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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

in 한전아트센터, 2020.01.26 2시

 

 

 

 

민우혁 자호, 한지상 자걸, 박민성 마크, 김대종 아성, 유지 페기, 이하 원캐.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영화를 원작으로 한 이 창작뮤지컬을 굳이 챙겨보고 싶지는 않았으나, 늘 필모를 챙겨보던 배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자첫자막을 하게 됐다. LED를 활용한 화려한 영상 연출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점은 확실히 충족시켰다. 타이밍 맞게 움직이는 무대 위로 아름다운 야경, 홍콩 시내의 정경, 바닷가, 푸르른 하늘 등이 선명한 고화질로 눈앞에 펼쳐졌다. 미닫이 형태로 본무대를 들락날락하는 무대 하나에는 문이 있었는데, 인물의 등퇴장을 엇갈리게 만듦으로써 효과적인 장면 구성을 가능케 했다. 다만 이 무대가 왼쪽으로 들어갈 때 아래쪽 바퀴의 드르르륵 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살짝 현입이 되더라. 짜임새 있게 구성한 장면들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흥미진진하게 극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비장미 넘치는 넘버들을 쩌렁쩌렁하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시선을 사로잡는 무대 영상들 덕분에 관극 자체는 몹시 재미있었다.

 

 

그러나 세련된 연출로 포장한다고 해서 낡은 소재가 대단히 유의미한 무언가로 바뀌는 건 아니다. 폭력과 적대로 가득했던 남성연대의 시절을 낭만이라 호명하고, 박해와 배척이 주를 이루던 시대의 남성 의리를 추앙하는 구시대의 가치가 지금 이 시대에 무슨 의미를 갖는가.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곱씹고 추억하는 것 이외의 의도와 목적이 이 극에 존재하는가.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피 흘리는 현재의 홍콩은 외면하고 불법과 부정의가 판치는 과거의 홍콩을 마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대극장 창작뮤지컬이 타국의 오래된 고전을 리메이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루자니 위험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자니 상상력이 부족하며, 신선한 도전을 하자니 실패할까 두려운가. 보여주는 방식이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보여주는 가치가 진부하다면 그 작품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화려하고 강렬하며 재미있다는 점과 확실한 타깃층이 존재한다는 점은 '극이 잘 팔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리하여 이 '창작' 뮤지컬이 해외에 다시 판권을 팔고 또 꾸준히 재연 삼연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전례도 있을뿐더러,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무대예술을 응원하고 소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긍정적인 전망이 그리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식의 창작뮤지컬이 금전적 성공을 거둘수록, 창작진은 더욱 나태하게 안주하고 말 테니까. 대극장 창작극과 중소극장 창작극이 전혀 다른 방향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듯하여 걱정이 될 정도다. 완벽하고 완전하여 흠잡을 곳 없는 작품을 바라는 게 아닌데도 참아내기 힘든 역린이 너무 많다. 왕용범 연출의, 그 사단의 작품들을 놓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배우 위주가 아니라 새로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근간으로 관극을 결정하고 싶지만, 대극장에서는 이 바람이 아직도 요원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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