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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in 백암아트홀, 2016.12.16 8시 공연





조성윤 토마스 위버, 이창용 앨빈 켈비. 엉톰, 창앨. 창조 페어 둘공. 사연 솜 자첫.



이렇게 빨리 솜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작년에 이어 올 겨울에도 솜과 함께 한다는 것이 무척 기쁘고 행복하다. 근래 꽤 지치고 힘들어서, 마치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이날의 관극을 손꼽아 기다렸다. 조금만 버티면 솜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아늑한 색감의 책방과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흩뿌려지는 빛바랜 종이들을 온 시야 가득 담아낼 수 있어, 하며 견뎠다. 그리고 역시, 솜은 솜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기억 속 모습 그대로 무대 위에 온전히 펼쳐지는 따뜻한 이야기. 전석 기립박수가 쏟아질 정도로 좋은 공연이었고, 객석도 무척 몰입도가 높아서 더욱 행복했다. 



※스포있음※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암전. 어두운 통로에 멈춰 선 엉톰이 "후우," 하는 한숨을 내뱉고는 저벅저벅 걸어가 무대 위 오른편 단상에 서서 어렵게 첫 마디를 꺼낸다. 그 순간 뭔가 울컥 치고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 모두가 순식간에 극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 그래, 나는 지금 앨빈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로 돌아온 거였지. 마치 톰처럼. 마음처럼 나오질 않는 송덕문 때문에 고민하던 엉톰은 사실만, 아는 것만 써보려 한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왼쪽으로 차라라락 소리를 내며 걷히고, 책상 위에 예쁘게 앉아있는 새하얀 앨빈이 보인다.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밝고 따뜻한 음성.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는 엉톰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백지인 종이를 보고는 소리 없이 장난기 가득한 깔깔거리는 제스쳐를 취한다. 모르겠다는 엉톰의 말에 책방을 가리키며 말한다. 책처럼 이렇게 다 정리해놓지 않았냐고, 여기 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우리 둘 모두의 이야기가 전부 다 있다고. 이게 '보는 것을 다 기억하는 인간' 중 하나인 톰이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 이다. 창앨은 노래를 가장 잘하는 앨빈이자, 완벽한 딕션을 가진 배우여서 너무 좋았다. 노선 자체는 지난 1월, 3연에서 만났던 윱앨이 더 취향이긴 하지만, 창앨의 이 커다란 장점이 너무나 강력하다. 고작 두 번의 관극을 통해서는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웠던 빠른 템포의 대사들과 높낮이를 확실히 구분짓는 넘버 소화력이 감정선을 더 자극했다. 이 극이 지닌 콘텐츠가 정확하게 전달이 되어서 복선이나 연결고리 등이 더욱 확실하게 와닿았다. 



"이제 해 볼까?"



해밍턴 선생님 이야기를 꺼내 첫 추억을 공유한 앨빈이 묻는다. 지난주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를 본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하고 따라하는 엉톰을 향해 말한다. "늦었잖아," 실제로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팩트에 대한 가벼운 지적, 그보다 더 또렷한 반가움. 하지만 이어나가지 못하는 톰이 등을 돌리자 앨빈은 또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내 든다. 최고의 선물. 여기였나, 관객들이 미리 알고 비실비실 웃으니까 엉톰이 "그래요," 하고 애드립 한 다음에 "우린 열 한살이었습니다!" 하고 표정 싹 변하며 폴짝 뛰며 앨빈 옆에 무릎 꿇었다. 회상을 하며 연령대가 변하는 것도 그렇지만, 막 웃기다가 확 진지해지는 갭이 상당히 커서 배우들이 집중을 하지 않으면 티가 확 날 수밖에 없는 극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극을 보고 있는 관객 역시 널뛰기 수준으로 급변하는 감정선을 따라잡으며 웃음과 슬픔과 행복과 아픔이 공존하는 '삶'에 대해 보다 강렬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래서 더 힐링이 되는 극이기도 하다.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네 인생처럼 웃고 우는 모든 감정이 죄다 담겨있어서 극에 몰입하며 같이 호흡하다 보면 위로 받는 기분이 든다.  





고등학생이 된 후 할로윈 때 너무나 소중한 어머니의 가운이 강으로 던져져 흘러가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창앨의 뒷모습이, 무척 쓸쓸하고 아팠다. 세상으로부터 배제당한,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고독한, 그래서 절망적인 뒷모습. 다리 위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창앨이 위태위태해 보인 것도 그 소외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계속 살아가. 피캐온의 가사를 처음으로 정확히 제대로 들어봤는데,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프고 애처롭고 외로웠다.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 뒤 도시로 오는 게 어떠냐는 엉톰의 제안에 과할 정도로 신이 나서 방방 뛰어다니는 창앨의 모습이 지독하게 잔인했다. 그 결말을 알고 있으니까, 엉톰은 쳐다도 보지 못하겠더라. 멋진 인생의 조지와 다르게 자신은 새 삶을 얻었다며 하얗게 반짝거리는 창앨에게 쏟아지는 현실이라는 차가운 물. 오지마. 부푼 꿈이 펑 소리를 내며 터지는 순간, 창앨은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 아니라 세상이 멈춰버린 표정을 짓는다.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소리를 내며 흘러가기 시작하던 그의 인생 시계가, 얼마 가지도 못하고 멈춰버린다. 완전히. 



"어른이 된 것 같아, 너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는 창앨은 마냥 어리고 순수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굳이 사회에 적응하고 싶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톰처럼 꿈을 꾸고 앞으로 걸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처음 '나비' 를 들었을 때의 표정이 무척 의미심장 했고,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톰의 베스트셀러를 읊는 목소리가 건조했다. "네 이름이라도 써줘?!" 하는 발악같은 톰의 말에 "어우, 아니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그런 거 필요없어." 라는 말은 진심이다. 앨빈은 그런 명예보다는, 톰의 입에서 나오는 인정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톰은 비명처럼 외친다. "쟨 필요 없었다구요!!!!" 이날, 딱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앨빈이 더 이상 삶을 견뎌낼 수 없었던 건. 찰나의 순간 스쳐간 표정. 그리고 단상 앞에서 아버지의 송덕문을 시작하기 전 옅은 한숨과 슬픈 미소. 톰이 본 마지막 모습. 질투와 자괴감에 빠져 있어서 발견하지 못했던 '그 순간'. 톰 역시 그 순간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에, 비극적이었다.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하니?"



앨빈에게도 애니에게도, 엉톰은 잔인한 말을 내뱉고는 진심을 담아 묻는다. 이 물음은, 이 등신아 그걸 물어야 아냐?! 라는 감정을 들게 만들긴 하지만, 집요할 정도로 앨빈과 자신의 관계가 틀어진 '한 순간' 을 찾아내려고 하는 톰의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자신이 보지 못한,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를 직구를 던져서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앨빈이 말한다. 넌 평생 모를 거라고. 보지 않은 걸 알 수는 없다고. 그냥, 아는 걸 쓰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몸을 떨며 울고 있는 엉톰이 그제야 다시, 톰소여를 읽으며 꿈을 꾸던 본래의 아이로 돌아온다. 도망치기만 했던 과거, 앨빈, 추억, 죄책감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감정을 쏟아낸다.



"제가 앨빈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종이와 눈송이가 흩뿌려진 따뜻한 책방, 그 속에 처음처럼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앨빈. 천천히 커튼이 닫힌다. 단상 앞에서 조명을 받고 있던 엉톰이 천천히 입을 뗀다. 그는, 웃고 있다. 제 마음 속 앨빈을 기억하며 가득한 감정으로 슬퍼 보이지만, 진심으로 웃는다. 그렇게 천천히 암전이 내린다. 





솜 리뷰를 이 정도로 길게 쓰는 게 힘든데, 이날 공연이 참 좋았어서 저절로 글이 길어졌다. 펑펑 눈물을 쏟으며 앨빈을, 톰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같이 아파했다. 다음주 창조 삼공도 비슷한 자리로 보러가는데, 일단 목표를 초반부터는 울지 말기로 잡았다. 관극 텀이 짧으니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글쎄. 이 극의 감정선이 정확하게 내 깊숙한 곳을 찔러 들어오는 편이라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책을 보다 담담하게 읽어보고 싶다. 대사와 장면들의 타이밍을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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