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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실
in 자유극장, 2021.09.04 3시
정재은 A, 황영희 B, 손지윤 C, 지우 D.
삶의 전부였던 공간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 주류로부터 내밀리고 제약당하여 끝내 이 공간만이 내 위치라고 스스로 제한을 걸어버렸던 이들이기에, 두려움과 울렁증을 이겨내고 기어코 그 선을 제 발로 넘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벅차게 눈부셨다. 존재하는 모든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던, 살아내고 있는, 그리고 살아갈 이들의 삶이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건넨다. 현실을 비극으로 남겨두는 대신 희극으로 승화시키며 알을 깨고 나오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과 갈등과 괴로움이 유의미하다.
이 작품을 남배 버전으로 각색하여 올린다는 연출의 의도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독재 정권에 함께 저항하던 남자 동기들이 다 잡혀가고 군대 가서 간신이 대사 하나 없는 남자 역으로 몇 번 무대 위에 올랐다는 담담한 푸념이, 여자에게 주어진 역할은 맨 가녀리고 비극적이기만 해서 재미없다는 뼈 있는 짜증이, 비로소 여자 역할을 해본다는 자조 어린 기쁨이, 대체 어떻게 "남성" 배우들을 통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 <갈매기>의 니나는? <세 자매>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그마저도 천편일률적인 자리를 위해 모든 걸 내던지며 살아남으려 애쓰는 "여성" 배우들의 이야기를 왜 남성들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려고 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기울어진 쪽에 더 높은 받침대를 보장하는 것이 "평등"이다. 제한된 역할과 입지의 여성 배우들에게 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공연계의 "젠더프리"라는 "평등"이다. 가뜩이나 적은 여성 캐릭터들을 굳이 각색까지 해서 남성에게 제공하는 건 젠더프리라 불릴 자격이 없다. 평등이 아니라 기득권의 탐욕일 뿐이다.
좋은 배우들 덕분에 인물들이 더 생동감 넘치게 살아 숨쉰다. 이들이 연기하는 고전적이고 정석적인 <세 자매> 무대를 보고 싶어질 정도로 '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한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이라는 연극의 3요소가 모두 있으니, 이 배우들의 무대를 더 자주, 더 쉽게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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