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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in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23.12.07 7시반

 


 

이창용 토마스, 신재범 앨빈. 스옵마 칠연 자첫. 솜 자여덟. 용톰, 째앨.

 
 
항상 백암에서 만났던 이 극이 다른 극장 무대 위에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초연부터 쭉 앨빈만 해왔던 이창용 배우가 이번 시즌에서는 앨빈이 아닌 톰이란다. 무려 10년 동안 200회가 넘도록 2인극 속 하나의 배역만 연기했던 배우가 다른 역할을 맡다니! 창앨을, 솜을 사랑했던 관객으로서 놓칠 수 없었다. 사랑했다는 증거는 포스팅 하단의 링크 참고.


어쩌다 보니 관극 하루 전에 급하게 표를 찾았는데, 오블 1열 통이 떠있길래 냉큼 실결했다. 단상 시방을 걱정했으나 다행히 가리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사블이라 등짝미가 없진 않았으나, 두 배우가 끌어안을 때 한쪽 표정이 아주 잘 보여서 좋았다. 연강홀 무대가 백암보다 크고 밝아서 안쪽 책방에 앉은 앨빈 표정이 잘 보이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객석 시야보다 낮은 무대 덕분에, 디시짓 넘버에서 째앨이 "이게 다야" 하면서 바닥의 종이들을 바라보는 표정이 생생하게 보이는 것도 벅찼다. 나비 넘버를 부르는 용톰의 뒤편으로 벽면의 나비 날개가 포개지듯 겹쳐지던 눈부신 찰나를 한동안 잊을 수 없으리라.




창앨을 알고 있는 관객이기에, 용톰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동작 한 개가 한층 깊이 있게 다가왔다. 용톰에게서 창앨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앨빈을 너무 잘 아는 토마스의 사소한 디테일이 자꾸 눈에 밟혔다. 예를 들면 마지막 넘버 눈천사에서 앨빈이 누웠던 그 자리를 정확하게 응시하다가 입가에 살짝 미소를 걸며 "바지 속까지 다 젖도록" 하며 그의 말을 되짚는 손동작과 표정 같은 것들 말이다. 앨빈이 이 장면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토마스라니. 톰을 사랑하다 못해 그의 입장이 되어보는 앨빈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용톰은 상당히 건조한데도 은근히 여리고 말랑했다. 앨빈과 너무나도 닮은 순수함이 돋보이던 어린 용톰은, 점차 닳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건조하게 메말라버린다. 걘 필요 없었다고 말하던 용톰의 버석이던 감정은, 아빠의 송덕문을 끊김 없이 쏟아내는 앨빈을 보며 둑이 터지듯 일순간에 쏟아져버린다. 끝내 "잘해요" 라고 툭 내뱉어버리는 그의 떨리던 눈빛이 여즉 일렁인다.
 
 

"언젠가 이런 얘길 쓰는 게 내 꿈이죠"

 
 
"늦었잖아" 라는 앨빈의 애정 어린 타박으로 시작되는 그 이야기를, 톰은 차마 이어가지 못한다. 그가 단상으로 돌아와 이를 악문 채 반복하는1876 넘버의 이 가사를 듣는 순간, 문득 깨달음이 스쳐갔다. 솜이라는 이 극이야말로, 토마스가 앨빈에게 헌정하는 마지막 이야기가 아닌가. 그와 함께한 순간들의 조각을 모아서 얽히고설킨 하나의 온전한 글로 완성시킨 것이 바로 이 극, 스옵마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용톰은 앨빈의 죽음에 사로잡혀 같이 순장당할 것 같은 톰이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앨빈의 송덕문을 낭독한 뒤, 그의 흔적을 긁어모아 자신 나름대로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시 펜을 잡을 톰이었다.
 
 

"내 몸의 힘은 공기의 흐름일 뿐
그 작은 날개로 시작돼"

 
 
용톰의 1876 넘버와 나비 넘버가 너어어무 훌륭했다. 어린아이 목소리로 시작한 1876 넘버의 후반부에서 힘 있고 단단한 어른 목소리로 바뀌는 찰나가 어찌나 짜릿하던지. 나비 넘버에서도 강물과 바람의 목소리를 두텁고 신뢰감 있게 바꿔내는 디테일이 너무 좋았다. 나비의 날개를 펼 때마다 오른쪽 팔부터 옆으로 쭉 뻗으며 날갯짓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벅차게 아름다웠다. 자신을 그저 티끌이라 표현하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바다를 꿈꾸는 작은 나비의 기대감과 두려움과 설렘과 호기심이 넘버에 고스란히 실렸다. 공기를 흔드는 진동으로 전해지는 용톰의 노래로 아름답게 변하는 세상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그가 바로 작지만 위대한 나비 그 자체라는 생각을 했다.
 
 

 
 

"오지 마"

 
 
이제 떠나 넘버를 부르던 째앨이 힘 있게 던진 종이들이 무대 상단의 바를 강하게 쳤고, 그중 한 장이 딱 걸려서 시야에 계속 밟혔다. 용톰이 차오르던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앨빈에게 오지 말라는 한 마디를 던지는 순간, 그 종이가 팔랑이며 앨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 기막힌 타이밍에 또 눈물이 터졌다. 처음으로 이 작은 마을을 떠나 세상을 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앨빈의 마음이 종이와 함께 바스러지게 만드는 선고.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눈싸움은 역시 경력직을 이길 수가 없더라. 순발력 있게 몇 발은 피하던 째앨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용톰이 정확하게 조준한 눈덩이에 안면을 정확하게 강타당했다. 낑낑거리며 아파하는 티를 내던 째앨이 얼마나 귀엽던지. 엎드린 채 파닥이며 기어들어가는 째앨을 따라갈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는 용톰은 안쓰럽기보단 흥미진진했다. 앨빈으로서 10년 동안 쌓아온 업보 청산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두 배우가 아직 덜 친해서인지 둘공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합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느낌은 없었다. 덕분에 이전 관극과는 다른 느낌의 솜을 만날 수 있긴 했지만, 2인극인 만큼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 유연하게 맞물리리란 기대를 해본다.
 

 
"그래 알아 뭔가 아쉽지
정답을 바랐겠지"

 

앨빈과 톰, 두 사람의 관계에서 떠나는 이는 항상 톰이었다. 그러나 톰을 영영 홀로 두고 떠나버린 건, 결국 앨빈이었다. 눈천사 넘버가 끝나고 마지막 포옹을 하는 두 사람의 위치가 반전된 모습에 마음이 찢어졌다. 자신의 인생을 가득 채워버린 사람이 훌훌 떠나버려서 혼자가 되어버린 톰에게 언제나 감정을 이입할 수밖에 없다. 모든 영감의 원천이자 천재성을 지닌 또라이 앨빈보다는, 그 영감을 긁어모아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써 인정받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토마스에게 더 가깝기 때문에. 영원히 진실을 알 수 없는 "끝, 앨빈의 이야기"를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야 할 톰의 남은 삶이 눈에 밟힌다.
 
 
너무나 행복하고 충만한 관극이었다. 가득 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잠도 잊고 가볍게 후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결국 솜 카테고리도 새로 만들었다. 15년도에 자첫한 이후로 매 시즌을 꼭 챙겨본 작품이라니, 짘슈만큼 애정하고 헤드윅만큼 애틋한 극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 시즌 엉톰도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이 극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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