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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발라드
in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2020.10.23 9시
김재범 탐, 김려원 세라, 이건명 마이클, 장은아 나레이터.
5년 만에 다시 만난 이 극은 여전히 강렬하고 매력적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객석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허용된 사회적 거리두기의 범위 안에서 최대한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소통하려는 연출이 다정하여 기껍고 고마웠다. 삼각형의 형태를 적극 활용한 대칭적이고 깔끔한 무대가 모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극 본연의 분위기를 더 정확하게 살린 건 이번 시즌이 아니라 15년 연출이었다. 직선과 사각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가운데 당구대가 배치되어 있던 당시의 무대는 투박하지만 밀도 높은 농염함을 쉽게 만들어냈다. 매캐한 담배 연기로 항상 뿌옇고, 길거리 특유의 쿰쿰한 악취가 늘 옅게 배어있으며, 지독한 술냄새가 절대 가실 일 없는 뉴욕 뒷골목이 저절로 연상됐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이 만들어낸 공간은 잘 멸균되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바였다. 주구장창 담배를 피워대는데 금연초의 깔끔함이 떠올랐고, 계속 술을 들이키는데 무알콜 음료의 단정함이 느껴졌다. 이로 인해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혹이 반감되어 아쉬웠다.
나레이터가 세라를 비웃으며 세 사람을 조종하는 장면의 조명 연출이 너무나 섹시했다. 특히 강렬한 색감의 조명을 가르는 장은아 나레이터의 손짓과 절정에서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 않도록 하는 연출이 최고였다. 넘버를 가지고 노는 장나레의 목소리와 순간순간 돌변하는 표정으로 촘촘하게 쌓아가는 노선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갈수록 애착이 가는 배우라서 앞으로의 차기작이 벌써 기대가 된다. 김려원 배우는 자첫이었는데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깊어지는 눈빛과 절정에서 긁어내는 파워풀한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게다가 커튼콜에서는 또 얼마나 귀여우시던지! 리지에서 못 만났던 게 다시 아쉽다.
충무 블랙보다 음향은 훨씬 깔끔했다. 냉방이 빵빵해서 마스크 쓴 관객으로서는 쾌적했지만, 맨다리에 양팔을 다 내놓은 여성 배우 두 분이 걱정됐다. 극 시작 전 가죽 자켓을 입고 있음에도 계속 춥다고 말하던 장나레의 표정이 자꾸 마음에 밟힌다. 말 나온 김에 왜 여성들의 의상은 몸매를 다 드러내는 섹시함을 강조해놓고, 남성들은 탐이고 마이클이고 죄다 촌스러운 난방을 두텁게 입혀놓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눈만 마주치면 왜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알게된다는 탐의 매력이 외적으로 표현되지 않아서 몰입이 떨어졌다. 나른하면서도 저돌적이고 무심하면서도 정열적인 특성이 보이지 않으니, 세라나 나레이터의 감정에 공감이 되질 않았다.
아쉬움과 반가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관극이었다. 심야공임에도 맹렬하게 뛰어놀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커튼콜에서 함성과 환호를 양껏 쏟아낼 수 있는 일상이 너무나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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