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소년이 온다 (2017) - 한강 광주. 전쟁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던, 일방적인 학살. 피 흘리며 쟁취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그 자체인, 80년 5월의 광주. 믿고 싶지 않은 역사를 잘 알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작가의 비유와 우회적 서술을 거치며 불시에 툭 터진다.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을 응시하며 죽음을 곁에 두는 아이. 죽음을 마주하고 죽음에 흩어지는 아이. 남겨진 채 죽음을 기억하고 곱씹는 아이. "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p.89)" 살아남는 것이, 홀로 삶을 유지한다는 것이 더 고통스럽지만, 죽음 앞에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지독히 평범하고 위대한 인간. 검열로 검게 칠해진 희곡은 무대에 오른다. 무언극처럼 입모양으..
01.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2014) - 리베카 솔닛언어에 대한 논의, 단어의 존재에 대한 의미가 중요하다. "만일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나 감정이나 상황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말하지 못한다. (p.189)" 이 책의 저자가 맨스플레인(Mansplain) 이라는 단어를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지적하는 지점은 동일하고 명백하다. 권위주의, 힘, 신뢰성의 유무 등에 대한 지적 말이다. "자신이 잉여라는 생각과의 전쟁이고, 침묵하라는 종용과의 전쟁이다. (p.16)" 라는 말과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p.220)" 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현 상황을 정의한다.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성의 평등을 인정할 수 없는 기득권의 논리라는..
내 희망이 문을 닫는 시각에 너는 기어코 두드린다나의 것보다 더욱 캄캄한 희망 혹은 절망으로 (...) 네 절망이 문을 닫는 시각에 나는 기어코 두드린다너의 것보다 더욱 캄캄한 절망 혹은 희망으로 - 최승자 중 시발점이 된 이명행 성추행 폭로 이후, 약 열흘 간 공연계에서 터져나오는 성폭력 미투 증언들을 마주하며 가슴이 내려앉았고 분노에 목이 메였고 그 모든 감정이 담긴 눈물이 차올라 넘쳐흘렀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metoo 와 #withyou 운동의 진정한 가치를 비로소 온전히 깨달았다. 아픔과 고통의 경험을 소리 내어 말하고 글로써 공유하는 이 행위야말로, 외롭고 고독한 자학의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있던 더 많은 목소리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가장 거대한 응원이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머리로는..
01.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 정지훈 제2차 세계대전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역사와 그 안의 인물들, 기업들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후반부 저자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과할 정도로 열러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정보와 기술, 노하우 등을 개방하여 공유함으로써 "개방형 혁신 (Open Innovation)" 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길임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개인이 자신의 정보를 넘겨주는 걸 "선택" 할 수 있다고? 아무리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려 해도 단 한 번의 클릭 실수만으로 선호도, 관심, 주소, 취향 등 모든 정보들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에 처하는 게 현대인이다. 물론 개개인은 '생각보다' 자신의 정보를 팔아넘기는데 무감하긴 하지만, 결코 그 ..
역시 작년에 비해서 독서량이 줄었다. 내년 목표는 집에서 멀지 않은 구립도서관을 뺀질나게 드나드는 것으로 정했다. 읽고 싶은 책 목록만 늘어나고 실제로 읽은 책의 양은 늘지 않는 이 상황을 반드시 개선하고야 말리라ㅠㅠ!! 01.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p.58)" 총성과 죽음으로 가득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그렇게 외쳤던 네 사람은, 진부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현실' 이라는 '담' 에 가로막혀 각자의 반지를 포기한다. "이런 변절은 (...) 배신이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살을 의미한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묻어야 했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선 마음을 죽여야 했다.(p.135)" 신념이자 이상 그 자체였던 신발을 태우는 연기가 청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