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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4.25 7시

 

 

 

 

류정한 드라큘라, 조정은 미나, 강태을 반헬싱, 진태화 조나단, 김수연 루시, 김도현 렌필드, 이하 원캐. 류큘 자아홉, 류선녀 자셋 관극. 이틀 전 공연과 완전히 똑같은 캐슷이기에 막연히 오늘 공연도 좋겠거니, 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며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이 교만함은 첫 넘버 Solitary Man 부터 와장창 부서졌고, Fresh Blood 를 거친 뒤에는 렌필드처럼 "언제나 감사하며 언제나 순종하며" 를 되뇌고 있었다. 쩌렁쩌렁한 Life After Life 와 It's Over 가 짜릿했고, 상체를 높게 튕기며 크게 신음소리를 토해내는 Mina's Seduction 이 섹시했지만, 가장 좋았던 장면은 At Last 부터 Loving You Keeps Me Alive 까지 이어지는 감정과 Finale 의 서사였다. 특히 프블과 러빙유는 삼연을 통틀어 손꼽히게 좋았고, 피날레는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완벽했다.

 

 

※스포있음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이 이끄는 사랑 하나에 아파하고 흔들리고 유혹하고 휩싸이고 절망하며 끝내 선택을 내리는 류선녀의 노선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운명을 피해 방황의 끝에 내 앞에 그대 서있네요" 라며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며 마침내 다시 만난 삶의 유일한 빛을 소중히 끌어안는 류큘. "운명을 피해 왜 싸웠는지 난 이제 그대 앞에 있죠" 라며 빛을 포기하고 영원한 어둠으로 향하는 선녀미나. 그러나 어둠이 제 유일한 빛을 탐하여 삼켜버린다면, 그 빛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길로 치닫는 운명.

 

 

 

 

목에 걸린 십자가를 끊어 내던진 미나가 "내 사랑을 위해" 라고 말하자, 고개를 가로젓는 류큘. 자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미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에. "400년 동안 당신을 사랑해왔어요." 라는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바로 직전 공연인 0423과는 또다른 색감이라는 것이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내 사랑이 당신 모습을 파괴하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워요." 라는 대사를 "당신 영혼"이라고 바꿔서 말했다. "난 미나를 사랑해"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스스로를 설득하듯 희미하게 입꼬리를 말았지만, 자신의 사랑이 저 뿐만 아니라 미나의 영혼까지 파괴해버리리란 것을 깨달았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야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류큘과, 그 말을 머리로 이해했으면서도 영혼까지 내던질 정도로 그를 사랑해버린 가슴이 이기지 못한 선녀미나의 예견된 결말.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미나를 이끄는 류큘. 0423 공연에서는 피날레 끝까지 다 부른 뒤 미나의 손에 애절하게 꾸욱 키스했는데, 이날은 "그댈 위해 내가," 하고서는 몸을 관 너머까지 푹 숙이며 미나의 손에 깊게 키스했다. 스스로를 찌른 뒤 미나, 하고 중얼거린 류큘은 입가를 가로로 길게 늘이며 미소를 건다. 삶의 유일한 빛을 통해 비로소 저 역시 구원을 얻었다는 듯이. 제 손으로 사랑을 떠나보낸 미나는 단발마의 비명을 여러 번 내뱉으며 눈앞의 현실을 부정한다. 사랑만을 원한 그를 "용서해요" 라는 마지막 말이 지난 공연에서는 신을 향한 것이라 느껴졌는데, 이날은 미나 자신이 드라큘라를 용서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랑을 위해 사랑을 포기한 류큘과, 그 사랑을 용서한 선녀미나. 완전하게 매듭지어진 결말.

 

 

 

 

서사를 완성시킨 피날레가 너무 좋아서 앞 장면들의 디테일이 싹 휘발되어 버렸다. 그래도 기억을 끌어모아 조금이라도 남겨본다. 프블에서 앞머리 쓸어넘기는 건 이제 고정된 듯하여 행복하다. 위트비베이 첫 등장의 왕자님 같은 빨간 코트와 두 번째 등장의 잘생긴 검은 코트가 매번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특히 "난 당신을 알아요." 하면서 성큼성큼 다가오다가, "그리고 당신 또한 나를 알죠" 라며 보폭을 좁게 하며 좀 더 빠르게 걷는 걸음걸이가 그의 생각을 완벽하게 드러낸다. 미나 역시 자신을 원하리라고 당연하게 믿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작은 행동 디테일 덕분에, 그의 거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되지 않는 열정에 휩싸여 루시를 물어버리는 류큘의 행동에 한층 설득력이 생긴다.

 

 

She "악마에게" 는 낮추고 "팔아서라도" 는 높여 불렀다. At Last 에서 "운명을 피해 방황의 끝에," 하면서 애틋하고 절절한 눈으로 미나를 바라보고 "내 앞에 그대 서있네요" 하고 긴 세월의 인내와 마침표를 드디어 찍는 듯한 얼굴을 보인다. 러빙유에서 자신을 떠나려는 미나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제발," 하고 괴로워하고, 조나단 목소리에 고개를 저으며 또다시 "제발," 하면서 오른손을 들어 고통스럽게 귀를 막는다. 넘버 끝나고 그대로 무릎 꿇은 채 절망을 토하듯 아아악, 아악, 하며 비명지르는 처절함이 최고였다. 부케는 멀리 날아가서 아예 안받았지만, 눈빛은 흉흉했다. 랖앺랖이 너무 좋아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하며 이어지는 마지막 파트가 영원히 이어지길 속으로 간절히 바랄 정도였다.

 

 

시덕션에서 신음소리를 내뱉는 디테일은 3월말 회차부터 있었는데, 이날은 허리를 튕기듯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너무나 명확하고 큰 소리로 신음을 토해냈다. 이 디테일 유지 부탁 드립니다.. 걱정과 다정함을 담아 미나를 끝까지 챙기다가 낮게 무게중심을 유지하며 일어서는 잇츠오버. 도입부 "보내줄 때 떠나!" 부분을 대사처럼 고함쳤다. 누구의 죽음도 원치 않는다는 미나를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좁히며 답답함과 먹먹함을 담아 내는 표정. 트시가 끝나고 관이 올라갈 때 미나, 미나, 하고 이름을 읊조리는 디테일도 좋았다. 더롱거 너무 좋은데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표현할 길이 없다. 이날 마지막 가사 부분에서 관을 손으로 계속 짚으며 울먹이듯 노래했다. 반헬싱이 줄리아를 죽이는 순간 뒷걸음질 한 번을 했고, 이런 걸 원한게 아니라며 그를 나아가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듯 가까이 다가간다.

 

 

(덧. 아주 사소한 지난 회차의 디테일. 0423 공연에서 "스스로의 열정에 휩싸이다 보면 통제가 잘 안 돼요." 라는 대사를 "스스로의 열정에 빠지다 보면 조절이 잘 안 돼요" 라고 바꿔서 했었는데, 이날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스터송맆에서 렌필드에게 "멍청한 놈" 하고 나서 쯧쯧쯧 혀를 찼었는데, 이날은 예전처럼 혀를 먼저 차고 "멍청한 놈" 이라고 했다. 윙즈 넘버 중간에 상수에서 무대로 들어오는 류큘이 보이는데, 0423 공연에서는 "모두 버리고" 부분이었는데 이날은 조금 앞쪽인 "하늘 위로" 부분에서 나타났다. 0423 공연에서는 시덕션에서 제 옷을 벗기며 주저앉은 미나를 일으킬 때 몸을 숙여 그의 양팔 바깥쪽을 잡았고, 이날은 예전처럼 가볍게 얼굴을 한손으로 감쌌다.)

 

 

커튼콜 류배우님이 너무 멋있고 우아하고 잘생겨서 매번 감탄하며 비명 같은 환호를 지르게 된다. 언제까지나 무대 위에 계시길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감사하며 순종합니다. 마음껏 좋아할 수 있기에 너무나도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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