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페라의 유령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07.18 7시
조나단 록스머스 팬텀, 클레어 라이언 크리스틴, 맷 레이시 라울, 베벌리 차이앗 칼롯타. 내한 오유 자셋.
오랜만에 초대 당첨이 됐는데 무려 중블 4열 정중앙을 받아서 감격스러웠다. 공원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자둘 이후 한달만의 자셋 관극이었는데, 장기간 거의 원캐로 이어진 공연 때문인지 조나단팬텀의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선과 굵직굵직한 디테일은 여전했고, 피날레 장면의 노선이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겨서 신선했다. 게다가 지난 관극에서 살짝 불호였던 클레어크리가 이날 너무 훌륭해서 행복했다. 오유 자첫에서는 라울에게 집중했고, 자둘에는 팬텀에게 공감했는데, 자셋에서는 크리스틴에게 몰입했다. 관극마다 새로운 관점을 취하게 되는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매번 1열에 앉다가 4열에 앉으니 전체적인 무대는 물론이고 샹들리에까지 온전하게 시야 한가득 담을 수 있었다. 연출이 의도한 웅장함이 오감을 압도했다. 음향은 다소 아쉬웠지만, 클레어크리가 시원시원하게 소화하는 모든 넘버들을 만끽하기에는 충분했다. 팬텀을 향한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연기와 노선까지 완벽하게 취향이어서 행복했다. 크리스틴이 워낙 만족스럽다보니, 라센 버젼의 역대 한국 크리스틴들이 새삼 궁금해졌다. 라센 삼연 정말 언제 돌아오는 거죠..?
스포있음
지난 자둘 관극의 피날레에서 조나단팬텀은 처참하다고 표현할만큼 처절했지만, 이날은 담백하면서도 묵직했다. 온세상에 외면당한 고독을 표현하는 방점이 달랐다. 지난달 공연에서는 동정을 보이라는 라울의 절규에 이 세상이 나에게 그런 걸 보여준 적이 없노라 답하며 짓는 표정을 통해 고독을 명확하게 보여줬다면, 이날은 크리스틴에게 돌려받지 못한 사랑으로 인한 아픔을 더 강조했다. 한마디로, 마스커레이드맆보다 뮤옵나맆이 훨씬 짙고 맹렬했다. 크리스틴이 돌려준 반지를 다시 제 새끼손가락에 끼우고 키스한 팬텀이 애틋하고 애절하게 "I love..." 라고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올아이맆이 울려퍼지며 뒤쪽으로 크리스틴과 라울이 배를 타고 지나간다. 그 찰나 절망하는 표정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라울과 동일한 문장으로 똑같이 사랑을 고백했음에도 자신이 아닌 그를 선택한 크리스틴. 가만히 그 이름을 읊조리는 길 잃은 듯 망연한 얼굴.
피날레 마지막에 리프라이즈로 반복하는 뮤옵나 마지막 소절. 1막에서는 단단한 심지를 지닌 얇은 가성을 쭉 이어내며 크리스탈처럼 반짝이지만, 피날레에서는 보다 강하고 굵게 절망을 뿜어내며 맹렬하게 공간을 휘감는다. 이 차이가 이전 회차들에 비해 더 명확해서, 팬텀이 느끼는 고통의 색감마저 완연히 달랐다. 뮤옵나맆의 끝에 소중히 품에 안았던 하얀 베일을 내던지듯 바닥에 떨어뜨린 그가 의자에 푹 몸을 파묻는다. 자신을 추격한 사람들을 휙 돌아보는 표정이 평소보다 단단했다. 마치 이 좁은 오페라하우스 지하를 벗어나 또다른 인생을 "선택" 할 것만 같은 고집스러운 입꼬리. 지난 관극들과 사뭇 다른 이날의 팬텀이 새로운 만큼 애틋했다.
곱씹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건 무대라는 환상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게 만드는 오버츄어부터 극적인 엔딩까지, 이 극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황홀하다. 현실 따위는 완전히 잊고 오롯이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경험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귀하다. 공연장이 어디이든, 배우가 어느 국가에서 왔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이든, 이 인물들과 이 넘버들만 존재한다면 바로 그곳이 파리 오페라하우스다. 오유는 이미 온전히 독립된 하나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 빠져들고 말았기에, 환상이되 환상이 아닌 이 작품을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 극이 바로 Music of the Night 이기에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페라의 유령 (2020.08.08. 2시) (0) | 2020.08.11 |
---|---|
오페라의 유령 (2020.07.26 2시) (0) | 2020.07.28 |
모차르트 (2020.07.15 8시) (0) | 2020.07.18 |
제이미 (2020.07.11 2시) (0) | 2020.07.14 |
렌트 (2020.06.26 8시) (0) | 2020.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