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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in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20.07.15 8시
박은태 볼프강, 신영숙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민영기 콜로레도 대주교, 윤영석 레오폴드, 전수미 난넬, 김소향 콘스탄체, 김영주 체칠리아, 문성혁 쉬카네더, 이시목 아마데, 정희우 어린 난넬, 이하 원캐.
라센 10주년을 맞이한 이 극을 이제야 마주한 이유는, 연뮤덕이라면 대부분 짐작하리라. 16년도 시즌에서 성범죄자 기용 시도라는 잘못을 자행하고도 제대로 반성조차 하지 않은 제작사로 인해, 작품에 오명이 남았다. 이 사건의 여파는 제법 크고 길었고, 한 명의 소비자로써 나 역시 이 제작사의 작품은 가능한 안 보고 덜 보는 선택을 지속하고 있다. 흔치 않은 대극장 여주원탑극을 많이 소유하고 있음이 애통할 정도로. 그 흔한 재관람할인조차 없을 뿐더러, 주말차등제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기에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도 없다. 연뮤덕으로써는 말 그대로 애증의 회사다.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이 기업형 제작사가 내놓는 대극장 뮤지컬들은, 라이센스든 창작이든 무대연출만큼은 기깔난다. 양껏 자본을 투자한 화려한 무대와 조명은 시각적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거의 항상 만족스러웠다. 다만 안전을 제일로 두지 않아서 배우들이 발을 내딛는 무대가 흔들린다거나 이동동선이 비좁고 위태롭다거나 하는 안전 이슈가 매번 있다. <팬텀> 초연 때 주연배우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음에도, 그 이후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관객마저 불안하게 만드는 무대 장치가 자주 보인다는 점이 짜증나고 걱정스럽다. 이 극에서도, 회전하며 위로 솟아 계단을 만들어내는 바닥 무대가 모차르트가 뛰어다닐 때마다 스프링 튕기듯 불안하게 흔들리더라. 사고만 안나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를 언제쯤 시정할지 참으로 궁금하다.
스포있음
극의 모든 장면들은 아름답고 화려했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성격에 부합하는 테마로 구축한 무대 디자인이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렸고, 매끄럽게 움직이는 여러 회전무대와 좌우로 이동하는 다양하고 거대한 무대 장치들이 장면의 화려함을 더했으며, 적재적소에서 다채로운 색으로 반짝이는 조명과 영상연출이 짜릿한 시각적 희열을 선사했다. 특히 피날레에서 지독한 절망 속 암전에 가까운 어둠이 내려앉던 순간, 무대 안쪽 화면에 강한 색감의 물감을 풀어놓듯 터뜨리는 영상과 함께 조명이 비치는데 그 맹렬한 자극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세종대극장 조명이 마음에 든 적이 없었는데, 이 극에서는 눈부시게 예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역시 음향은 최악이었고.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관극했음에도, 제대로 듣지 못한 가사들이 많다. 무대가 넓어서 보기엔 시원시원했으나, 듣기엔 최고로 답답했다.
다양한 장르와 각색으로 수없이 다뤄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는 실존 인물의 인생을, 이 극은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10년 간 여섯번이나 올라온 이 극의 연출이 시즌마다 자주 달라진 것으로 아는데, 그 성공과 실패를 거울 삼아 10주년에는 좀 더 완성도 있는 연출을 보여주리라 기대했다. 기대를 좀 과하게 하기는 했다. 엠개극의, 이야기 연출을. 개성 강한 다양한 인물들은 궁극적으로 주인공 모차르트라는 구심점으로 모여야 하건만, 선택과 집중의 균형이 적절하지 못하여 다들 산발적으로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배우들 각자가 지닌 이해는 깊고 연기는 짙었지만, 극을 관통하는 연출이 부재하니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2막 내내 공감이 안됐다. 처절하게 무너져내리는 은차르트의 절망은 지독하고 처참했지만, 그 감정에 몰입이 안되니 관조를 넘어설 수 없었다. 천재의 인생을 고작 이렇게 재구성하다니, 많이 실망스러웠다.
마마님의 황금별 하나만으로 이 관극은 유의미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벅찬 황홀감에 휩싸여 눈물이 저절로 주륵주륵 쏟아졌다. 황금별맆은 오싹할만큼 잔인하게 눈부셨고, 커튼콜의 황금별 합창은 따뜻하게 반짝였다. 1막 피날레 내 운명 피하고 싶어 넘버와 2막 후반부는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했기에 이 극이 더 아쉽다. 황금별맆과 미친 듯이 작곡하는 마술피리와 밤의 여왕, 쉬운 길은 늘 잘못된 길이라 대주교와 팽팽하게 맞부딪히는 장면, 레퀴엠과 임종 직전의 독백, 아마데의 손에 심장을 찔리는 죽음까지. 텅 빈 무대 가득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음표가 나풀거리고, 앙상블의 목소리가 공간을 채워낸다. 넘버들이 이어지는 동안 무대는 여전히 텅 비어있다. 메들리의 끝에 내운피맆을 부르는 은촤의 목소리가 더해진다. 왼편에서 재등장한 모차르트가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순간, 아마데이자 어린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드가 서로를 끌어안는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붉은 코트 뒷면을 형상화한 무대막 붉은 커튼 사이로, 바로 그 붉은 코트를 입은 뒷모습을 보여준 오버츄어. 이야기의 결말을 꽉 닫아버린 피날레. 일관성 있는 시작과 끝이 이야기의 완결성은 높였으나, 어지럽고 산발적인 중간 과정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그래서 1막 나나음, 황금별, 내운피와 2막 황금별맆부터 피날레, 그리고 커튼콜만 다시 보고 싶다. 자둘을 하면 감상이 다소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먼 자리에서 끔찍한 음향을 참아내기엔 15만원이 아쉽다. 많이 기대했던만큼 아쉬움이 짙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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