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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2022 공정 - 웰킨
in 두산아트센터 space11
고윤희, 김별, 김정아, 라소영, 민대식, 백종승, 부진서, 송영주, 송인성, 안민영, 이선주, 이세영, 이정미, 이하영, 하지은.
생경한 이름 때문인지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던 작품인데, 첫공 이후 평이 좋아서 검색을 해보니 몹시 좋을 것이 분명하여 산책을 시작했다. 연이 닿았는지 매진 회차들 가운데 잔여석 1개가 드디어 눈에 들어왔고, 하다 보니 관대 회차를 보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미리 질문을 취합한 관대라고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질문을 받아서 조금 당황했다. 미리 공부 좀 해갈걸. 리딩공을 보신 분이나 작품에 참여하신 듯한 평론가 분, 연극을 많이 보시는 게 분명한 분들이 깊이 있는 질문들을 여럿 해주신 덕분에, 아무 생각 없이 객석에 앉아있던 나 역시 극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고민하게 되며 고민하는 만큼 인식과 사유가 넓고 깊어진다는 것을 이날 관극을 통해 절실하게 느꼈다. 근래 힘들다는 이유로 생각을 멈추고 단순하게만 살고 있었기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늘려나가야지.
관대에서 '웰킨Welkin'이라는 극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sky 또는 heaven을 뜻하는 고어라고 한다. 이를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원작자가 고어를 사용함으로써 현지 관객들의 생경함을 의도했던 것처럼 한국 관객에게도 굳이 이해가 되는 단어로 번역하기보다는 원어를 그대로 살려 원작의 의도를 남겨두는 것을 선택했다고 한다. 연극은 텍스트가 많은 만큼 번역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스레 깨달았다는 점이 스스로 충격적이었다.
언어에 대한 관대 질의가 또 있었는데, 사라의 언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극 중 "비행기"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긴 했으나 크게 의문을 갖지 않았는데, 그 부분을 콕 짚어 질문해주신 관객분 덕분에 조금 더 고민을 하게 됐다. 번역가님의 말씀에 따르면 원작에서도 사라의 언어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훨씬 현대적이어서, 그를 그냥 이 시대의 여성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극 중 시대상을 뛰어넘는 사라는 단순히 '미친 여자'라는 호명을 뛰어넘는 것임을 깨달았다. 관극하는 동안 사라에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의 버사를 덧입히며 시대의 억압으로 인해 미쳐버린, 그리하여 배척되고 삭제되는 여성이라는 정의만 내렸다. 그래서 원작자의 의도와 창작진의 고민을 듣고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배우분들 너무 좋아서 기억하려고 박제. 촬영이 가능해서인지 커튼콜에서 기립을 나만 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리지 역의 하지은 배우님이 먼저 이 작품을 발견하고 연출자님과 번역가님을 초빙했다는 이야기를 관대에서 듣고 감탄했다. 관극하면서 리지의 단단한 캐릭터와 적합한 대사톤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극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높은 배우였음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납득이 되더라. 덕분에 이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진해정 연출가님 또한 이전에 재미있게 본 <로테르담>의 연출가라는 사실을 늦게 알았는데, 역시 좋은 창작진은 계속해서 좋은 극을 알아보고 만드는구나 싶더라.
다양한 몸과 나이와 관점과 가치관과 이해력과 판단력을 지닌 여성들이 각자의 경험들을 끝없이 쏟아내고 논쟁하고 동의하고 비판하며 살아 숨 쉬는 장소. 그 장소가 물도 먹을 것도 불도 허용되지 않은 차디차고 먼지투성이인 법원의 구석진 방이라는 점이 지독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이 부분 역시 관대에서 연출가님의 답변 덕에 더 깊이 있게 다가왔는데, 온전한 평결을 요구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금지시킨 법정, 즉 권력의 제약이 여성들을 얼마나 더 어렵게 만드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지점이 두산인문극장의 올해 테마인 "공정"과 맞닿아있다는 설명이 크게 와닿았다. 극 중 "공정"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음에도 (대신 "공평"이라는 단어는 두어 차례 등장한다) 다양한 맥락에서 공정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음을 다시금 곱씹어보게 됐다.
"사람들은 신을 원망하지 않아.
대신 원망할 여자가 있을 때는
절대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2막 초반, 20년 넘게 입을 닫고 있던 사라의 독백 장면이 있다. 단순히 개인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만 이해했기에 삭제를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장면인데, 관대에서 연출가님의 답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해당 장면은 2막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감각의 전이"의 시작점이라는 것이다. 극 중 인물들의 공통된 경험인 출산을 길고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하나의 경험이 다양한 경험으로 확장되도록 의도했다는 점이 무척 놀라웠다. 이후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상상하고 바라던 남자가 나타났다는 샐리의 경험을 듣는 여성들의 얼굴이 각기 다른 색감으로 형형색색 물드는 장면을 보면서 감정과 생각의 전이를 느꼈었기에, 그 이전 장면의 연출 의도를 뒤늦게야 깨닫고 놀라웠다.
또한 사라가 아들이 악마에게 저주를 받았다며 두려워하다 못해 입을 닫아버린 이유 또한 맥락이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두렵고 생경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산후우울증의 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아직까지도 자주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연출님은 이러한 감각 또한 존재할 수 있음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명확히 이해할 수 없어서 존재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장면들에도 다양한 의도가 존재하고 있음을, 이번 관대를 통해 알게 됐다.
개인적으로 이 극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여성들의 각기 다른 몸을 긍정하는 부분이었다. 샐리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모인 11명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낸다. 가슴이 아픈지, 배가 붓는지, 식욕이 없어졌는지, 아니면 뜬금없는 것이 먹고 싶어졌는지, 여성들은 "임신"이라 명명되는 하나의 상태를 겪으면서도 각기 다른 개인적인 경험을 하고 이를 서로 존중한다. 어떤 여성은 젖이 초기부터 넘쳐흐르지만, 다른 여성은 출산 후에도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이는 여성 개개인의 경험과 생각과 감정과 느낌을 부정하고 "필연적으로 남성보다 덜 이성적이고 불완전한 존재" 라고 여성을 규정짓는 남성 권력의 무지한 폭력과 명확한 대비를 보인다.
여성의 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남성 의사가 직접 개발한 차가운 금속 도구는 그동안 여성의 몸과 경험이 얼마나 홀대받았는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샐리의 행동이 "자궁의 병" 때문이라며 "히스테리컬"한 미친 여자를 규정짓고, 범죄를 행할 당시가 월경 기간이었다면 무죄 판결도 가능할 것이라는 시혜적이고 무감각한 언어가 여성은 남성보다 하위에 있는 2등 시민이라 단정한다. 2시간 가까이 쏟아냈던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과 판단과 의견은, 고작 10분 남짓 등장한 남성 의사의 권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린다. 수십 년간 경험으로 쌓아온 산파의 지식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고, 그로 인한 사회적 편견은 여성들조차 남성의 의견에 더 귀 기울이게 만드는 불공정을 지속적으로 공고화한다.
프롤로그와 수미쌍관을 이루는 에필로그는 원작에 있지만 초연 NT에서는 생략되었다고 한다. 한국 창작진은 에필로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원작의 장면을 살렸다고 한다. 76년 주기로 돌아오는 헬리혜성을 올려다보는, 동일한 자리에서 동일한 행위를 하되 현대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들. 다음 혜성을 바라보며 이 자리에 서있을 여성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던 리지의 비명 같은 외침이 이명처럼 들려온다. 혜성이 돌아오는 주기조차 계산할 수 있는 시대에서, 여성의 몸은 어디까지 이해되고 있으며 여성의 생각은 얼마나 존중받고 있는가.
그럼에도 여성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신의 뜻이 있으니 기도를 드린다며 여성의 경험을 외면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있는 시대에도, 리지와 같은 여성들은 끊임없이 소리 높여 정의를, 공정을, 존엄을 외치고 있다. 그 음성은 작지만 분명하게 세상을 흔들고 있으며, 공정하지 못한 세상을 묵인하지 않으리라 선언한다. 다양한 여성들 개개인을 긍정하는 이 작품을 보다 많은 여성들이 만나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하나둘 리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를, 나아가 그 목소리를 들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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