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in 백암아트홀, 2016.01.12 8시 공연
솜은, 역시 자둘부터였구나. 시작부터 펑펑 우는 관객을 보면 무대 위에서 힘이 빠진다던 이번 시즌 어떤 배우의 인터뷰가 무색하게도, 앨빈의 그 한 마디부터 백스테이지의 애교에 이르기까지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미 극을 알기에 대사 하나 몸짓 하나가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비록 통으로 날려버린 장면이 있다 해도, 몇 넘버가 살짝 쓰릴해도, 정말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와, 역시 관극은 이 맛이지.
조강현 토마스, 김종구 앨빈. 엉톰, 윱앨. 엉윱 페어. 이 두 배우의 캐릭터가 딱 맞는다. 순수하지만 일침을 가하는 차분함을 지닌 윱앨과 현실에 물들어 버렸지만 아직 내면에 장난기 가득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엉톱의 조화가, 극 전체의 균형감을 잡으며 관객을 울렸다가 웃겼다가 다시 울렸다. 이 페어, 사랑이다.
※스포가득※
앨빈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는 톰. 송덕문을 적기 위해 백지를 앞에 두고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자신이 놓친 아주 작은 것이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의 앞에 앨빈이 새하얀 천사처럼 짠 나타난다. 늦었잖아. 아빠의 장례식에 온 톰에게 건네는 한 마디. 그 말에 갑자기 시야가 희뿌얘졌다. 톰은 애써 변명하고 도망치려 해보지만 끈질기게 따라붙는 말. 늦었잖아. 신경질적으로 못하겠다 소리치는 톰이 원망스럽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하나씩 과거의 '사실'들을 따라가는 톰, 그 옆의 앨빈. 엉윱 노선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 윱앨이 마냥 순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이를 먹으며 나름의 성숙함과 현실성을 차곡차곡 기저에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굳이 세상이 정해 놓은 틀에 맞춰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옆에 톰이 있기 때문에, 본래 성격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평범해지라'는 톰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답답하기보단 반짝거렸다. 자첫 때는 나와 매우 비슷한 톰에게 더 감정이입을 했는데, 이번 관극에서는 앨빈에게 훨씬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윱앨의 깊은 캐릭터성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둘이라서 이해가 더 잘 됐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앨빈이 톰에게 묻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주 뼈있게 들렸다. 분명 책망의 기색은 전혀 없는 담담한 단어들인데, 폐부를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들며 마치 내가 톰인 것처럼 죄책감과 자괴감, 자격지심이 휘물아쳤다. 그 모든 게 너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중요하지 않아. 보지 않은 걸 알 수는 없어. 앨빈의 말에 뭔가 훅 치고 들어왔다. 결국 이 이야기는 톰이 앨빈과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스스로 고민하고 아픔을 마주하며 완성해낸 거였구나. 저기 앨빈은, 앨빈이지만 앨빈이 아니었구나. 이 방향의 감상은 다음 관극에서 조금 더 집중해볼 생각이다. 이번에는 앨빈의 이야기가 지독하도 아팠으니까. 극의 시작에서 차르륵 걷혔던 하얀 커튼이, 다시 똑같은 소리를 내며 닫힌다. 그 앞의 단상에서 톰이 입을 뗀다. "오늘 우리는 앨빈 캘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가 앨빈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고톰은 밝은 표정으로 앨빈이 그랬던 것처럼 입모양으로 송덕문을 읊는 장면이 이어졌는데, 엉톰은 이 말을 끝으로 암전이 됐다. 아마 엉톰이라면 입가에는 웃음을 띄운 채 아프게 아프게 한 문장 한 문장을 내뱉었을 것 같다.
오지마.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영화 멋진인생의 조지와는 다르게 자신은 좁은 마을에서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벅차고 부푼 기대를 안고 행복함에 잔뜩 젖어있던 앨빈에게 들려온 그 말. 앨빈, 너 지금 무슨 생각해? 그걸 꼭 물어봐야 아니, 이 바보야. 아버지의 송덕문을 말하는 앨빈의 몸짓 하나하나가 애틋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온 마음을 다해 떠나는 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 죽으니 좋은 말만 해주는 이유는, 모든 것을 無로 만들어 버리는 '죽음'이 그 사람의 행복한 기억들만을 강조해 살려내기 때문이다. 아마 그게 죽음이 건네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선물이겠지. 과연 그 선물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감 또한 따라오지만 말이다.
엉윱 모두 딕션이 괜찮은 편이어서 더욱 좋았다. 두어마디를 끊으며 호흡하는 발성을 좋아하진 않지만, 앨빈의 넘버에는 딱 맞는다. 잔잔한 반주 위에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의 멜로디를 얹어야 하는 이 극의 넘버들은, 정말 어렵다. 톰의 넘버는 호흡의 길이를 유연하게 조절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앨빈은 대사 수준의 많은 가사에 적절히 강약조절을 하며 임팩트를 줘야 하는 부분이 많다. 이런 류의 노래가 취향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특유의 유의미한 가사들이 참 좋다. 아, 그리고 조명. 나비 조명 마음에 안 든다. 완전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색감이 너무 어정쩡하달까. 나비 그려진 벽지 무늬도 색감도 마음에 안들고..ㅎ.. 책방 조명, 특히 눈속의천사에서 급작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밝아지는 그 장면의 조명이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무대가 너무 어두워... 배우 개인의 포인트 조명이 살짝씩 흔들리는 경향이 있던데 소극장이라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배우 움직임에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고정이 안되어서 흔들림이 있는 거라 살짝 거슬렸다. 음향은 2층이라 소리가 작은 편이었지만 아주 깔끔했다. 시야는 확실히 2층 중블이 좋다. 표정이 아예 안 보일 정도의 거리는 아니지만, 어차피 펑펑 쏟는 눈물 때문에 배우들 표정 보는 건 불가능했다. 자첫은 2층이 더 좋을 것 같다. 1층 뒤쪽 사이드가 S석이었다면 재관람 할인을 감안하고 몇 번 더 보기에 부담이 덜했을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기억나는 소소한 디테일들. 과장스럽게 앨빈을 책망하는 엉톰의 목소리. 레밍턴 선생님 넘버에서 엉톰이 입냄새 난다는 제스쳐를 취하니까 복수인듯 아닌듯 괴상한 오리꽥꽥 포즈를 하는 윱앨. 한숨 푹 쉬더니 더 과장스럽게 더 우스꽝스럽게 똑같이 따라하는 엉톰. 최고의 선물 넘버에서 책방 손님들이 아빠의 제안을 거부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책상에 엉덩이 살짝 걸치고 다리를 꼰 채 도도하고 섹시하게 노래하는 윱앨ㅋㅋㅋ 어깨를 확 좁히고 멍충미 돋는 표정을 짓고 있어 너무 웃기고 귀엽던 열한살의 엉톰. 첫 번째 이별 넘버에서 나뭇가지를 던질 때 과외 좀 받아보라며 장난치다 기대오는 엉톰을 피한 윱앨 덕분에 크게 휘청거리고 민망한듯 야이자식이~ 라고 하던 엉톰. 그런 그를 와락 안아버리는 윱앨. 눈송이 가열차게 던지던 엉톰. 그나저나 두 배우 모두 종이를 너무 앞쪽으로 날려서 객석으로 엄청 떨어졌다. 커튼콜 때 구깃해진 종이 한 장을 몇 번이고 던졌다 잡았다 하는 엉톰에게 종이 뭉치를 건네는 윱앨. 함께 마지막으로 흩뿌리는 종이. 음감님께 애교를 떠는 두 배우에게 마지막까지 박수를 보내며 여운을 즐겼다. 커튼콜까지 눈물이 쏟아질 일이냐고..ㅠㅠㅠㅠ
그래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할 만큼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너무나도 후련하다. 보통 이렇게까지 눈물을 쏟으면 리뷰 역시도 한숨 반 울컥함 반으로 적곤 했는데, 지금은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이 페어의 세미막만 잡아놓고 그 관극으로 자막하려 했는데, 크게 후회했을 뻔했다. 일상이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주중관극을 노려봐야겠다. 왜 제일 바쁜 연말연초에 어울리는 극인가요..ㅠㅠ 이렇게 솜덕이... 되어갑니다....
'공연예술 > Story of My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2019.01.16 8시) (1) | 2019.01.17 |
---|---|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2017.02.03 8시) (0) | 2017.02.04 |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2016.12.20 8시) (0) | 2016.12.21 |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2016.12.16 8시) (0) | 2016.12.17 |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2015.12.01 8시) (2) | 2015.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