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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4.26 7시

 

 

 

 

류정한 드라큘라, 임혜영 미나, 손준호 반헬싱, 이예은 루시, 이충주 조나단, 조성린 렌필드. 류큘 10차, 류임 6차 관극. 무려 한 달만의 류임이 너무 좋아서 공연 내내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이 페어의 다음 공연이 20일 뒤라니..

 

 

후기 시작 전에 연출 몇 개만 먼저. 무대감독님과 진심 면담 좀 하고 싶다. 중블 4열 중앙에서 살짝 왼쪽에 앉았는데 마지막 드라큘라 표정이 전혀 안 보인다. 아무리 이유를 붙여주고 싶어도, 가장 중요한 엔딩 장면에 시방을 야기하는 이 연출은 도무지 납득도 이해도 안 된다. 이럴 거면 왼블 전부 시방석 깔고 싸게 팔든가. 배우가 일부러 몸을 숙이고 최대한 관 바깥쪽에서 연기를 한다고. 관에 이것저것 붙어있는 장치가 어차피 지금도 잘 보이는데 굳이 그 각도를 왜 고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소대 뒤에서 우당탕 소음도 심하다. 0423 공연에서 She 끝나고 뒤쪽 기차역 기둥이 미친 속도로 내려와서 바닥에 쿵 부딪히는 걸 보고 기함했다. 그리고 조명이 한 번에 켜지지 않고 다단계로 들어오는 부분이 몇 있던데, 역시 이해가 안된다. 특히 위트비베이 한밤중 장면에서 큘미나 오른쪽에 있을 때 푸른 조명이 딴딴딴딴 하고 단계적으로 켜지는 게 연출 상 의도인가요? 미나의 깨달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뭐 그런 효과인가요??

 

 

그래도 지난번에 후기에 남긴 불호 몇 가지는 해소되어 만족스러웠다. 3월말부터 원미솔 음감님 오케 속도 낮추려고 노력 많이 하시던데, 이날 이번 드큘 공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박자 어긋나는 건 있지만, 이 정도로만 평균을 맞춰줘도 감읍할 따름이니 앞으로 남은 기간도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퇴장음악 끝까지 듣고 박수 더 치고 나왔다. 묘지 벽 사이 틈으로 빛 새어나오는 것도 확실히 없어졌고, 후기에는 남기지 않았지만 트시 직전 하수에서 관 올릴 때도 무대 아래쪽은 천으로 막아서 객석에서는 안보이게 수정한 것도 좋았다. 하지만 침대는 여전히 푹신하여 불안하다. 바닥이 불안정하니 가뜩이나 긴 망토자락에 걸려 이날 프블에서 류큘이 크게 휘청이기까지 했다. 단상 높이나 소품 등을 이번 시즌 내 수정하긴 어렵겠지..

 

 

도현렌필드는 흠 잡을 곳 없는데다가, 초반 공연 때 아쉬웠던 "항구에 있는 주인님의 배"를 계속 정확하게 말해줘서 너무 좋다. 3주 쉬고 오더니 목까지 짱짱해! 성린렌필드는 광기 어린 노선이 명확해서 재미있다. 탤헬싱도 "여기 이 지대를 통과하고 있어" 라는 대사를 추가해줘서 좋고, 손헬싱은 중간중간 비열한 대사톤 넣는 게 취향이다. 다만 이날 손헬싱 대사를 좀 씹어서 아쉬웠다. 루시들도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침대 위에서 호흡 좀 덜 티나게 해줘서 감사하고. 수연루시 노선을 사랑하고 예은루시 목소리를 아낀다. 충나단은 류큘 첫공 이후로 처음 봤는데, 목소리나 노선은 진나단보다 취향이지만 다소 뻣뻣하고 연기가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스포있음

 

 

미나 두 사람은 확연히 다른 노선을 각기 다른 디테일들을 통해 확실히 보여준다. 류선녀가 동질의 영혼이라면, 류임은 동색의 영혼이다. 선녀미나는 미나로서의 삶을 포기할 수 없기에 번뇌하고, 임미나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기에 괴로워한다. 선녀미나는 엘리자벳사의 감정에 이끌리고, 임미나는 엘리자벳사의 기억에 사로잡힌다. She에서 선녀미나는 객석을 향해 꼿꼿이 선 채 이야기를 들으며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표정을 얼굴 가득 담아내지만, 임미나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며 당장이라도 그 안으로 뛰어들듯 온몸으로 감정을 분출한다. 드라큘라를 만나기 전 선녀미나의 공허함은 텅 비어버린 허무라면, 임미나의 공허함은 모든걸 삼켜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블랙홀 같다. 그래서 선녀미나는 잔잔한 수면 위로 던져진 아주 작은 파동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휩쓸리는 느낌이라면, 임미나는 잠들어있던 휴화산이 작은 돌멩이 하나로 한 순간에 폭발해버리는 인상이다.

 

 

플돈미와 윙즈에서도 선녀미나는 휘몰아치는 혼란스런 생각들에 휩싸인 것 같고, 임미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이미 휩쓸려버린 듯하다. 그리하여 시덕션도 선녀미나는 류큘과 한몸처럼 맞물리고, 임미나는 류큘의 일부처럼 녹아든다. 트시에서 선녀미나는 류큘과 같은 타이밍에 같은 동작을 하며 류큘 자체가 되고, 임미나는 스스로의 의지로 반헬싱을 적대하고 류큘의 입장에 선다. Deep in the Darkness에서 선녀미나는 촛불을 끌 수 없기에 손으로 가리고, 임미나는 촛불을 끌 생각이 없기에 그대로 들고 있는다. 피날레에서 목에 건 십자가를 내던질 때도 선녀미나는 류큘에게서 등을 돌려 스스로 선택하여 내던진 빛을 한참 지켜보며 노래를 이어갔고, 임미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류큘만을 응시하며 영원한 어둠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그래서 두 미나를 향한 류큘의 마지막 역시 다르다. 북극성처럼 변함 없이 고결한 빛을 제 어둠으로 지울 수 없기에 선녀미나를 다시 빛으로 돌려보내고, 샛별처럼 찬란히 반짝이는 빛을 삼킬 수 없기에 임미나에게서 어둠이라는 선택지를 지워버린다. 가장 갈망하던 순간 모든 걸 잃어버린 미나가 묻는다. 그가 가엾지 않느냐고. 선녀미나는 운명에 저항하고 맞서다 결국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 류큘을 그의 유일한 빛으로써 직접 용서하고, 임미나는 그 선택을 하게 만든 운명을 비난한다. 선녀미나의 슬픔은 끝을 알 수 없이 가라앉는 처절함이고, 임미나의 아픔은 사방으로 분출되는 처참함이다. 어둠을 알아버린 선녀미나는 침잠하며 빛 안에서 삶을 살아낼 것 같고, 어둠을 잊을 수 없는 임미나는 끝내 빛을 거부하며 삶을 내버릴 듯하다.

 

 

 

 

길고 고통스러운 3주를 보상이라도 하듯, 류큘은 세 회차 전부 각기 다르게 완벽했다. 짱짱한 목소리와 풍성하고 볼륨감 있는 음색과 잘생긴 미모를 양껏 감상할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곱씹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즐겁고 기뻐서 자꾸 웃음이 새어나온다. 쌓아올리는 노선과 피날레의 감정선은 물론이고, 장면 별로 짜릿한 포인트가 매 회차 달랐다. 우울과 무기력을 단숨에 날려버리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디테일 몇 개는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Fresh Blood 에서 뱀슬에게 간단한 요기를 던져준 뒤 하늘을 바라보며 팔을 벌리는 동작이 너무 좋다. 침대에 올라갈 때도 긴 옷자락 때문에 살짝 휘청했는데, 내려올 때 자칫하면 넘어질 뻔했을 정도로 크게 헛디뎌서 깜짝 놀랐다. 그 와중에도 목소리는 하나도 안 흔들리는 걸 들으며 내적감탄을 했지만, 이것 때문에 후드가 금방 벗겨졌다. "강인한! 하고 날카롭게 부르는 평소 디테일을 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꾹꾹 눌러냈다. 0423과 0425 공연에서는 회춘 뒤 머리를 쓸어넘기는 걸 오블을 바라보면서 한 번만 했는데, 이날은 그렇게 넘긴 뒤 중블 왼쪽으로 와서 다시 한 번 더 머리를 넘겼다. 오블 왼블 공평하게 살롱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멋있으세요. 덕분에 삼회차 내내 눈앞에서 프블 디테일을 볼 수 있었다.

 

 

왕자님 같은 위트비베이의 낮은 너무 짧아서 매번 아쉽고, 마왕 같은 위트비베이의 밤은 너무 섹시해서 늘 행복하다. 미나가 아닌 루시의 등장에 멈칫하다가 눈앞의 싱싱한 먹잇감에 본능적으로 입을 여는 표정도 좋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며 그 유혹을 뿌리치는 얼굴도 사랑한다. 이 장면이 갈수록 마음에 드는 건 푸른 조명을 후광처럼 받는 검은 코트의 류큘이 너무나 멋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여기 대사를 통해 류큘의 생각과 태도가 확실히 표현된다는 점도 있다.

 

 

세 회차 모두 기차를 탈선시켰다는 이야기를 할 때 류큘의 표정이 유난히 해맑아서, 분명 기차란 기차는 죄다 탈선시키고 온 게 분명했다. She에서 "내 모든 걸 바쳤잖아" 라며 왼손을 들어 바치는 자세를 취하다가 제 가슴을 치는 대신 오른팔을 옆으로 촥 벌렸다. 0425 공연처럼 "악마에게"는 내리고 "팔아서라도"는 높여 불렀는데, 영혼을 '팔았다'는 행동에 방점이 찍히는 느낌이어서 순간 찌릿했다. 러빙유의 처절함은 0425 공연이 가장 컸고, 이날은 안돼, 안돼, 안돼, 하며 결혼식을 올리는 미나를 쳐다보다가 분노에 휩싸여 고함을 토해내는 형형함이 너무 좋았다. 부케는 0425 공연만 못받고 나머지 회차는 다 받았는데, 패대기 치지 않고 그대로 들고 나가서 살짝 아쉽다. 소품팀의 요청일 리도 없는데.. 극렬한 분노를 부케에게도 쏟아내주세요..

 

 

 

랖앺랖 "너는 나의 첫 창조물"이라는 날선 딕션도 짜릿한데, 루시의 팔을 쓸어올리며 짓는 섹시한 표정이 너무 좋다. 루시가 사냥을 시작하게 한 뒤, 무대 왼편에서 "영원한 삶" 을 굵게 부르며 오른팔을 들어올리는 자세도 너무나 사랑한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를 부르며 걸어가는 류큘의 등을 보며 항상 이 찰나가 영원히 계속되길 덧없이 바래보곤 한다. 시덕션에서 임미나가 거의 키스할 정도로 류큘과 얼굴을 가까이 하면서 "검게 드리우는 저 어둠" 이라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게 무척 좋았고, 침실로 넘어간 뒤의 일렁임이 최고였다. 주저앉은 미나와 눈을 맞추며 몸을 낮춘 류큘이 함께 일어나는 것도 좋았고, 이 부분에서 류큘의 목소리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섹시하고 아름다웠다. 신음은 0425 공연보다 작았지만, 반헬싱 무리가 평소보다 좀 늦게 들어온건지 미나가 오랫동안 류큘을 물고 있어서 몹시 즐거웠다. 잇츠오버가 끝나고 자신을 막아세우는 미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찌푸리는 그 표정을 언제나 사랑한다.

 

 

그리고 이날 레전은 Train Sequence 였다. 세상에. 풍성하게 부르는 랖앺랖 리프라이즈가 늘 엄청났지만, 이날은 그 모든 기억을 압살해버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위압감. 마지막 "영원한 삶!" 을 부르짖으며 긁어내는 그 목소리를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은 류큘의 얼굴이 지나치게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롱거가 뿜어내는 고독과 절망을 뛰어넘는 미모를 보며 이 찰나를 박제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어둠으로 뛰어드는 임미나가 오롯이 류큘만을 향하며 직진했기에, 류큘은 도저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고 끝내 비극으로 치닫는다. 0425 공연처럼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하고서는 미나의 손등에 깊이깊이 키스한 뒤 "떠날게요," 라며 배를 푹 찌른다. 남겨진 임미나가 암전이 내리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영혼을 토해내듯 절규하는 비명이 매번 심장을 울린다. 커튼콜까지 여운이 남아있었던 임미나가, 류큘이 양손으로 손키스를 보내자 웃으며 똑같이 손키스를 해줬다. 관 안에 팔짱을 끼고 기대서 부루퉁한 표정을 짓다가 이날 볼에 바람까지 넣어서 너무 귀여웠다. 원래 암전될 때까지 관뚜껑이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은 슬쩍 닫히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이 없었던 후기는 늘 그러했듯 길어지고 말았다. 이게 다 류큘이 너무 잘나서 그래요.. 부디 마지막 티켓팅을 무사히 성공하길 바라며, 다음 관극까지 예쁘고 멋지고 섹시했던 류큘을 열심히 곱씹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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