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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in 샤롯데씨어터, 2018.09.12 8시 공연



 



차지연 프란체스카, 박은태 로버트, 황만익 버드, 유리아 마리안/키아라, 혁주 마지, 이하 원캐. 차프란, 은버트. 차은 페어.



충무 대극장에서 올라왔던 초연과는 사뭇 달라진 재연이었다. 충무보다 작은 샤롯데 무대가 이 극에는 훨씬 잘 어울렸다. 무대 구조물 및 소품을 활용한 공간 연출이 군더더기 없어서 극의 배경과 분위기에 한층 몰입할 수 있었다. 영상 연출이 좀 더 많아진 것 같았는데, 무대 및 조명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루며 장면 전환 등을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표현했다. 잔잔하되 흡입력 있게 진행되는 2막이 여전히 애틋하고 눈부셨다. 1막은 음향이 다소 답답했고 바뀐 연출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2막에서 "마치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듯" 서로를 향해 휘몰아치는 감정과, "너와 나 단 한 번의 순간 / 또다시 오지 않을 순간" 이기에 황홀할 정도로 충만하게 쏟아내는 마음과, 마지막 결말까지 흘러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스포있음※



차프란은 머나먼 타국에서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주어진 일상을 하루하루 살아내다가, 그 벽에 조금씩 융화되어 부자유스럽게 굳어버린 듯한 이미지였다. 마치 본디부터 벽의 일부였던 것처럼 무기력하게 파묻혀있던 차프란의 앞에, 공간과 관계의 제약 없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카메라 렌즈 뒤에서 타인의 현실을 관조하는 이방인 은버트가 나타난다. 기대도 희망도 없이 정체된 차프란의 마음은 은버트가 건넨 잡지 속 고향 나폴리의 사진으로 부드럽게 녹아내렸고, 경직되어 있던 차프란의 감정은 은버트의 질문으로 쏟아낸 과거의 꿈과 상처와 아픔을 마주하며 폭발하듯 본래의 생기를 되찾았다. 은버트라는 계기를 통해 자신을 가두고 있던 알을 깨고 나온 차프란은, "부서진 내 모습 / 널 알기 전과 후" 로 인해 다시는 벽처럼 굳어버린 채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고통스러워한다. "지금 내 앞의 그대" 인 은버트가 내민 달콤한 이상의 설득에, 차프란은 마침내 "떠나자" 며 그의 손을 맞잡는다. 





그러나 십수년의 세월 동안 체득하고 내재화한 삶은, 늦은 기상시간에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이불을 정리하는 차프란의 습관적인 행동으로 명확하게 제 실재를 증명한다. 예전 모습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일상을 마주한 차프란은 이전처럼 현실이라는 벽에 굳어있지 않기에 중심을 잃고 마구 휘청인다. 꿈을 향해 반쯤 떠나있는 마음과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곁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마음이 뒤섞인 차프란의 얼굴은 길을 잃은 듯한 망연함 뿐이다.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은버트를 마주한 순간 무채색이던 차프란의 표정이 찬란한 빛으로 흘러 넘친다. 그 빛은 남겨질 이들이 뿜어내는 슬픔에 힘을 잃고 서서히 침잠한다. 온 힘을 다해 삼켜내는 열망. 차프란은 결국 제 인생을 소모하며 만들어온, 그래서 인생 그 자체가 되어 버린 현실을 택한다. 그러나 현실 너머 제약 없는 이상을 이미 알아버린 차프란은, 자신의 꿈도 기쁨도 행복도 모른 채 살아가던 과거의 벽 속으로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차프란은 자신의 안락과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내고 만들어낸다. 알을 깨고 나온 그 시간을 평생 잊지 않은 채 끌어안고 살았던 차프란은, "기나긴 시간을 건너"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너머 상대를 알아채고 이해한다. 아주 짧은 순간만을 공유했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은버트의 편지를 읽은 차프란은 그의 카메라 안에 제 인생을 담는다. 찰칵. 

 

 

 

 

은버트는 초연과 유사했으나, 위에서 언급한 1막 연출의 변화가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켜서 아쉬웠다. 초연에서는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대화를 주고 받으며 기억을 나누고, 취향을 공유하며, 서로의 성향에 공감하며 마침내 가득 차올라 쏟아지는 마음의 서사가 더 길고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재연에서는 첫 저녁식사 부분을 많이 잘라낸 듯하여 누적되는 감정선이 아쉬웠고, 프란에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은버트의 행동과 말들이 초연에 비해 다소 가볍게 느껴졌다. 차프란에게 보다 몰입했기 때문인지, 완벽에 가까워보이는 은버트가 현실에 없을 법한 관념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2막에서는 일렁이는 표정과 강렬하지만 차분하게 삼켜내 단정하게 절제하여 표현하는 감정들이 지독히 절절하고 인간적이어서 애틋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 내가 세상 속에 있어 / 카메라 뒤에서 바라만 보던 / 그곳 여기에" 라며 인생이 바뀌어버린 찰나의 눈빛과,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프란의 선택을 마주할 때의 그 표정과, "빛이 바래진 사진처럼 모두 사라져가고 / 남은 건 오직 하나 / 그대" 하며 끝끝내 프란의 선택을 존중하며 변하지 않은 마음 하나만을 내내 안고 살아온 마지막 감정이 무척이나 눈부셨다.

 

 

 

 

1막은 다소 산만하던 객석이 2막에서는 기침소리도 거의 없이 짙고 고요한 집중을 보였고, 엔딩까지도 깊은 여운에 한참 동안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차프란과 은버트 모두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손동작을 다양하게 많이 사용하는 점이 무척 닮아있었고, 일견 잔잔해보이는 수면 아래 그 어떤 것보다 맹렬하게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색감도 몹시 유사했다. 재연 매다리 초반회차를 차은 / 여타 페어로 구성한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여왕프란의 노선은 차프란과 또 다르다고 해서 막공 전에 반드시 여은 페어를 볼 생각이다. 2막의 모든 장면들이 어떠한 인생들을 오롯이 보여주기에, 여운이 길 수밖에 없는 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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