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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주절/Daily

200302

누비` 2020. 3. 2. 22:57

01.

 

짘슈콘 못 갔다.

 

 

02.

 

평소보다 손을 더 꼼꼼하게 더 자주 씻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마스크를 꼭 쓰면 괜찮을 일이라고 믿었다. 약속을 취소하고 관극을 자제했다. 최대한 외부 동선을 줄였지만, 사이비 종교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버린 바이러스는 예상치 못하게 바로 근처까지 다가왔다. 확진자의 동선 중 하나와 겹쳐버린 단 한 번의 점심식사는, 재택근무라 쓰고 자가격리 권고라 읽히는 선고를 내리고 말았다.

 

 

03.

 

왜 하필이면 그날 점심에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갔을까. 왜 하필이면 그 건물로 먹으러 갔을까. 왜 하필이면 확진자 판정이 짘슈콘 바로 전날에 나온걸까. 왜, 하필이면.

 

 

04.

 

직접 접촉한 것도 아니고, 같은 식당에 있었던 것도 아니며, 건물 방문 시간대마저도 불명확했다. 대기 중에 바이러스가 잔존하는 시간은 짧기 때문에 저 정도로는 전염의 가능성 자체가 몹시 희박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절대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면, 관극을 강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만의 하나지만 저 동선으로 인해 감염이 되었다면. 만의 하나라는 의구심을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밀폐된 공간을 방문했음이 알려진다면. 만의 하나 때문에 또다시 접촉자가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거의 다 잡아가던 작은 불이 신천지 때문에 거대한 화염으로 번져버린 아득한 재앙을 생생히 목격했기에, 그로 인해 고생하고 계신 모든 관계자들에게 혹시 모를 짐을 더 얹을 여지를 남길 수는 없었다. 지나친 걱정이다, 하루 정도는 괜찮다, 당연히 아닐 것이다, 라고 믿을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만의 하나가 발목을 붙들고 놔주질 않았다.

 

 

05.

 

그래서 포기했다. 들고 있던 모든 표를 놓으며, 엉엉 울었다. 얼마나 기다렸는데. 4년 반을 기다렸고, 한 달을 고대했는데. 끝없이 사랑했고 더없이 아꼈으며 무한히 열광했던 이 작품을, '혹시'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포기했다.

 

 

06.

 

건물만 같았을 뿐 확진자의 동선과 확실히 겹친 것은 아니기에, 근 2주가 흘렀기에, 내일부터는 자가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언을 오늘 들었다. 이 소식에 더 화가 난다거나 더 마음이 찢어진다거나 하지는 않더라. 산산조각 났던 마음은 사흘 동안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고, 이미 지나간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저 속상함이 잔잔히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갈 수 없음이 확정된 이후로는, 매일매일 숨 쉬듯 새로고침을 했던 SNS를 확인할 수 없었다. JCS와 관계된 모든 단어들이 비수처럼 마음을 찔렀다. 너무나 훌륭했으리란 것을 잘 알기에, 그로 인해 정말 많은 이들이 행복했으리란 것도 아주 잘 알기에, 고장난 마음으로는 도저히 환한 기쁨과 만족을 마주하지 못하겠더라. 좁고 이기적인 마음은 이렇게 못났다.

 

 

07.

 

고작 공연 하나 못 봐서 우울에 잠기고, 고작 공연 하나 볼 수 있어서 위안을 얻는다. 일상의 소중함과 당연함의 가치는, 매번 찰나의 부재 속에서 빛을 발한다. 

 

 

08.

 

약간의 경각심과 철저한 예방 속에서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채워 가다 보면 이 국가적 재난이 해소되는 그 날이 올 터다. 무너진 일상과 사라진 당연함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테고. 그 과정 속에서 지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도록, 다시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뛰어들어야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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