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실 in 자유극장, 2021.09.04 3시 정재은 A, 황영희 B, 손지윤 C, 지우 D. 삶의 전부였던 공간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 주류로부터 내밀리고 제약당하여 끝내 이 공간만이 내 위치라고 스스로 제한을 걸어버렸던 이들이기에, 두려움과 울렁증을 이겨내고 기어코 그 선을 제 발로 넘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벅차게 눈부셨다. 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살아내고 있는, 그리고 살아갈 이들의 삶이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건넨다. 현실을 비극으로 남겨두는 대신 희극으로 승화시키며 알을 깨고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과 갈등과 괴로움이 유의미하다. 이 작품을 남배 버전으로 각색하여 올린다는 연출의 의도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독재 정권에 함께 저항하던 남자 동..
2021 마이클리 & 라민 카림루 콘서트 in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2021.08.27 7시반 마이클 리, 라민 카림루. 2021 마라콘 첫공. 게스트 윤형렬, 김보경. 마라콘이라니! 라민 카림루 배우를 다시 볼 수 있다니! 바다 건너 옆나라에서만 마저스 라민유다의 JCS 콘서트를 볼 수 있음에 슬퍼하고 있었는데, 선물처럼 두 번째 마라콘을 선사받았다. 덕친 언니 덕분에 오피 1열에서 아주 가깝게 배우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다만 프롬프터 모니터 두 대가 중블 오피 1열 양쪽 사이드에 심한 시방을 야기한 점이 아쉬웠다. 노래가 많고 중간중간 멘트도 미리 정해놓는 콘서트이기에 프롬프터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무대 셋업할 때 반드시 확인하고 사전 공지했어야 한다고 본다. 배우들 인사만 촬영이 가능하다..
일리아드 in 예스24스테이지, 2021.08.26 7시반 김종구 나레이터, 이기화 하프 뮤즈. 일리아드 자셋자막. 윱나레의 무대는 담백하고 정갈하다. 작은 책상 위에 술 두어 병과 라디오가 놓여있고, 그 라디오에서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무대 왼편 뮤즈의 하프 옆에 투구가 걸려있다. 무대를 서성이며 동전을 툭툭 바닥에 떨어뜨리던 윱나레는, 공연을 시작한다고 말하는 어셔를 잠시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흘러나오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을 입모양으로 망연히 따라부르던 그가 라디오를 끄고 일어선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겁디 무거운 발걸음과는 사뭇 다른, 과하게 밝은 얼굴로 지나치게 발랄한 목소리로. 얼굴의 온 근육을 사용해 아이처럼 웃는 그 역시, 전쟁을 온 몸으로 겪어낸 소년병이었다. ..
해적 in 드림아트센터 1관, 2021.08.25 7시반 김이후 루이스/앤, 김려원 잭/메리. 해적 자첫자막. 2019년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온 이 창작뮤지컬을 이제서야 만나고 왔다. 첫만남 이후로 믿보배가 된 김려원 배우와 이번에 자첫을 한 김이후 배우의 여배페어를 선택했는데, 두 사람이 구축한 캐릭터와 각각의 관계성이 재미있었다. 특히 려잭과 이후앤 각각의 개성이 뚜렷해서 '해적 노동요' 부터 기분 탓이야' 넘버까지의 모든 순간에 홀딱 반했다. 극 중 이름이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창작진의 애정이 담뿍 묻어있음이 여실히 보였고, 그만큼 각각의 인생들이 더 매혹적으로 반짝거렸다. 담백하고 단순한 전개 위에 매력적인 인물들을 얹어내며 해적들의 시대를 열렬한 사랑으로 그려낸 이 극이 사랑스럽지 않을 리..
일리아드 in 예스24스테이지 2관, 2021.08.20 7시반 황석정 나레이터, 김마스터 기타 뮤즈. 일리아드 자둘. 동일한 텍스트가 연출과 배우 노선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니.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침낭을 뒤집어쓰고 누워있다가 부스스 일어나 사과를 깎아 베어 무는 웅나레와 객석의 관객에게 타로카드를 하나 골라보라 권하고 의미를 풀어주는 석정나레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헬라어로 서두를 시작한 석정나레는 대사에 고저를 넣어 리듬감 있게 흐름을 타고, 지친듯 무심한듯 입을 뗀 웅나레는 청자를 끌어들이고 설득하면서 점차 끓어오른다. 다채로운 색감을 덕지덕지 엮어내는 석정나레와 무채색과 핏빛만으로 채워내는 웅나레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본질을 노래한다. 석정나레는 예언자다.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