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in 광림아트센터BBCH홀, 2022.11.12 2시

 

 

 

 

마이클리 지저스, 백형훈 유다, 제이민 마리아, 지현준 빌라도, 육현욱 헤롯, 이한밀 가야바, 신은총 시몬, 김민철 안나스. 이하 원캐. 켱유다, 제마리아 첫공. 마켱제. 50주년 지크슈 자첫. 

 

 

하. 7년 만에. 드디어. 돌아왔다. 이 극을 얼마나 사랑했고얼마나 기다렸는지, 이 블로그에 구구절절 그 역사가 묻어있다. 그러나 이번 컴백을 마냥 반가워할 수 없어서 화가 났고, 1차 티켓팅 불매를 하며 하차를 요구했음에도 반성 없이 개막까지 도달하여 역겨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완전한 불매를 하지 못하고 객석에 앉게 된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든다. 관객에게 극 외적인 요소로 불편한 마음의 짐을 지운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번 돌을 던진다. 그 돌을 나 또한 맞을지언정.

 

 

이번 50주년 기념 지크슈는 직전 시즌과 사뭇 달라진 창작진 구성으로 급격한 변화를 예고했다. 그래서 7년 전 그때 그토록 사랑했던 그 극이 고스란히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결단코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짘슈는 짘슈니까. 위대한 음악이, 발칙한 이야기가, 세련된 캐릭터는 고스란히 중심을 잡고 있을 테니까. 작품 자체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어떠한 모습이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캐스팅이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이 극을 마주하는 마음이 이미 차게 식었고, 7년의 세월 동안 잔뜩 미화된 추억은 영혼에 새겨져 있었다. 오버츄어 첫 음부터 펑펑 눈물을 쏟으리라 예상했건만, 생각보다 건조하고 담백한 재회가 속상하고 쓰라렸다. 역시, 떠난 극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연출 후기 남기기 전에 배우들 얘기부터 간단하게. 마저스는 그대로였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그 모습 그대로. 오랜만에 만나는 극 중의 마세마네가 어찌나 찬란하던지 심장이 벅차올랐다. 첫공을 한 켱유다와 제마리아는 기대만큼 좋았다. 제마리아의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한 노래와 연기가 안정적이었고, 켱유다의 시원시원한 음색은 귀를 만족시켰다. 다만 켱유다 노선과 연기는 아직 단단히 영글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다보다는 유다를 연기하는 배우 본체가 느껴졌달까. 기본적으로 좋은 배우임을 잘 알기에 개인적인 생각임을 명기해두는 바이며, 앞으로 노선이 확고해지리라 믿는다.

 

 

앙상블 다 좋더라. 장면마다 온몸을 불사르는 것이 느껴졌다. 살짝 힘이 들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연습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군무에서 여실히 드러났고 그래서 고마웠다. 얼굴이 익을 정도로 회전을 돌아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경력직 지빌이야 뭐 얹을 말이 딱히 없다. 육헤롯은 기대만큼 찰떡 같이 잘 소화했고, 은총시몬 역시 열정적인 시몬질럿을 보여줬다. 민철안나스 너무 좋더라. 쉽게 넘어갈 부분이 없는 안나스 파트를 맛깔나게 완벽히 소화해줘서 짜릿했다. 딱 한 명의 배우가 매우 실망스러웠는데, 다른 극에서도 만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한밀가야바였다. 가야바 음역대가 아닌데 어떻게 가야바 역을 맡은 거지? 가야바가 내뱉는 첫 베이스 음을 아예 소화하지 못하는 그 목소리에 완전히 흥이 깨져버렸다. 심지어 지저스 머스트 다이 넘버 한 소절 날림. 앞으로 피하고 싶은데 더블/쿼드 배우가 너무 많아서 캐스팅 맞추기가 고역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가 '수퍼스타'를 처음 선보인 당시의 파격과 독보적인 음악의 오리지널리티에 집중하는 동시에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며 작품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새롭게 만드는 무대 세트와 '빛'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에 집중했다. 여기에 인간 내면을 표현한 앙상블들의 역동적인 안무가 더해져 좀 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것"

(기사 출처)

 

 

처음 무대를 마주한 순간부터 커튼콜에 이르기까지, 상단에 인용한 창작진의 인터뷰 문구가 저절로 떠올랐다. 원작이 지닌 파격적인 면모를 다시금 되살리려는 방향성이 곳곳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지저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연출이 지난 시즌과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지난 시즌의 담백한 여백을 선호하지만, 당시의 연출이 지나치게 성스러워 원작의 매력을 반감시켰음을 알기에 이번 시즌의 변화와 의도가 어느 정도 기꺼웠다. 다만, 지난 시즌의 연출이 태만했다면 이번 시즌의 연출은 번잡스럽다. 특히 동선이. 겟세마네를 부르는 지저스가 전후좌우로 어지럽게 옮겨 다닐 필요가 있는가.

 

 

전체적인 연출이 '빛'을 중시했다는 것 또한 여실히 느껴졌다. 조명의 색감과 형태라는 시각적인 효과가 적재적소에서 음악이 선사하는 청각적인 짜릿함을 뒷받침하며 극의 밀도를 높였다. 직전 시즌의 일부 장면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전혀 다른 질감으로 완연히 다른 무대를 구성했다. 다만 조명 연출 역시 다소 번잡스러운 면이 있고, 무엇보다 직전 시즌에서 몹시 사랑했던 요소들이 사라진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연출 스포 있음※

 

 

1막 마지막 블러드머니에서 배신한 유다와 그 배신을 종용한 지저스 사이에 유일한 길처럼 그어지던 새빨간 핏빛 조명이 없어진 건 충격이다. 핏빛 조명을 밟으며 지저스를 향해 걸어가던 위태로운 유다의 뒷모습이, 지저스의 발치에 무너지듯 몸을 내던지는 유다의 절망이 얼마나 심장을 울렸는데! 이번 시즌은 역광의 조명을 받으며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지저스를 향해 다가가던 유다가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리고, 두 사람 사이에 얇은 실로 만든 발 형태의 막이 내려오면서 1막이 마무리된다. 위계관계가 확실히 드러났던 직전 시즌과 다르게, 이번 시즌은 유다와 지저스 모두 선 채로 똑같이 관객을 바라보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등함이 확연히 인식된다. 연출 의도는 이해하지만, 해당 조명 연출을 삭제한 이유는 모르겠다.

 

 

빌라도 등장 장면의 조명 연출도 아쉬웠다. 로마 조각상처럼 등장하는 지빌라도의 실루엣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이는 비단 조명만이 아니라 의상에 대한 불호로 이어진다. 지난 시즌이 화성 같은 허허벌판에서 의상만 당시 시대상을 일부 고증하려 드는 은근한 괴리감이 있었는데, 이번 시즌은 역시 번잡스럽다. 지저스의 연회색 긴 카디건과 발목까지 오는 흰색 운동화의 상징성을 모르겠고, 빌라도의 선 많은 앞섶 카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슈퍼스타 메인 여앙들 바지는 왜 털북숭이인 걸까. 마리아의 치마 한쪽을 허벅지까지 찢어야 할 필요가 정말로 있는가.

 

 

라스트서퍼에서 무대 앞쪽 바닥에 좌우로 길게 까는 흰색 천은 지저스의 폭주를 더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였다. 직전 시즌에서는 제자들이 각각 잔을 들고 나와서 마셨는데, 이번 시즌은 흰 천 앞에 앉은 지저스가 직접 커다란 잔에 주전자의 와인을 따른 뒤 "이건 내 붉은 피" 라고 선언하고는 왼편의 제자에게 잔을 건넨다. "이 음식은 너흴 위한 나의 몸" 하며 난 같은 빵을 쭉 찢고는, 왼편에 하나 그리고 바로 오른편에 앉은 유다에게 건네면서 그와 눈을 마주한다. 직전 시즌에서 유다는 지저스와 다소 떨어진 구석 자리에 서서 망설임 가득한 눈으로 지저스의 피와 몸을 든 제 손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부질없는 소망 확신 없는 기대" 라 평하며 벌떡 일어난 지저스는 흰색 천 가운데를 확 끌어당기며 상을 엎어버린다. 이는 1막 템플에서 옷장을 밀어 넘어뜨리던 행동과 더불어 과격하지만 인간적인 그의 면모를 부각한다.

 

 

유다데쓰 동선도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시즌에서는 유다가 뒤돌아본 순간 하늘의 선고처럼 내려온 밧줄과 그 옆의 나무 한 그루가 극적인 그림을 만들었고, 그는 정해진 운명을 향해 휘청이며 걸어갔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조명이 비추는 바닥의 면적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디딜 곳이 사라지고 있음에 두려워하는 유다를 구석으로 몰아간다. 위태롭게 몰아세워진 유다는 결국 운명을 느끼고 미친 듯이 웃으며 객석 기준 오른편의 기둥을 타기 시작한다. 한 번 크게 휘청이며 떨어질 뻔한 유다가 다시 기둥을 오를 때, 기둥 안쪽에서 양손이 세 차례 정도 나와서 그를 붙잡을 듯 허공을 휘적이며 위태롭고 음산한 그의 결말을 예고한다. 가운데에 내려온 다리 위까지 오른 뒤 "오직 당신만을 위해" 행한 일이라며 절망하는 유다의 머리 위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끝내 그 밧줄에 목을 건 유다가 고개를 툭 떨구는 순간, 뒤편 천장 조명에서 붉은 조명이 강하게 내리쬐며 목 매달린 그의 흉상을 실루엣으로 그려낸다. 마치 성자의 후광처럼, 하지만 새빨간 핏빛으로. 그대로 무대 구조물이 위로 올라가 퇴장한 유다는, 새하얀 락스타의 옷으로 무장한 채 퇴장동선의 반대로 위에서 내려온다. 하늘로 올라간 유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는 동선으로 상징성이 보다 명확해졌다.

 

 

 

 

수많은 변화 중 마음에 쏙 드는 연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채찍씬이다. 직전 시즌에서는 상의가 벗긴 지저스가 형틀에 묶이고, 붉은 조명 아래 군인이 채찍질을 하는 동안 형틀이 제자리에서 돌아갔다. 앙상블은 그 뒤편과 앞편에서 그 모습에 환호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는, 무대 양끝에서 길고 튼튼한 줄을 꺼내와 좌우로 벌린 지저스의 양팔에 휘감아 묶는다. 당장 그를 죽이라 핏대 세워 외치는 앙상블들이, 사랑하고 따랐던 그를 한순간에 저버린 군중들이, 지저스에게 채찍질을 가한다. 채찍 소리에 맞춰 아크로바틱을 하며 지저스를 내리치는 군중이라니. 스스로 죄를 더하는 인간과, 그럼에도 "저들을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하는 지저스의 희생이 대비되며 전율이 일었다. 가혹하고 적나라하지만 적확하게 본질을 꿰뚫는 이 장면이 소름 끼치게 좋았다.

 

 

짘슈는 역시 짘슈다. 불호가 많았음에도 좋았던 것 위주로 후기를 남기고 있다는 것이 이를 절감케 한다. 다시 돌아와 주기만 한다면 준전관을 뛰리라 다짐했건만, 화가 나는 상황과 복잡 미묘한 평가 사이에서 마음이 어지럽다. 그럼에도 최소 두어 번은 더 관극 할 예정이므로, 여기에 채 담지 못한 말들은 다음 후기의 숙제로 미뤄본다. 반갑지만 반가워만 할 수 없어서 슬픈 작품, 덕분에 올 겨울이 심란하네요.

 

공지사항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