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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in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07.26 2시

 

 

 

 

조나단 록스머스 팬텀, 클레어 라이언 크리스틴, 맷 레이시 라울, 베벌리 차이앗 칼롯타. 내한 오유 자넷.

 

 

알고있음에도 재차 새롭고 익숙함에도 매번 놀라운 이야기가 무대 위에 있다. 오버츄어가 얼마나 웅장할지, POTO가 얼마나 압도적일지, 뮤옵나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올아이가 얼마나 반짝거릴지, 노리턴이 얼마나 농염할지, 피날레가 얼마나 애틋할지, 안다. 그럼에도 눈부시게 황홀한 아름다움은 온몸을 사로잡으며 짜릿한 전율을 선사한다. 바로 그 공간, 바로 그 찰나에만 존재하는, 모든 것이 완벽한 순간. 두려움마저 압살해버리는 지독한 아름다움에 휩싸여 헤어나지 못하던 크리스틴이 온전하게 이해되는 극강의 유혹. 이 무대를, 공연이라는 장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과연 도래할까.

 

 

팬텀의 매혹을 가장 극렬하게 보여준 이날의 뮤옵나는 풍성한 노래부터 섬세한 손끝까지 완벽했다. 유려하게 흐르는 마법 같은 팬텀의 음악에 맞춰 사로잡히고 황홀해하고 휩싸이는 크리스틴의 표정 하나하나가 이 넘버를 온전하게 완성시켰다. "the power of the music of the night" 가 완전한 실체를 가지고 공연장 전체를 우아하고 부드럽게 압도했다. 크리스틴의 뒤에 바짝 붙어선 조나단팬텀이 "Trust me" 하고 그의 귀에 속삭이듯 명령하듯 대사조로 단언하는 이날 디테일까지 완벽했다. 어떠한 환상이든 현실로 만들어줄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의 속삭임. 이 달콤한 유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겠는가. 그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순간, 이제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스포있음

 

 

이날 피날레의 팬텀은, 크리스틴에게 선택을 강요할수록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길로 치달았다. 건반을 내리치듯 두드리며 바로 이것이 "point of no return" 이라 선고하는 절규는 비단 크리스틴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거칠수록 점점 더 처절해지는 팬텀은 어미를 잃고 무리에서 내팽개쳐진 어린 짐승과 다름 없었다. "You try my patience!" 라고 강압적으로 포효한 뒤, 으르렁 대며 "Make your choice!" 하고 외친 팬텀이 오른팔을 들어 소매로 입을 가리는 디테일은 이날 처음 봤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4열까지 생생히 들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도록 신께서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며 "You are not alone" 이라 노래한 크리스틴은 팬텀을 돌려세워 키스한다. 더 깊고 다정한 두 번째 키스. 왼쪽 얼굴에 이어 흉측한 오른쪽 얼굴까지 섬세하게 쓰다듬는 손길. 차마 그를 마주 끌어안지 못하고 허공에서 배회하는 팬텀의 커다란 두 팔. 입술을 매만지며 혼란스러운 얼굴. 결국 크리스틴을 놓아주며 "Leave me alone!" 이라 외치는 팬텀의 말이, 평생을 갈구해온 "You are not alone" 이라는 크리스틴의 위로와 포개진다. "Go!!" 하고 위협하려 양팔을 들고 두 사람에게 일부러 달려드는 넓은 보폭과 큼직한 걸음걸이가 야생의 짐승 그 자체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더 크게 몸짓을 부풀리는 위태로운 자기방어기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돌아온 크리스틴을 바라보는 팬텀의 얼굴에 옅은 기대가 스치지만, 그가 건네는 반지를 본 순간 눈동자가 흔들린다. 순간 미세하게 끌어올리는 입꼬리가 잔인하고 마땅한 현실을 마주한 허망함을 담아낸다. 소중하게 그 손을 붙잡고 "Christine, I love you." 라고 마지막으로 매달려보지만, 명확한 거부의사를 담은 뿌리침에 크리스틴을 놓아준다. 돌려받은 반지를 빤히 응시하다 다시 제 새끼손가락에 끼운 뒤 다시 한 번 읊조리는 고백. "I love you." 바닥의 베일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디테일도 이날 처음 봤다. 자신을 떠나기로 한 그대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듯,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를 납득한다는 듯. 소중히 입 맞춘 베일을 가슴에 끌어안은 팬텀은 짙은 음색으로 길고길고길게 뮤옵나맆 마지막 소절을 부른다. 베일을 무대 한가운데에 두고 가듯 떨어뜨린 그가 의자에 앉아 뒤쪽 추격자들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휙 돌린다. 찰나 그 시선의 끝에 맺히는 건 새하얀 베일과 오르골. 음악을 완성시켜준 사랑과 음악으로 위로해준 친구. 그 모든 것을 이곳에 남겨두고 가면 하나만 남긴 채 오페라극장을 떠나는 오페라의 유령.

 

 

 

 

무대와 조명, 음악과 이야기까지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이 완벽한 극이 영원히 오픈런하길 바란다. 이렇게 사랑하게 해놓고 떠나버릴 거라면 라센 삼연 예정일이라도 두고 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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