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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3.29 7시
류정한 드라큘라, 조정은 미나, 강태을 반헬싱, 이예은 루시, 진태화 조나단, 김도현 렌필드. 류큘 자일곱, 류선녀 자첫.
드디어 드라큘라의 류선녀를 자첫했다! 몬테와 지바고에 이어 드큘까지, 어느 극에서든 동질의 영혼이 알맞은 주파수로 공명하는 안정감을 주는 페어다. 단단하고 짙은 감정의 색감이 유사하고 맞물리는 음색이 조화로워서 객석의 관객까지 편안해진다. 덕분에 류선녀 앞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이다.
지휘는 원미솔 음감님이었는데, 평소보다 의식적으로 덜 달리는 느낌이었으나 역시 뒤로 갈수록 다시 박자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케가 느려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와 맞춰가는 게 중요한데, 오케가 느려지니까 오히려 배우의 도입부와 어긋나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박자는 이날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이제 배우에게 맞춰주세요. 그리고 일욜밤공이라 그런지 조명도 무대도 정신사나웠다. She 넘버 끝나고 앞에서 배우들 감정 잡고 있는데 중간막 뒤에서 무대 치우는 소리가 아주 우당탕탕쿵콰앙 들려와서 어이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붕 떠있던 1막과 다르게 2막은 대레전 수준으로 좋아서 불만이 상쇄되었지만, 종합예술이니만큼 무대 앞뒤옆위에서 집중 좀 같이 해주시길.
스포있음
이날 류큘은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고압적이고 냉정한 지배자의 모습. 솔리터리에서 "새 삶 새 땅" 이 아니라 "내 삶 내 땅" 을 향하겠다는 의지가 번뜩였고, 엘리자벳사를 다시 만난 이후로 오로지 그만을 향해 행동하고 욕망했다. 류큘에게 유의미한 인간은 오로지 미나 하나였다. 미나와의 만남을 방해한 루시에게 정중히 인사하면서도 거의 잡아먹을 듯한 흉흉한 기색의 눈빛이라거나, "이리와요 내 사랑" 을 불렀는데 미나 대신 나타난 루시의 모습에 당황에 앞서 짜증이 치밀어 물어버리려고 하는 모습 등이 복선을 깔았다. 그럼에도 "첫 창조물" 로서의 루시는 제 것으로 여기고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등의 보살핌을 행하기도 하지만, 작은 말실수를 한 렌필드를 잔인하게 버려버리는 냉혹함을 보인다.
러빙유. "미나 당신과 함께," 하면서 미나의 손을 꼭 붙들고 입술을 꾸욱 눌러 키스하는 표정이 절박했고, 키스 후에도 그 손등을 계속 매만지며 애틋해한다. 손이 잡히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후두두둑 떨어지는 선녀미나의 고통과 혼란이 너무도 맹렬해서, 처음으로 러빙유 넘버에서 류큘이 아닌 미나의 감정을 따라갔다. 류큘이 "당신은 이미!! 이미 결혼했잖아" 하고 울먹이며 고개를 떨구고서는 제 심장께를 오른손으로 부여잡는 순간, 그에게 등진 채 "꿈 같은 삶" 이라며 노래를 시작하는 선녀미나가 자신의 심장을 꽉 부여잡는다. 완벽하게 같은 동작, 잠시 맞물린 영혼, 어긋나는 운명.
선녀미나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 를 마음 깊숙이 가라앉힌 채 잔잔한 물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잘 숨기고 잘 적응하며 살아왔기에, 작은 파문에도 걷잡을 수 없이 일렁이고 휩쓸려버리고 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커다란 감정을 한 번도 내보인 적이 없었을 이 미나는, 드라큘라라는 계기로 인해 더없이 격렬하고 매혹적이며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싸인다. 플돈미 도입에서 "사랑하면 안 돼" 하며 눈물 가득한 눈으로 울듯이 웃는 표정이나, 넘버가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고통과 혼란을 토해내는 윙즈의 처절한 목소리가 지독히도 찬란했다.
당연히 자신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믿는 류큘과 끝없는 어둠을 향해 몸을 던지기 직전 망설이는 선녀미나. 늘 절제되어 있던 감정을 통제할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선녀미나와 부드럽고 거세게 그를 끌어당기는 류큘. 손끝 하나 표정 하나가 완벽하게 맞물리는 시덕션. 첫공주 이후 오랜만에 오른쪽에 앉아서 시덕션의 류큘 표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는데, 미나가 피를 빠는 순간 단순한 희열을 넘어선 번뜩이는 표정이 강렬했다. 소중히 미나를 눕히고서는 쩌렁쩌렁하게 목소리만으로 인간들을 제압하는 류큘의 잇츠오버. 0325 공연에서는 총에 안맞았는데 이날은 평소처럼 퀸시의 총성에 몸을 튕겼다. 누구의 죽음도 원치않는다는 미나에게 노여움으로 이글대며 소리를 지르지만, 자신을 막아선 것이 미나이기에 그 분노는 금세 사그러든다. 그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기에 말뚝을 툭 바닥에 떨구며 휙 사라져버리는 류큘.
폭발하듯 터져나온 감정에 선녀미나가 거세게 휩쓸릴수록, 류큘의 인간적이지 않은 요소들이 한층 부각된다. 트시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류선녀의 모습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다. 류큘의 속삭임을 반복하며 선녀미나의 혼란은 점차 깨달음으로 변해가고, 마침내 "영원한 삶" 을 함께 부르짖으며 양팔을 가득 벌리고 두눈을 번뜩이기에 이른다. 여전히 우리와 함께냐는 반헬싱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하고 되묻는 선녀미나의 싸늘함은 류큘의 영향력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한 일부이자, 류큘로 인해 깨어난 새로운 자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퍼뜩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당혹과 혼란이 혼재된 얼굴로 자신이 도움이 되었느냐 묻는다.
평소와 다른 류큘의 노선에 피날레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역시 평소와 다른 엔딩을 통해 완벽한 마무리를 지었다. 줄리아를 끌어안은 반헬싱을 바라보는 류큘은 마치 인간의 감정을 관찰하는 듯했다. "나는 미나를 사랑해" 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이해할 수 없는 저 감정이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이며 자신이 믿어온 사랑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이어지는 러빙유맆도 이전에는 인간으로써 회의하는 회한의 감정이 짙었으나, 이날은 인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인상이 강했다.
감정과 이해의 간극으로 번뇌하던 류큘은 결국 미나를 위한 선택을 한다. "남의 피를 탐하던 그늘 속의 영혼" 이라며 객석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대로 몸을 돌려 관을 가리키며 "이런 삶 이런 인생 죽음보다 괴로워" 라고 말하는 얼굴에는 이런 삶을 차마 미나에게는 줄 수 없다는 절망이 깃든다. 미나의 오른손에 칼을 쥐여주고 그가 거부하니 왼손마저 단호하게 끌어당겨 양손에 칼을 꽉 쥐여주는 류큘의 행동이 너무 다정해서 더욱 잔인했다.
죽음을 원했다기보다는 미나를 위해 죽음을 택한 류큘. 심장에 칼을 박아넣기 직전 아주 미세한 멈칫거림, 그럼에도 자신과 미나의 손으로 거행하는 선택,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표정, 떨어져나가는 미나를 응시하며 "미나," 라고 부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얼굴. 극 내내 인간적이지 않았던 류큘은, 마지막 순간 미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함을 보인다. 비록 미나의 감정은 끝모를 절망에 잠겼을 지언정, "그가 가엾지 않나요" 라며 기도하듯 양손을 꽉 모으는 미나의 영혼만큼은 지켜냈으니까.
이날의 랖앺랖, 시덕션, 잇츠오버, 트시, 더롱거, 그리고 피날레를 다시 보고 싶다. 2막에서 착착 맞아떨어지던 류선녀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선녀미나의 평소 노선과 다소 달랐던 것 같은데, 이날의 노선이 너무 취향이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입덕 이후 내내 몹시 많이 궁금했던 프블의 머리 쓸어넘기기를 드디어 실물로 영접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류큘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보일 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다. 류큘 덕분에 삶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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