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튜링머신

in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 2023.11.19 3시

 

 

 

 

이승주 미카엘 로스 외, 고상호 앨런 튜링. 

 

 

개막 후 실관람 평이 무척 좋은 데다가, 흥미롭게 관극했던 연극 <그을린 사랑>의 신유청 연출님 작품이라고 하여 마곡 나들이를 결심했다. 전날의 찐한 덕톡으로 많이 피곤하여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지만, 흡입력 있는 두 배우의 연기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전개 덕분에 간신히 의식을 붙들었다.

 

 

이승주 배우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1인 다역을 확실히 구분하여 표현하는 표정과 연기가 안정감 있었다. 고상호 배우는 아주 오랜만에 만났고, 서술할 때의 톤과 튜링으로서의 톤이 바뀌는 연기가 신선했다. 퇴장이 거의 없이, 110분 내내 무대에 서서 수많은 대사를 쏟아내는 열연에 감탄이 나왔다. 두 배우의 결이 유사하여 몰입이 편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워낙 재미있게 봤던지라 극의 내용은 어렵지 않았다. 4면이 객석인 한정된 공간의 무대 공간은 매력적이었다. 우란에서 올라왔던 여러 극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무대가 이 극장에서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다만, 마이크의 부재로 배우들의 음성 크기가 고르지 않게 들리는 점은 아쉬웠다. 특히 자리마다 아주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하더라. 내 자리는 B구역 1열이었는데, 극을 전체적으로 보며 자첫자막하기 좋았다.

 

 

그리고 소품 활용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손모양 전화기라니요. 전화하는 장면이 적지 않은데다가 중요한 후반부 장면에도 등장하는데, 배우들이 손으로 전화기를 만들어 귀에 대고 대사를 치는 모습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인생은 방정식이 아니니까요."

"그건 아직 입증되지 않은 거네요."

 

 

근래의 위태로운 세계정세 때문에 더욱 뼈아프게 고민하고 있는 평화이기에,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또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지도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그곳에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최종의 승리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포기되어야만 하는 생명이란 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흐름 안에서 스러지는 목숨과 가치와 영혼은 인류 전체를 갉아먹을 뿐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언제까지 망각하고 외면할 것인가.

 

공지사항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