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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in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22.12.21 7시반

 

 

 

 

마이클리 지저스, 윤형렬 유다, 제이민 마리아, 김태한 빌라도, 전재현 헤롯, 이한밀 가야바, 김민철 안나스, 윤태호 시몬, 이하 원캐. 마곰제김. 지크슈 이번 시즌 자셋, 지난 시즌 포함 14번째 관극.

 

 

마곰페어 대체 얼마만이던가. JCS의 마곰은 15년 7월 10일 이후 무려 7년이 훌쩍 넘었다. 능숙하게 이야기를 휘어잡고 감정을 쏟아내는 경력직 지저스와 유다를 보며, 그때 그 시절 샤롯데 생각이 자꾸만 났다. 뜨겁고, 새빨갛고, 아득하고, 숨이 턱턱 막히던 그 감정들. 그래서 새삼 이번 시즌의 불호 요소들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왔고, 그럼에도 그동안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지난 시즌의 추억들을 상기시키는 마저스와 곰유다와 태빌이 너무나 기껍고 반가웠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해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마음을 울리는 가치가 있다. 

 

 

바뀐 연출에 정신이 없었던 이번 시즌 자첫 관극과 다르게, 이날 관극에서는 마저스에게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다. What's the Buzz 넘버에서 "왜 알지 못하나 중요한 건 바로 여기" 하는 마저스의 첫 소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날카롭고 명징하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 그다음의 "왜 알지 못하나 의미 없는 헛된 투쟁" 부분에 변주를 넣으며 하이톤으로 꽂아 넣는 소리도 짜릿하다. 자신을 챙기는 마리아의 모습에 이것 좀 보라는 듯 곰유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까딱이는 마저스 디테일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매 순간 놓치지 않고 곰유다와 시선을 맞추며 배신을 종용하는 잔인한 마저스. 그 눈빛을 어찌 외면할 수 있는지,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는지, 그리하여 어찌 그대를 배신할 수 있는지.

 

 

@bluestage_musical

 

 

Hosanna 넘버의 홀리한 마저스도 너무 사랑하죠. 가야바들을 직시하며 "그 무엇도 우릴 막지 못해" 하는 단호함과 추종자들을 바라보는 눈빛의 따뜻함이 좋다. 지난 시즌과 다르게 추종자들이 노래하는 사이사이 넣는 지저스의 추임새도 매력적이다. "우리 구원을 위해 죽나요" 라는 말에 삽시간에 가라앉는 눈빛과 열성당원 시몬을 당황과 안타까움을 담아 바라보는 눈빛 또한. The Temple 넘버의 "Get Out!!" 도 소름 끼치게 좋고, 나병환자 장면에서 점점 아득한 절망과 고독으로 떨어지며 너덜너덜해지는 마저스의 영혼이 아찔하다. 제 죽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는 운명을 혼자서 감내해야만 하는, 오롯이 홀로 고독할 수밖에 없는 인간. 더없이 지치고 외롭고 왜소한, 그저 한 사람 인간일 뿐인 지저스.

 

 

The Last Supper 넘버의 마곰 대립이 어찌나 쫀쫀한지. 서로를 상처 입히고 스스로도 피를 뚝뚝 흘리는 두 사람의 마음이 강렬하고 절절하게 보이고 들린다. 곰유다가 다시 돌아오기 직전에 무대 오른쪽 앞에서 무너지듯 무릎을 꿇는 마저스 디테일이 지난 시즌에서도 있었던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가슴께를 부여잡는 마저스의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다분히 인간적이어서 눈물이 절로 차올랐다. 그리고 Gethsemane. 마저스의 겟세마네. 말이 더 필요한가. 음원이나 뮤비나 축공이나 콘서트나 행사에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본공의 마세마네. 매일매일 한 번씩 듣고 싶다, 이 생생한 질감의 겟세마네. 도입부에서 천천히 손을 모으고서는 기도하듯 손깍지를 끼는 것과, "당신 주신 이 독잔을" 하며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푼 양손을 그대로 들어 올린 뒤 "거둬줘요" 하면서 왼편으로 치우듯 손을 내리는 것도 지난 시즌에서는 못 본 것 같다. 온 마음을 내던져 부르는 겟세마네. 그 순간의 공기와 음성과 분위기는, 글로 묘사할 수 없다.

 

 

@bluestage_musical

 

 

곰유다 그저 빛. 지저스를 팔아넘긴 직후를 비롯하여 눈물이 아롱대는 그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Superstar 끝나고 가만히 서서 십자가에 매달린 지저스를 응시하다가, "목마르다!!!" 라며 인간적인 괴로움을 호소하는 그의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려 왼편으로 퇴장하는 뒷모습이 마음을 한층 가라앉게 만든다. 태한빌라도 역시 완벽 그 자체. 빌라도의 모든 가사가 명징하게 귀에 꽂히고, 회색 앞머리가 중후함을 더하며, 코트 자락을 양손으로 붙들고 휙 돌아서는 동작들도 무척 좋다. 지난 시즌에서는 목이 메어 "서른여섯!" 을 뱉어내지 못했는데, 이번 시즌은 "서른넷" 에서 목소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민철안나스 제가 감히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도 될까요. 극악한 넘버의 맛깔난 소화력뿐만이 아니라, 디테일한 표정 연기와 손동작을 비롯한 캐릭터 해석이 흠잡을 곳 하나 없다. 태호시몬은 자첫이었는데 은총시몬보다 더 치기 어린 노선이어서 재미있었다. 한밀가야바는 첫공 때 너무 데이는 바람에 기대를 하나도 안 했는데, 본인에게 맞게 음정을 조정해서 훨씬 좋아졌더라. 제마리아 넘버는 너무 좋은데, I don't know how to love him 넘버나 마지막 장면에서의 노선이 내가 원하는 마리아 해석과 조금 달라서 아쉬웠다. 

 

 

 

 

이제 연출 불호 언급 좀 해야겠다. 1막 마지막 Blood Money 넘버 연출이 제일 안타깝다. 지난 시즌 이 장면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말하려면 한 시간도 부족하다. 돌이킬 수 없는 배신을 해버린 유다가 지저스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휩싸인 채 "잘했다 유다 불쌍한 유다" 라는 선고를 듣는 그 표정. 그림자를 드리운 얼굴의 지저스를 향해 돌아서서 새빨간 핏빛 길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쓸쓸한 뒷모습. 여기 오케 반주도 많이 빠졌다고!! 드럼 소리가 무너져내리는 유다의 심장 소리처럼 울리면서 극적 긴장감을 어마어마하게 높였고, 마지막에 Superstar 반주까지 넣으며 화룡점정으로 마무리했었다고요!! 이번 시즌 너무 밋밋하게 끝난다고. 여기에 이어서 2막 도입부 음악도 너무 잔잔해져서 아쉽다. 지난 시즌에는 쾅! 하고 시작하면서 Blood Money 음악 깔아주셨잖아요... 15년 JCS 음악 돌려내요, 성수 음감님... 

 

 

2막 Judas' Death 연출 변화 역시 아쉽다. 유다가 직접 신에게 말을 걸다니. 모든 것이 당신의 의도였냐며, 왜 하필 자신이었냐며, 나 역시 지저스의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고 구구절절 쏟아내는 유다의 대사들은, 극단에 내몰린 그의 감정을 보여주기보다는 극에 대한 부연설명 같다. 지난 시즌에서는 유다 역의 배우에 따라 깊이와 길이가 달라진 장면이었는데, 이번 시즌은 과도한 행동 연출이 많아서 정신이 사나운 데다가 호흡이 지나치게 길어서 몰입이 깨진다. 돌아섰을 때 목에 걸 밧줄을 발견하고 벼락같이 깨달음을 얻던 지난 시즌 유다 연출 돌려달라. 유다에게 암벽 타기 시키지 말라. 동일하게 들어간 1막 마지막 음악과 유다데쓰 끝의 음악이 이번 시즌에서 완전히 빠져버려서 밋밋하기 그지없다. 돌려줘요.. 맡겨놨어요...

 

 

지난 시즌에서는 십자가에 예수를 못 박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와서 힘들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빠졌다. 이 변화 때문에 새하얀 락스타 의상을 갖춰 입은 유다가 위에서부터 내려와 Superstar 넘버를 부르는 장면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유다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아레나 짘슈나 지난 시즌만큼의 가학성은 없어도 무방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지저스를 비웃는 유다'라는 연출이 삭제된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넘버가 끝나고 뒤편 막이 올라가며 십자가에 매달린 지저스를 드러내며 시각적 충격을 준다는 연출 의도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 극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훼손했어야 하는가.

 

 

빌라도 등장 장면 너무 가오가 떨어져서 볼 때마다 아찔하다. 빌라도가 등장하는 순간 양쪽에서 내려오는 로마식 기둥과 빌라도의 실루엣이 얼마나 고풍스럽고 매력적이었는데! 악몽에 대해 독백하는 Pilate's Dream 넘버에서 빌라도에게 쏟아지는 핏빛  조명도 돌려내라! 지저스의 피가 가득 묻은 빌라도의 양손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던 빨간 조명 돌려내라고! 피를 씻듯이 양손을 문지른 빌라도가 황급히 퇴장하는 장면도 너무 초라해졌다. 예수의 피도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바꿔서, 39대의 채찍질 끝에 쓰러진 지저스를 끌어안은 빌라도의 두 손이 붉지 않고 까만 것도 시각적 효과를 감소시켰다. 

 

 

가사 어미들도 꽤나 바뀌어서 어색하다. Blood Money 넘버에서 "좋은 일 하쇼" 하는 안나스 비아냥 좋아했는데, 이번 시즌은 "좋은 일에 써" 라고 바뀌었다. The Last Supper 넘버의 "하난 날 배신하고 하난 날 부인한다" 라는 지저스 예언도 "하난 날 외면하고 하난 날 팔리라" 라고, "정해진 걸 하라 / 당신이 정했어" 라는 가사도 "원하는 걸 하라 / 당신이 원했어" 라고,  "가라 어서 거부 말고" 라는 말도 "가라 어서 변명 말고" 라고 바뀌었다. "나의 배신 없인 계획했던 야망과 각본은 다 끝나" 부분은, 자첫 켱유다는 그대로 불렀던 것 같은데 곰유다는 두 번의 관극 모두 "계획했던 메시아 그 꿈은 다 끝나" 라고 직설적으로 바꿔 불렀다. 이외에도 자잘한 변화가 있는데, 이제 자셋이라 가물가물하네.

 

 

 

 

7년 동안 마이클리 배우의 여러 작품들을 만났지만, 그를 처음 만난 극이자 인물인 JCS의 마저스는 가장 특별할 수밖에 없다. 마저스라는 단어 하나로 연상되는 그 모든 감정과 추억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번 시즌 캐스팅 문제가 아니었다면, 극장이 강당 수준의 음향을 지닌 치킨홀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자주 겟세마네를 방문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쥐고 있는 표가 없는데, 이날 마곰이 너무 좋아서 슬프다. 서울 공연 자리 못 잡으면 지방공이라도 가서 한 번은 더 봐야지. 정말 오랜만에 JCS를 마주한 기분이라 행복하고 슬프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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