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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in 샤롯데씨어터, 2020.04.23 8시

 

 

 

 

류정한 드라큘라, 조정은 미나, 강태을 반헬싱, 진태화 조나단, 김수연 루시, 김도현 렌필드, 이하 원캐. 류큘 자여덟, 류선녀 자둘. 무려 25일 만의 재회만으로도 완벽하게 감사했는데, 시덕션과 더롱거와 피날레가 너무 훌륭해서 감격적이었다. 프블에서 앞머리 쓸어 넘기는 모습도 바로 정면에서 봤고, 한밤중의 위트비베이에서 류큘의 생생한 표정들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양손으로 선녀미나에게 손키스를 선사하고, 관 안에서 객석을 향해서도 손키스를 날린 류큘이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환하게 웃으며 손인사를 해준 커튼콜까지 완벽했다. 몹시 그리웠기에 첫 대사 첫 넘버부터 벅찬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고, 공연 내내 류큘의 모든 순간을 만끽하며 간만의 카타르시스를 양껏 즐겼다.

 

 

 

 

스포있음※

 

 

지독히 인간적인 미나와 지독히 신을 저주한 드라큘라. 선녀미나는 엘리자벳사로서의 기억과 욕망을 마주했지만, 미나로서의 안정된 따뜻한 삶을 쉬이 포기할 수 없기에 처절하게 번뇌한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본능이 이끄는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는 미나였기에, "죽기 위해 살 순 없"다거나 "거부해 자연의 법칙에 맞서"며 살아왔던 류큘이 그를 위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게 너무나도 설득력 있었다.

 

 

"400년 동안," 하고 말을 시작하던 류큘이 파르르 떨며 눈을 내리깐 채 고개를 젖힌다. "당신을 사랑해왔어요."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가다가, 북받치는 감정에 말문이 턱 막히듯 "당신은," 하고 잠시 멈칫하고서는 "내 삶의 유일한 빛이야." 라며 울먹인다. 그 찰나에 류큘은 제가 행해야만 하는 선택을 완벽히 납득하고 결심한다. 빛을 위해 어둠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미나에게 칼을 쥐여주며 다정하게 웃는 류큘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이 행동이 옳은 것임을 알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절박한 미나의 손길을 탁 뿌리치며 "당신 삶이 저렇게 끝나는 걸 보고만 있으라고?!" 하고 괴로운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냉정하기까지 한 그 뒷모습은 이 세계를 떠나달라는 간절한 처절함으로 이어진다. 다정하게 미나의 오른손에 칼을 다시 쥐여주며 "부탁해요 제발 밤을 허락해요" 라고 부드럽게 간청하는 그 목소리.

 

 

관 안으로 들어간 류큘은 "내가 떠날게요" 하고서는 칼을 쥔 미나의 손등에 깊이 키스한다. 마치 미나를 처음 만나 정식으로 인사했던 그때처럼, 마치 미나가 처음 스스로를 엘리자벳사라고 깨달았던 그때처럼. 칼에 찔리는 순간 미나, 를 부르고 한 번 더 미나, 라고 그 이름을 마지막 숨에 얹는다. 더없이 극적인 죽음 앞에서 더 이상 생과 사에 연연하지 않는 류큘의 그 핏기 없는 표정이, 선녀미나의 마지막 넘버와 완벽하게 맞물린다. 비틀거리면서도 똑바로 선 채, 미나는 신을 향해 묻는다. 그가 가엾지 않느냐고. 사랑을 위해 신을 저버렸고, 사랑을 위해 스스로를 저주했으며, 끝내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던진, 오직 사랑만을 원한 그를 용서하라고.

 

 

 

 

"구원은 없었나요?" 라는 미나의 물음에 원래는 "누가 알까요" 하며 웃듯이 우는 찌푸린 표정을 지었었는데, 오늘은 "절대." 하며 묵직하게 내리깔았다. 그토록 바랐던 구원은 그에게 없었음을 강조하는 듯해서 잘 어울리는 디테일이었다. 늙큘일 때부터 평소보다 젊고 단단한 목소리를 내던 이날의 류큘은 신에게 모든 걸 바쳤던 만큼 훨씬 가혹하게 신을 내버린 존재였다. 그래서 더롱거의 흔들림이 도리어 무척 인간적이었다. 미나와 정신 교감을 하던 트시에서 반헬싱의 존재를 인지하고 망연한 얼굴로 관 안쪽에 손을 짚던 이전과 다르게,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는 이날 디테일도 좋았다.

 

 

파멸이었지만 끝이 아니었고, 비극이었지만 절망이 아니었다. 드큘 류선녀를 딱 두 번 봤는데, 노선이 너무 달라서 완전히 다른 극을 만난 것 같다. 바로 직전 회차였던 0329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이날 노선이 다른 맥락으로 강렬하고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바로 다음 회차인 0425 공연이 이날과 똑같은 캐슷이어서 또다시 설렌다. 굳건한 믿음보다 더 대단한 합을, 기대하는 것보다 더 짜릿한 노선을 선사해주는 류선녀가 영원히 한 무대에 서길 간절히 바래본다. 특히 언어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로 아찔하고 매혹적인 류선녀의 시덕션은 정말 압도적이다.

 

 

빨간 코트의 왕자님 같던 위트비베이. 세상 우아한 손동작으로 귀족 인사를 하는 동시에 왼손으로 코트자락을 살짝 펄럭이던 She 도입. 우아하게 긴 코트를 다루는 더롱거까지. 시각적인 만족도까지 너무나 높다. 다시 관극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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