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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키부츠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10.28 8시
박은태 롤라, 이석훈 찰리, 김지우 로렌, 심재현 돈, 이하 원캐.
공원 초대 이벤트 덕분에 은롤라 세미막이자 은석훈 페어막으로 자체자막을 했다. 워낙 단순하고 깔끔한 극이라서 한 시즌에 한 번만 관극하곤 했으나, 이번에는 은롤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발랄하게 무대를 꽉꽉 채워내는 은롤라의 목소리와 잔망과 춤이 충만한 행복을 선사했다. 함성과 떼창이 불가한 시기여서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씨뮤가 박제를 후하게 남겨주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랬어.
Be Yourself.
너 자신이 돼라.
타인은 이미 차고 넘친다!"
후기는 크게 쓸 말이 없으니 새삼스럽게 박은태 배우에 대한 단상이나 남겨볼까 한다. 15년에 JCS 은저스로 처음 만난 이래로 어지간하면 필모를 놓치지 않고 있는 이 배우 말이다. 3년 전 벤허 초연 후기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었다.
"확실히 연기의 깊이와 농도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도리안 은헨리를 통해 배우의 발전과 성숙이 무엇인가를 목격했고,
팬텀의 은에릭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의 완성형이 어떠한 형태이리라 가늠해봤고,
매다리의 은버트를 통해 배우가 표현할 수 있는 감정선의 깊이와 폭이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가 고민했다.
그리고 은벤허는, 이 배우를 통해 만나봤던 모든 역할들을 통틀어 최고의 표현력과 감정선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어쩜 이렇게 다양한 극을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지, 관객으로서는 그저 놀랍고 고마울 뿐이다.
필모 따라다닐 의지가 생기는 배우다, 정말."
이 이후로도 여러 작품에서 이 배우를 만났다. 프랑켄 삼연, 매다리 재연, 스위니, 그리고 모차르트까지. 지바고와 지앤하는 연출 때문에 관극을 포기했고, 벤허 재연은 굳이 챙겨보지 않았다. 어떠한 극과 인물이든 특유의 단단한 단정함을 잘 녹여내는 배우였는데, 어느 순간 그 올곧은 매력이 너무 익숙해졌다. 극 안의 인물보다, 그 인물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연기하는 배우가 더 잘 보였다. 배우의 해석이 눈에 밟히니 이야기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두게 되고, 배우의 연기가 시야에 잡히니 인물에게서 두 걸음 물러서게 됐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짜릿함을 선사해주는 훌륭한 배우지만, 그래서 관극을 가기까지의 망설임이 조금씩 길어졌다. 은토드의 에피파니가 선사하는 강렬함과 인생캐 은모촤가 쏟아내는 온갖 감정이 눈부셨지만, 다시 보러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짙어지던 아쉬움이 고착화될 즈음, 이 오만한 관객을 꾸짖기라도 하듯 상상치도 않은 차기작을 들고 돌아왔다. 롤라라니. 정직한 춤사위로 은각목각이라는 별명을 지닌, 높은 텐션의 흥보다는 잔잔하고 귀여운 신남만 내보이던 이 배우가, 무대를 휘어잡는 왕언니 드랙퀸이라니. 걱정보다 기대가, 의아함보다는 신선함이 앞섰다. 시국 때문에 자첫이 미뤄졌지만, 덕분에 한층 완전한 롤라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인물에 자신의 색을 물들인 은롤라에게서, 더는 박은태 배우를 볼 수 없었다. 짙은 화장, 새로운 캐릭터, 파격적인 의상 때문이 아니었다. 치열한 고민으로 구축한 노선으로 완벽하게 이야기에 녹아든 은롤라가, 재연으로 자첫한 이후 내내 바라던 바로 그 롤라였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도 눈부시고 아름다운, 당당하고 사랑 가득한 따뜻한 롤라 말이다.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배우를 보며 공연예술을 향한 벅찬 감동과 사랑을 다시 채워간다. 앞으로도 믿고 보는 배우로써 꾸준히 반짝여주리라 믿는다. 차기작 또한 이 작품만큼 신선한 젠틀맨스가이드여서 몹시 기대된다. 초연에서 뎅몬티로만 만난 몬티라는 인물을 박은태 배우만의 색깔로 어떻게 물들일지 궁금하다.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로 만나서 행복했고, 차기작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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