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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판 사나이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19.12.17 8시

 

 

 

 

조형균 그레이맨, 장지후 페터 슐레밀, 여은 리나, 지혜근 토마스 융, 이하 원캐.

 

 

제작사 알앤디웍스의 창작뮤지컬인 이 극의 소재가 워낙 취향이라서 챙겨봤는데, 킹아더와 비슷한 맥락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관극 내내 다른 극들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스스로도 황당할 정도였다. 소재의 유사성이나 비슷한 창작진 등의 사유는 이해하지만, 자꾸 다른 작품들이 연상되는 이 극이 관극 말미쯤에는 조잡하게 느껴졌다. 잔혹동화처럼 매력적이어야 할 이야기가 매끈하게 정돈되어 있지 못하여 중간중간 몰입이 자꾸 깨졌다. 2막 클라이막스는 넘버도 장면도 몹시 매력적이었는데, 다른 많은 장면들이 지루해서 자둘의 의사가 전혀 들지 않는다. 쳐낼 부분을 쳐내서 한층 흡입력 있는 연출로 돌아온다면 신나게 회전을 돌 것만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 두 배우의 노선에 따라서 이야기의 색감과 결말의 느낌마저도 완전히 달라질 듯하여 흥미를 돋우지만, 이번 시즌 재관극은 없을 듯하다.

 

 

 

 

쏭쓰루 수준으로 계속해서 쏟아지는 넘버들은 음정이 극악하게 높거나 어려웠고, 가사가 너무나 단순하고 반복적이었다. 중독성 있는 넘버를 잘 뽑아내는 건 알앤디 극의 장점이긴 한데, 그레이맨이나 페터의 넘버들에 굳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노트들을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넘버들의 리프라이즈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이야기 전개를 부드럽고 능숙하게 풀어낸 건 아주 좋았다. 장면들을 요약해서 늘어놓으면 흐름이나 구성이 상당히 매끄러운데, 그 장면 장면들이 지나치게 길어서 전체적으로 늘어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넘버들이 반토막 내도 전혀 문제없을 정도로 반복적이어서 중간중간 따분했다. 프롤로그가 꽤 중요한 장면인데, 너무 길고 무대마저 어두우니 극에 대한 흥미가 시작부터 한풀 꺾이고 말았다.

 

 

그림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 숨어드는 장면이 많아서 무대가 많이 어두운 편이다. 알앤디극이 늘 그러했듯 조명 연출 및 색감은 불호였지만, 몽환적인 극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렸다. 특히 2막 클라이막스에서 혼란스러움을 극대화하는 붉은 조명과 늘어지는 음악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연출은 짜릿함을 선사했다. 무대 디자인과 연출이 압권이었는데, 평면을 입체로 느끼게 만드는 착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공간감이 가득했다. 넓은 무대 위에서 거대한 입체 종이접기를 하는 기분이 들어서 몇몇 장면에서 희열마저 느껴졌다. 여러 개의 문을 재치 있게 사용하고, 회전무대와 위아래로 움직이는 무대 구조물을 센스 있게 활용하며,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영상들을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시각적 다채로움을 높였다. 무대와 영상이 많이 움직이는데도 딱딱 들어맞는 연출을 보며 내적 환호를 여러 번 보냈다. 배우의 발 아래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인영이 반사되는 반들반들한 재질의 까만 바닥을 깐 무대, 벽에 배우의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한 조명 위치, 중요한 그림자를 표현하기 위해 영상을 활용하는 등의 연출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군무와 떼창을 멋지게 소화하는 앙들은 최고였으나, 남성은 반말을 여성은 존대를 하는 고루한 사상도 지겨웠고,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결국에는 남성에게 소유되어야 하는 여성의 새하얀 드레스도 지긋지긋했다. 페터의 그림자 역할로 여성 배우를 기용한 의도는 짐작이 가지만, 극의 여성관이 저 모양이니 그림자 역시 우아하고 아름다운 '소유물' 이라는 수동적 역할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 위의 모든 배우들이 워낙 잘하니 감탄은 나오지만 감흥이 크게 들지 않아서 아쉬웠다. 쌀레이맨은 배우 자첫이었는데 2막 반전 넘버와 연기를 아주 잘 살려서 즐거웠다. 홀리워터 음감님 콘에서 처음 만난 이후로 필모를 챙겨보지 않았음에 아쉬움이 생길 정도였다.

 

 

 

 

제작사의 여러 시도를 환영하나, 킹아더에 이어 이 극 그판사 역시 만족감보다는 섭섭함이 더 크게 남는다. 알앤디 극의 특성을 살리는 가장 적합한 무대와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고민하길 바란다. 대극장에서도 알앤디만의 매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다음 창작뮤지컬도 놓치지 않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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