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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in 백암아트홀, 2015.12.01 8시 공연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줄여서 스옵마, 통칭 솜. 초연재연을 거친 '솜덕'들이 많다는 것도, 그들이 애타게 삼연을 기다려왔다는 것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내가 삼연 첫공에 백암에 앉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일단 조강현 배우의 엉톰으로 자첫한 뒤에 회전문 여부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왜 첫공의 이 덕덕한 분위기에 둘러싸여 함께 두근거리고 있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것도 인연이려니, 하며 첫만남이지만 처음 만나는 것 같지는 않은 이 극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왔다.  





와, 이 티켓 대체 얼마 만이야ㅋㅋ 핵구려ㅗ 백암이라서 헤드윅 지뢰를 각오했는데, 당시에 앉아본 자리 근처가 아니어서인지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대가 깊어서 K열이 조금 멀었다. 대충 배우들 표정은 보일 정도였다. 아, 시작 몇 분 전에 갑자기 뒤에서 대화소리가 나길래 잠깐 뒤돌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여서 조금 놀랐다. 솜 배우분들이 바로 뒷열에 관극을 하러 오셨더라. 만난 적이 있는 조강현 배우만 바로 알아보고 나머지 분들은 잘 가늠이 안됐다. 배우분들이 다들 패딩을 입고 와서 극 중간중간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이제 겨울이니 감안해야 하는 소음이겠지ㅠㅠ 배우가 관객석에 등장했는데도 별 반응 없이 시큰둥했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어제 백암은 덕들만으로 가득했던 게 확실하다ㅋㅋ   





고영빈 토마스, 이석준 앨빈. 고톰, 석앨. 석고페어. 



첫 공연이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완벽한 두 사람의 감정선. 따뜻하고 정겨운 책방으로 꾸며진 무대. 사랑스런 효과음과 함께 액자틀 모양으로 들어오는 조명. 팔락거리는 종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예쁜 대사들. 그리고, 음악.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며 말랑거리면서 포근한, 마치 동화같은 이야기가 눈앞 가득 펼쳐졌다. 이 극을 그토록 애태우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팬들이 왜이리도 많았는지 이해가 된다. 마냥 행복하고 마냥 즐겁기만 한 이야기는 결코 아님에도, 극 전반에 잔잔히 깔려 있는 사랑과 애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줬다. 



※스포주의※



초중반부터 눈물이 조금씩 차오르더니 앨빈의 넘버 '계속 살아가' 부터 끊임없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가슴을 후벼파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날카로운 한 구절의 대사가 세차게 꽂히는 것도, 가혹하고 서글픈 운명 같은 것도, 이 극에는 없다. 하지만 마치 잔잔한 수면을 천천히 한 방울 한 방울 두드리는 여우비처럼,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고요하던 마음에 약하지만 선명한 파동을 일으키며 감정을 톡톡 건드려주는 느낌을 받았다. 앨빈이 던지는 평범하지만 뼈있는 말들 그리고 톰이 부르는 '나비'의 구절들이, 무언가를 가만히 건네줬다. 나비의 작디작은 날개짓처럼.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극에 치인 건 아닌데, 마치 오랜 친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편안함과 안정감 때문에 이 극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듯하다. 



다만 아쉬운 건 노래. 역시 난 노래를 중시하는 인간이었다. 배우분들이 노래를 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중간중간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한 노래에 가슴이 절로 두근대는 부분도 존재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도입부나 고음이 이어지는 부분에서 살짝 쓰릴하니까 몰입하던 감정선에 미약한 금이 생겼다. 심각하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지만, 끝까지 젖어들어가는 여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만족스럽지가 않아서ㅠㅠㅠ 이런 소소한 불만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며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극을 사랑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이야기. 과거의 유령인양, 톰의 환상인양 곁에서 떠나질 않는 앨빈이 존재하는 세상. 이 극은 그리 직관적이지 않다. 하지만 전개가 빠른 것도 아니고, 그저 하나씩 하나씩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따라가다보면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다. 현실로 돌아와 송덕문을 고민하는 토마스에게 비추는 조명을 조금만 더 확연히 구분되게 해준다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그 '현실'이 어둡고 무거우니 조명도 어두운 게 당연하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기억들과는 선명한 차이를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한. '눈 속의 천사들'을 포함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무대가 전반적으로 어두운 편이긴 하다. 따뜻한 색감이지만 어쩐지 어두침침한 구석도 있는 조명. 책방의 이미지에는 잘 어울리긴 하지만, 조명전환의 타이밍도 그렇고 그쪽 연출을 더 고민해주면 좋을 것 같다.



뒤쪽 무대가 참 예쁘고, 배우들이 좌우로 움직이거나 드러눕는 동선도 많은데다가, 종이를 허공에 흩뿌리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 때문에, 무대 전체를 볼 수있는 자리가 괜찮을 듯하다. 백암은 E열까지 무단차이기 때문에, F열 이후로 앉아야 함. 앞쪽 좌석은 단차도 없고 지그재그도 별로 아닌듯하고 무대까지 낮아서 여러모로 시야방해가 심각해보인다. 앨빈은 주로 왼쪽에 톰은 오른쪽에 자주 가는데, 이런 거 생각 안해도 될 정도로 두 배우가 열심히 돌아다니기 때문에 왼오는 그리 중요치 않을 것 같고. 음향은 깔끔하고 좋았다. 헤드윅은 락뮤라서 좋은 자리가 아니면 스피커의 웅웅대는 소음으로 소리가 엄청 뭉개졌는데, 솜 음향은 아주 깨끗했다. 



수 천 개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가득하고, 그 중의 하나를 골라 꺼내 쓰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부럽던지. 그 이야기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지, 과연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일일까. 정말 필요했던 것은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쯤은 배려하며, 이별하더라도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 소소한 내면의 믿음 정도 아니었을까.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앨빈을 바라보는 톰. 떠오르는 영감. 톰의 뮤즈는, 글의 원천은 앨빈이었고, 앨빈의 삶의 근원은 톰이었다. 고작 두 사람 간의 관계지만, 각자의 우주를 담고 있는 삶 두 개의 만남이 그리 단순할 수 없음을 아주 세련되게 보여준다. 2006년에 캐나다에서 초연을 한,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지닌 극인데도 마치 '고전'과 같은 깊이감을 주는 이유가 바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방식에 있다. 보면 볼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생각할 것이 많아질 극이다. 흠. 역시 자둘 이후가 걱정되네. 





이번 주말에는 뮤지컬을 먼저 만난 뒤에 보기 위해서 미루고 아껴(...)두던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 저 영화 맞음. 멋진 인생. 항마력 하나는 자신 있어서 꽤나 재미있게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ㅋㅋㅋㅋㅋ 무대 위의 류톰이 새삼 궁금하다. 고톰은 석앨처럼 순수함을 지녔지만 점차 사회에 물들어가면서, 결국 내면에 침잠해있던 앨빈에 대한 열등감으로 분노하고 초조해하고 절망하는 토마스였다. 냉정해보이지만 여리고 애처로운 고톰. 반면 류톰은 꽤 나쁜 남자였다고 하던데, 그 노선 역시 궁금하다. 올위송에서 확인했던 조강현 배우의 날카롭고 예민한 이미지가 토마스에 투영된다면 어쩐지 치일 것만 같기도 하다. 화려한 정상에 서있다가 무너지며 후회하고 절절하게 아파하는 캐릭터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라 해서 말이지ㅋㅋ    





극을 보고 백암을 나서는 순간 하얀 눈이 고요히 떨어지고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뮤지컬. 아직 쥐고 있는 표는 없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걱정이 되면서도 즐겁다. 올 한해는 참 유난히도 좋은 극이 많다. 그냥 입덕한 해라서 그런걸가?ㅎㅎㅎ 12월은 이것저것 열심히 보면서 아주 알차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다. 꽤나 다작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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