들고 인사하는 훈해리 디테일이 재미있었다.

 

 

 

 

이 극은 프란츠 카프카의 미공개 작품을 기반으로 만든 브로드웨이 연극의 리허설 도중에 생긴 이야기다. 평범한 리허설이 아니라, 언더스터디 리허설. 작품 하나에 이천이백만불을 받는 영화배우 브루스의 언더인 제이크는 얼마 전 히트를 친 액션영화에 출연한, 작품 당 삼사백만불을 받는 배우다. 그리고 그 제이크의 언더로 무명배우인 해리가 캐스팅됐고, 제이크와 해리가 무대감독 록산느와 함께 언더 리허설을 진행하게 된다. 고작 "트럭에 타!" 라는 대사 하나로 그런 무의미한 영화가 일주일만에 9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을 경멸하는 무대배우 해리와 자신의 언더가 무명배우라서 기분이 나쁜 제이크가 서로를 비아냥 대며 갈등한다. 한때 배우였으나 생계 때문에 무대감독이 된 록산느는 자신과 안좋은 과거가 있는 해리의 급작스런 등장에 당황하고 짜증스러워 하면서도 이 리허설을 무사히 끌고나가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인물은 셋이지만, 이름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대스타 브루스, 약에 취해 헛짓거리를 하는 콘솔의 바비, 총괄 연출로 보이는 딘 등. 대사로써만 등장하지만 각각의 캐릭터가 확실하여 이야기를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게, 잦은 웃음은 현실의 씁쓸함을 근간으로 하기에 유쾌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특히 결말의 현실감은 이 극의 소재와 지나치게 맞아 떨어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상처 받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현실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반응 또한 마땅하게 느껴져서 이야기의 구성에 완성도가 생겼다. 아랫입술과 턱을 바들바들 떨며 감정을 드러내는 배우들의 감정 연기 또한 몰입을 도왔고.

 

 

 

 

이건 여자들이 했어야 하는 역할이라며 같은 역할과 대사와 장면을 완전히 다르게 선보이는 정연록산느의 연기가 무척 좋았다. 누누히 얘기하잖아! 여성들이 연기하면 훨씬 매력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섹시하게 연기할 수 있다고! 록산느 덕분에 이 작품이 시대와 어울리게 살아 숨쉴 수 있었고, 그래서 이 관극이 한층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주지 못하는 작품에 참여하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역할은 어떠한가.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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