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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플라이
in 예스24스테이지 1관, 2022.05.25 8시
김지현 선희, 홍지희 정분, 김도빈 노인 남원, 신재범 청년 남원.
오래간만에 편안한 힐링극을 보러 대학로를 찾았다. 넘버 맛집이라는 소문을 듣고 갔는데, 돌림노래로 시간차를 두고 이어가는 소절이 여럿 있는 점이 독특했다. 각기 다른 가사를 동시에 부르는 듀엣 부분도 꽤 많았고, 후반부에 리프라이즈도 잘 활용했다. 리프라이즈 활용 잘하는 뮤지컬 너무 좋아. 무대도 예쁘고, 종종 객석 벽면까지 넘어오는 조명들도 동화처럼 사랑스러웠다. 다정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구성과 전개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다만 닥터후나 마블 같은 SF 판타지물을 사랑하는 덕후이기 때문에, 남원이 말하는 시간여행의 논리 모순을 짚어내는 선희의 대사 한 소절이 없었으면 마음이 파사삭 식을 뻔했다. 타임 패러독스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주어진 상황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행동에 바로 초점을 맞춰 줘서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가 창작뮤지컬에서 너무나 흔하게 사용되는지라, 조금만 헛디뎌도 진부할 수밖에 없다. 지금 생각나는 극만 해도 <명동로망스>, <홀연했던 사나이>, <마마돈크라이> 등등 너무 많은 걸.
"좁고 좁은 세상을 깨고
내가 만들어갈 내일"
마냥 행복한 얼굴로 현실적이지 않은 거대한 꿈을 꾸며 반짝이는 정분의 얼굴이 너무나 투명하고 해맑았다. 뭐든 꿈꿀 수 있으니 뭐든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은, 그 견고하고 절대적인 긍정이 의외로 위로가 되더라. 잊고 지냈던 나의 꿈. 두 발을 땅에 딛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오면서 점점 흐려져버린,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나의 꿈. 문득 고개를 돌려 지금껏 걸어온 여정을 추억하며 미소를 머금게 되는 그 꿈. 지금의 스스로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햇살 같은 꿈 그 자체였다, 정분이는.
첫 등장의 궁시렁부터 범상치 않았던 지현선희는 안정감 있게 극을 끌어나갔다. 노인과 청년의 모습으로 휙휙 변하는 남원의 말과 행동이 자칫하면 산만해질 수 있었는데, 적절한 타이밍의 추임새와 비언어적 몸짓 등을 통해 맛깔나게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줬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첫 넘버 렛미플라이 음색도 너무 좋았고, 듀엣에서 명징하고 깔끔하게 더하는 목소리도 매력적이었다. 여행 넘버에서 무너질 듯 휘청이며 "나를 봐" 라고 말하는데 순간 알돈자가 생각나서 울컥했다. 전체적인 연기 디테일이 군더더기 없이 완벽해서 편안했고, 또남원의 장난 애드립에 "내가 복수할거야" 하면서 궁시렁거리는 것도 귀여웠다. 또남원 칠순잔치 선희야 넘버 최고였고, 재범남원은 스위니 때 보고 배우자둘이었는데 역시 목소리 시원시원하니 좋더라. 지희정분은 배우자첫이었는데 캐릭터 착붙이라서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Let me fly to the sky
Let me fly to the moon"
연뮤덕 인생 처음으로 받아본 폴라! 극 중 소품을 적극 활용한 지희정분 폴라가 특히나 마음에 든다. 덕분에 극을 기억할 수 있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하지만 폴라 증정을 티켓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으로 무분별하게 남발하고 있는 대학로 중소극 제작사의 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몹시 비판적이다.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 판에서 폴라 이벤트가 상당히 자주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자정하고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커다란 달을 보고 떠올릴 극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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