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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오브 포겟팅
in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2023.12.14 4시
 


 
김지철 톰, 전혜주 소피/이자벨라, 마현진 마이크, 강은나 엠마.
 

우란에 올라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는데, 공연장이 커진 후에야 객석에 앉았다. 익숙한 형식의 극이 아니어서 신선한 마음으로 100분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작품, 너무 반갑고 매번 고맙다.


분류는 연극이지만, 대사는 거의 없다. 오로지 배우들의 몸연기와 표정, 소품과 조명 및 음악 연출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행위들이 되풀이되는 시각적 반복도 집중을 높이지만, 그 행위에 부여되는 배경음 및 효과음의 청각적 변주가 전율을 끌어낸다.


특히 테이프가 늘어지듯 느릿하게 부풀어오르는 소리와 동시에, 멈춰있는 배우가 녹아내리듯 자세와 표정을 느릿하게 풀어내는 장면. 기억이 망가지고 왜곡되어 뒤틀리는 찰나가 시청각 모두를 자극하며 극적인 연출을 선사했다.




배우들의 합이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극이어서 커튼콜에 자동으로 일어서게 되더라. 끊임없이 의자와 책상을 옮기고, 끊김 없이 서로의 동작을 받쳐주고 받아주고 의지하고 기댄다.


행거 두 개에 잔뜩 걸려있는 옷걸이의 다양한 옷 하나하나가, 한 개인의 인생 속 유의미한 기억들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마지막 장면의 시원한 연출 뒤, 덩그러니 남겨진 빈 행거가 허망하고 씁쓸했다.


비틀리는 추억들을 붙잡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써도, 끝내 인간의 힘으로는 붙들어 놓을 수 없는 잔인한 현실이 먹먹했다. 그럼에도 남은 자들은 그 기억들을 딛고 애써 웃으며 새로운 날을 마주할 수밖에. 그것이 축복이자 저주인 인간의 본성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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