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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in 백암아트센터, 2019.01.16 8시
조성윤 토마스 위버, 정원영 앨빈 켈비. 엉톰, 햇앨. 엉햇페어. 솜 5연 자첫이자 삼사오연 통틀어 6번째 관극. 관대 회차.
관대 첫 번째 질문으로 뽑혔다!!! 관대 공지 및 작성폼이 나오자마자 바로 엉톰에게 질문을 남겼다. "2019년 1월 셋째주 백암에서 엉톰을 포함한 관대" 공약을 기억하냐고, 그게 돌아온 이유 중 하나가 되었냐고 말이다. 질문지를 미리 다 읽고 나왔을텐데도 "공약이요? 제가요? 1월 셋째주요?" 하며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를 어리둥절한 표정을 굳이 지어보이던 엉톰이, 질문자는 어디있냐고 묻기에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빤히 눈을 마주하던 엉톰은, 다들 모르는 것 같으니 우리 둘만의 공약이라고 하자며 넘어갔다. 저분이 애니인 거냐는 햇앨의 첨언 덕분에, 애니석에 앉지도 않고 애니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말투나 눈빛을 보니 엉톰 배우 본인도 기억하는 게 분명했지만, 워딩이 '공약' 이라서 부담스러웠는지 일부러 눙친 것 같았다. 굳이 이 질문을 남긴 이유는 엉톰이 약속을 지켜줘서 고마웠기 때문이다. 만약 질문이 뽑힌다면 관대를 시작하는 포인트로서 스치듯 사용되리란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재연부터 무려 4시즌을 연달아 톰으로서 참여한 조성윤 배우에게, 이 극을 사랑하는 관객 또한 이 극을 사랑하는 배우의 마음과 약속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의도가 성공한 듯하여 기쁘고 행복하다.
엉톰의 공약을 기록해뒀던 4연 솜 후기 20170203 엉윱 페어막 관대
시즌을 거듭하고 나이가 들면서 20대 때보다 더 탄탄해진 톰이 되었다던 조성윤 배우처럼, 15-16년 겨울과 16-17년 겨울과는 사뭇 달라진 관객으로서 객석에 앉아 스옵마와 재회했다. 곱씹는 만큼 보이고 고민하는 만큼 이해하게 되는 이 극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영광이었다.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마주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이 벅참을 더욱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줬다. 이번 겨울도 솜 덕분에 찬란히 따뜻하다.
※스포있음※
객석 통로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던 엉톰은 잠시 멈춰 서서 가만히 텅 빈 단상을 바라본다. "오늘 우리는 앨빈 켈비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라는 첫 번째 대사부터, 이미 목소리가 잔뜩 잠겨있다. 아는 걸 써. 책상에 살짝 걸터앉아 있던 햇앨은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하며 톰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인다. 엉톰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집중하라면서 이상한 춤을 추고 일부러 기침을 하는 햇앨.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책과 종이로 가득한 책방을 짠, 보여준다. "내 얘기, 니 얘기, 우리 둘 얘기" 가 이곳에 모두 있다며 흩어져 있던 종이들을 모아 책상에 탁 내려놓는다. 아는 것부터 써보라고 말하는 앨빈에게, 톰은 아까 해봤다고 말하며 사실만을 나열하는 문장을 다시 읊기 시작한다. 앨빈은 그의 말을 끊고 "토마스 위버 식으로 써야지!" 하며, 래밍턴 선생님 이야기를 시작한다. "적어~" 하는 앨빈의 말에 머뭇대다가 결국 펜을 들고 글을 적기 시작하는 톰. 옛 추억이 떠오르듯 아이 같은 미소가 엉톰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피어났다 사라진다.
이런 좋은 이야기를 버리냐, 하며 톰이 흩뿌린 종이들을 줍던 앨빈은, 자신이 쓰려는 글은 이런 게 아니라는 톰의 말에 모아든 종이를 다시 허공으로 던져버린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며 그가 "아주 깊게 쳐박아두셨" 던 이야기를 꺼내 드는 앨빈. 위대한 도서관. 바로 지난주. "늦었잖아." 흔들리는 눈빛으로 앨빈을 응시하며 입도 떼지 못하던 엉톰은 결국 그만하자며 화를 낸다. "아직 준비가 덜 됐나 보네" 하며 종이를 휙 던져버린 햇앨이 꺼내 드는, 최고의 선물. "앨빈과 그의 아버지는 책방의 2층에 살았습니다" 하며 시작되는 이야기. 벌써부터 산만하게 무대 중앙을 휘젓고 다니던 햇앨이 똑, 하고 혀를 굴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단상 앞에 서서 객석을 응시하고 있던 엉톰은 놓치지 않았다. 똑같이 똑, 하고 혀를 굴리고는 "우린 열한 살이었습니다!" 하고 기다란 팔을 풍차 돌리듯 휘두르며 펄쩍펄쩍 햇앨에게 뛰어간다. 책방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면 "같이 해야 돼!" 라고 말하는 앨빈. "고개 숙인 채 벌떡 일어서" 는 그를 따라 일어난 엉톰은, 고개를 비롯한 온몸을 격하게 꿀렁거리는 햇앨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다가 결국 힘에 부친 듯 멈춰 서더니 "너 진짜 잘한다," 하며 현실 감탄을 내뱉었다. 엉톰이 뒷목을 붙잡은 채 쳐다보고 있는데도 햇앨은 끝까지 웨이브 동작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넌 필요한지도 몰랐던 얘기" 가 담긴 책을 찾아낸다.
1876. 또박또박 글을 읽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와 어조로 부르는 엉톰의 노래. "그 모험들--" 하며 음을 아주 길고 풍성하게 뽑아냈다. 발표를 시작하는 엉톰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던 햇앨은, 엉톰의 문장들이 이어질수록 점차 놀라움과 생경함으로 뒤섞인 표정으로 굳어간다. 그러다가 "언젠가 이런 얘길 쓰는 게," 하는 말에 굳어 있던 얼굴이 살짝 녹더니, "내 꿈이죠" 하는 엉톰의 벅찬 목소리에 비로소 환한 웃음을 피워낸다. 햇앨은 이야기를 쓰는 톰의 재능을 이 장면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책에서만 접해본 '좋은 글' 을 풀어내는 친구의 눈부신 모습을 목격하며 느낀 충격과 거리감이, 찰나였지만 아주 생생하게 햇앨의 얼굴에 담겼다. 하지만 톰을 몹시 사랑한 햇앨은, 재능이 있는 그가 눈을 빛내며 꾸는 꿈을 바로 이해하고 진심으로 환하게 웃으며 응원한다. 앨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환한 조명을 받고 있는 톰 너머에서 어둠에 잠겨 있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확인해야 한다. 엉톰 배우 본체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이 넘버가 끝난 뒤 박수가 나오길 바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했다고 들었다. 톰이 처음으로 쓴 글에 반응해주는 독자를 상징하는 객석의 피드백이라고 믿으며, "감사합니다," 하며 책을 꼭 끌어안고 꾸벅 인사하는 엉톰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단상 앞에 다시 선 엉톰은, 표정을 굳히며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구긴다. "지금 내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잖아." 라는 톰의 말에, 앨빈은 고개를 갸웃 하며 "아닌가?" 하고 묻는다. 그리고 토마스와 앨빈의 이야기를 꺼내든다. 장례식장에 몰래 숨어들어가는 햇앨이 몸은 그대로 둔 채 발목만 180도로 꺾고 요상한 걸음걸이로 걷는 모습에, 엉톰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서있었다. 그리고 나름 훌륭하게 햇앨의 동작을 고스란히 따라하며 그의 뒤를 쫓아 따라 들어간 엉톰은, "만족해?" 하고 물으며 그의 팔을 붙잡고 등짝을 퍽퍽 때렸다. 마지막은 꽤 세게 때렸는지 햇앨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현실 억 소리를 토했다. 엉톰은 극한직업에 힘들어하는 배우 본체의 마음을 가득 담아 우렁차게 "못 보겠다!!!" 하고 외치며 객석을 향해 무릎을 세우고 앉아 고개를 파묻었다. 작가니까 이런 걸 써야 한다며 앨빈이 내린 종이를 잠깐 바라보던 톰은, 품에서 펜을 꺼내 쭈그리고 앉은 자세 그대로 글을 끄적이기 시작한다. 무릎 꿇은 채 고개를 이리저리 빼며 장례식장을 들여다보던 햇앨이 등을 긁적거리는 것이 고정 디테일이라고 한다. 아마 진지하고 무거운 '어른의 상황'을 견디기 힘든 아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을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앨빈을 답답해하는 톰. 노멀. 생각에 사로잡힌 채 갑자기 새끼손가락을 까닥이기 시작하고, 이어 손을, 팔 전체를, 그리고 온몸을 흔드는 앨빈. "마치 미친 익수룡처럼," 하고 말한 엉톰은 "앨빈! 미친 익수룡!!!" 하고 재차 강조하며 햇앨에게 더 크고 재미있는 표현을 요구했다. 15살임에도 여전히 할로윈에서 엄마의 유령 복장을 하고 나타난 앨빈. 물살에 실려 사라지는 엄마의 가운을 빤히 응시하다가 다리 난간 위에 올라선 앨빈은, 여기서 떨어지면 천사 클라렌스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며 위태로운 뒷모습을 보인다. 피플 캐리 온. 고작 6살에 마주한 첫 상실을 이야기하는 앨빈. 왼손을 쫙 펼치고선 오른손 검지를 그 사이에, 그다음에는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그리고 검지와 중지와 약지를 한꺼번에, 차례로 손가락 개수를 늘려가며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을 드러내는 햇앨의 손깍지 디테일. 그렇게 깍지 낀 채 마주 잡은 양손을 초조하게 문지르던 햇앨은, "작고 필요 없는 그림 하나하나" 와 함께 차오르는 감정이 툭 끊어지듯 손을 떨군다.
톰은 대학에 원서를 보내기 전에 가장 먼저 자신의 글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픈 아버지 대신 책방을 관리하고 있는 앨빈을 찾아간다. 톰의 글을 손에 쥔 채 그의 미래를 가정해보는 앨빈. 책상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인 채 발끝을 바닥에 괜히 문대면서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라고 말하는 엉톰은, 앨빈의 인정을 제 미래의 대전제로 삼는다. "니 운명이 내 손에 달려있는 거네? 맘에 들어. 읽어봐." 하며 미소 띤 채 종이를 되돌려주는 햇앨. 나비. 양손에 종이를 나눠 든 채 앨빈 앞에 선 엉톰이 "이파리 뒤에" 하며 그의 얼굴을 가렸다가 까꿍하듯 짠, 하고 드러내며 그에게 웃어보였다. 마치 1876을 들을 때처럼 잔잔하지먄 묘한 얼굴로 엉톰을 바라보고 있는 햇앨. "바람에게 물어봤죠," 하는 부분에서 몹시 궁금하다는 듯 톰을 향해 미세하게 상체를 앞으로 숙인 채 몰입한다. "나는 강한 나비야" 라는 엉톰의 말에 비로소 활짝 웃는 햇앨. 작고 중요치 않은 나비라 자처하던 엉톰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고 강한 나비로 각성하는 이 이야기의 비유적 의미를 너무나 완벽히 이해하는 앨빈이다. 책을 사랑하는 햇앨은, 흠잡을 데 없는 좋은 청자다. "보내."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를 더 넓은 바다를 향해 보낸다.
앨빈과 톰의 첫 번째 이별. "상징이라기엔 너무 뻔" 한, 폭포에 나뭇가지를 골인시키는 톰과 그러지 못하는 앨빈의 모습. 나뭇가지를 던지며 "보고 싶을 거야" 라고 말하는 앨빈에게 "당연하지" 하고 답하는 엉톰. 시무룩해있는 햇앨의 겨드랑이를 손으로 쿡쿡 찌르던 엉톰은 형용하기 어려운 이상한 춤을 마구 추기 시작했고, 결국 햇앨과 함께 웃어버린다. 톰을 꽈악 껴안은 앨빈은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하고선, 잠시 망설이다가 태연한 척 다시 나뭇가지를 던지며 "보고 싶을 거야-" 라고 말한다. 드디어 골인. 관대에서 햇앨은, 이 장면에서 톰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이 늘 같다고 답했다.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라고. 그 말에 엉톰이 "니가 여자냐," 하고 대사 드립을 쳤고, 햇앨은 바로 "그냥 적어" 라고 맞받아쳤다. 엉톰도 관대에서 이 장면을 언급했다. 여러 시즌에 참여하면서 다르게 다가오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냐는 질문에, 첫 이별을 꼽았다. 다들 겪는, 별 거 아닌 작은 사건들이 모여 삶이 바뀌는 거라고. 그게 이 극에도 내내 나오는 나비효과라고. 그래서 그는 마치 톰처럼, 자신 또한 "놓쳐버린 작은 틈새" 를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마을을 떠난 엉톰이 처음으로 돌아온 크리스마스 이브. "마! 야! 마! 집필은! 마! 과정이야! 마!" 하는 엉톰 디텔을 빙긋빙긋 웃으며 따라하는 햇앨. 그 천연덕스러운 얼굴에 엉톰이 도리어 웃음이 터졌고, 햇앨은 그에게 왜 웃냐고 굳이 물어보며 한층 재미를 더했다. 써지지 않는 글을 끙끙대며 붙들고 있는 엉톰과, 벌써 눈밭으로 뛰쳐나가 온몸을 던지고 있는 햇앨. 비긴즈. 엉톰은 번뜩이는 영감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결국 뛰쳐나온다. 그가 나오기도 전부터 눈을 뭉치고 있는 햇앨과, 양손 가득 종이를 쥐고 이미 빵 터진 채 문을 열고 뛰쳐나오는 엉톰. "종이 울릴 때마다~" 하는 앨빈에게 "닥쳐라!!!" 하는 부분이 웃음에 먹힐 정도였다. 살기등등한 눈싸움 후반부에 종이 뭉텅이로 앨빈을 후려치는 엉톰 디테일이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종이가 아니라 주먹으로 햇앨을 때려버렸다. 결국 상대의 옷자락을 왼손으로 붙들고 오른손으로 서로를 마구 내리치는 눈싸움이 되어버렸다. 넘버가 끝나고 엉햇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한참을 드러누워 있었다.
비긴즈 장면에서 단상 뒤 경사면에서 종이를 엉덩이에 깔고 눈썰매를 타는 햇앨 디테일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관대에서 햇앨은, 활용 가능한 오브제가 별로 없는 한정된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애드립을 고민하다가 경사면을 보고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답했다. 넘버를 부르고 있는 톰에게 방해되지 않으면서, 여러 번 보는 관객들에게 포인트가 될 수 있는 디테일을 생각해봤다는 그 설명이 무척 좋았다. 눈싸움을 할 때도 톰을 사랑하는 앨빈이기에 일부러 못하는 걸 연기하려고 노력하는데, 워낙 엉톰이 눈싸움을 잘해서 별 소용이 없다는 한탄도 했다.
애니를 데리고 온 엉톰. 점점 자신과 멀어지는 톰의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앨빈. "개도 키우고, 애도 낳고. 내 이름 따서 지어줄래?" 라는 햇앨의 질문에 엉톰은 눈에 띄게 흠칫하며 한걸음 물러선다. 그 모습에 "농담이야. 개 말이야, 개." 라고 애써 웃는 햇앨의 마음이 아팠다. 여기 남아서 도와달라는 앨빈의 부탁에 엉톰은 크게 뒷걸음질 치며 '그렇게 할 수 없는' 핑계들을 떠올린다. 끝내 그가 내뱉는 말은 "니가 여기로 와" 라는 무책임한 권유. 한 번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앨빈이 그럴 수 있을리 없다는 엉톰의 생각과 다르게, 햇앨은 눈을 반짝이며 온몸으로 기쁨을 내뿜는다. 이제 떠나, 기다려. 책방에 주인장이 자리를 비운다는 명패를 걸어놓고, 넥타이를 사야하나 고민하고, 흔들림 방지가 되는 비싼 카메라를 사며 한껏 부풀어가던 햇앨의 기대와 희망은, 엉톰의 한마디에 뻥, 터져버린다. "오지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톰의 변명. "너 무슨 생각하니?"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앨빈을 향한 덧없는 질문. 여기 좋아 난. 마지막 말을 고르며 양손을 허벅지 옆에 짚고 얼굴을 떨구고 있는 엉톰과, 그런 그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책상 위에 앉아 똑같이 손을 짚고 있는 햇앨의 포즈가 겹친다. "지금 무슨 생각해?"
단상에 서서 수상소감을 줄줄 읊는 엉톰과 그에게 매번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는 햇앨. 종이를 날리며 카드를 보낸 햇앨은 무대 안쪽 중앙의 창을 기웃거리며 내다본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톰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정말 대단해. 순수하고 맑은 앨빈의 감탄과 응원이, 암담하고 아득하고 무거운 죄책감과 부담감으로 엉톰 위에 쌓인다. 무대 왼쪽에 서서 무대 오른쪽에 있는 톰에게 갈 때, 햇앨은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걷는다. 자신의 말을 왜곡해서 듣는 톰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해석을 풀어내는 이 배우가, 극에 대한 연구를 얼마나 깊게 많이 했는가를 알 수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장례식장. 고든 켈비를 위한 송덕문을 앨빈 앞에서 먼저 읽는 톰. "이게 다야?" "너한테 써달라고 했잖아." "노력은 해봤어?"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엉톰에게 비수같이 꽂히는 햇앨의 물음. 결국 폭발하듯 터져 나온 분노를 그대로 실어 햇앨이 쥐고 있는 종이를 아래로 세게 낚아채는 엉톰. 작은 마을에서 책이나 팔던 사람에게 과분한 시, 라는 엉톰의 심한 말에 가만히 얼어붙어 있던 햇앨이 묻는다. 책이나 팔던 그런 사람, 그 덕분에 네가 먹고 사는 거 아니냐고. "뭐?" 하는 되물음이 터져나오는 엉톰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짙은 당혹감. 햇앨은 애써 미소를 걸며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며 단상 앞에 선다. 그렇게 계속, 계속, 아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햇앨은 송덕문을 미리 정해두면 대사 같아지리라는 생각 때문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고 관대에서 답변했다. "이거 어디서 들은 건데," 하며 시작하는 앨빈의 모든 이야기는 아빠에게 들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때로는 그립고, 때로는 밉기도 한 마음을 실어 얘기한다고. 송덕문을 풀어내는 햇앨의 눈에 차오른 눈물이 주륵주륵 뺨으로 흘러내린다. 장례식장 뒤쪽으로 숨어든 엉톰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누구에게인지 모를 탄식을 토해낸다. 하지만 엉톰은 이미 앨빈을, 그의 진정한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잘하네요." 마치 한숨처럼 내뱉는 말. 노여움과 원망과 자책과 고통이 한데 뒤섞여 휘몰아치던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는 표정. 질투나 동경 따위 없는, 그저 사랑하는 친구를 향한 애틋함과 감탄만을 실은 눈빛과 목소리. "내 친구 앨빈 너무 잘하지 않나요."
사람은 보지 못한 걸 알 수 없으니, 결국 넌 절대 알 수 없어. 엉엉 눈물을 쏟아 쓰러질 듯한 목소리로 "그냥 말해주면 안돼?" 하고 묻는 엉톰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햇앨. 이제 너 혼자 해야한다고, 그 등을 가볍게 떠밀듯 꺼내는 말. 디시짓. "이게 다야, 이게 전부야."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는 게 아니라며, 책상에 걸터 앉은 엉톰의 옆에 앉은 햇앨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는다. "야, 괜찮아" 그 말에 엉톰은 울음이 터져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눈 속의 천사들. 아름답게 쏟아지는 눈 속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쌍둥이 천사. "남은 사람이 하기, 약속" 하며 내민 앨빈의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엉톰. "약속하면 가도 돼?" 라고 울먹이는 목소리에 담긴 많은 이야기. "약속, 도장, 복사" 그 오른손을 제 가슴에 가져다 댄 햇앨은, 남은 왼손도 그 위에 얹으며 소중히 그 온기를 느낀다. 그에게서 돌아선 엉톰 역시 똑같이,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왼손으로 감싸안는다. "제가, 앨빈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마지막에 앨빈을 끌어안을 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는 관대 질문에, 엉톰은 하고픈 말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줬다. 극의 앨빈은 톰이 기억하는 모습으로 구현된 모습일 뿐, 햇앨 본인은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상실을 겪어내야 했던, 어른스러운 앨빈이라고. 극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온 마음으로 끌어안아 표현해주는 조앤정 페어 덕분에, 본공도 관대도 울고 웃으며 몰입했다. 2019년의 첫눈이 오는 날 솜을 재회할 수 있어 반가웠다. "이게 끝이 아니야." 그러니,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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