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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더 시너
in DCF 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2018.02.09 8시 공연
강승호 레오폴드, 정욱진 롭, 윤상화 대로우 변호사, 이현철 크로우 검사.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
뮤지컬 쓰릴미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풀어낸 연극이라기에 다른 일정 포기하고 초대당첨된 이 극을 보러갔는데, 지루하고 아쉬웠다. 사건이 사건이니만큼 불편하리라는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롭과 레오폴드의 대사와 행동들이 불쾌하고 견디기 싫었다. 수 년 전에 비해 미친놈을 견디는 역치가 많이 낮아졌음을 새삼 인지하며 힘겨운 120분을 보내야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었다는 점과 더불어, 근래에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라는 소재가 몹시 참기 힘들었다. 실화 기반일지라도 글로서 잘 다듬어진 '이야기' 라는 전제가 있어야 극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하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데, 참담한 현재과 실재한 과거가 자꾸만 겹쳐보여서 도저히 근 한세기 전 극 중 상황을 분리하여 바라볼 수가 없었다.
※스포 있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라는 말로 더욱 유명해진 사건을 다룬 이 극은, 죄가 미운데 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되냐는 되물음만 남겼다. 치가 떨리는 범죄를 저지른 자를 왜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거지? 복수심에 눈이 멀어 선량한 우리까지 인권을 유린하는 저급한 수준으로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변호사의 이상론이 몹시 불쾌했다. "저들이 그 소년에게 보여준 딱 그 만큼의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라던 검사의 최후변론이, "그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는 변호사의 최후변론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다. 범인으로 지목될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엄마가 슬퍼할 거라는 이유로, 몸집이 너무 커서 되려 당할 거라는 이유로, 여러 명의 사람들을 제끼고 골라내 선택한 그들의 최종적인 피해자는 어리고 무방비한 아이였다. 사형제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던져준다는 극의 목적을 위해 일부러 용서하기 힘든 극악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오로지 그럴 목적이었으면 법정하게 뻔뻔하게 낄낄거리고 대중들에게 마치 스타마냥 소비되는 모습 위주로만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용납할 수 없는 그들의 무지와 오만이 유년기의 삶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는 부분을 얕지도 깊지도 않게 다뤄서 오히려 그들 역시도 유의미한 개인이자 삶을 유지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초인이고 다른 사람을 뛰어 넘는 존재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자신들보다 약하고 힘 없는 약자를 뒤에서 타격하고 질식사 시킨 그들이, 그저 인간의 행색을 했다는 이유로, 미성숙한 청년이라는 이유로 '용서' 혹은 '자비를 베풀만한'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지, 이 극으로는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적 측면 이외에 극을 풀어내는 연출은 크게 불호인 점은 없었다. 중첩적으로 이어지는 대사도 꼼꼼이 되짚어 보면 꽤 유의미한 문장들이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극 전체적으로는, 법정 안의 상황과 과거의 장면이 교차하며 차근차근 사건을 진행시키고, 멀티인 배우 세 명이 기자이기도 의사이기도 하면서 매끄럽게 이야기를 서술하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초중반 장면들의 배우들 동선이 다소 산만하다고 느꼈지만 극 후반부에서 그러한 번잡스러움이 완전히 생략되어 정적이지만 팽팽한 긴장감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공간 분리를 조명으로 표현했고, 적절한 장소의 의자 배치도 눈에 띄었다. 검사의 심문을 통해 점차 두 사람의 알리바이가 지닌 허점이 드러나는데 대사와 음향효과의 타이밍에 맞춰 각자의 방을 나타내는 네모난 조명이 점차 작아지는 조명연출이 단순하지만 직관적이었다. 검사와 변호사의 최후변론 후 판사의 판결문 대신 기자의 기사 제목으로 결말을 끝내버리는 점도 좋았다. 기자 역의 배우분들이 기자 역할 할 때의 대사 딕션이 좋았다. 검사 현철크로우는 대사도 좀 씹고 목소리도 살짝 불호였는데 표현하려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의외로 명확하게 드러나서 괜찮았다. 변호사 상화대로우는 너무 구수하지만 괜찮네, 싶었는데 레오폴드랑 싸우는 장면에서 아주 대차게 싸우고 몹시 불호로 돌아섰다. 감정들 격해지시는 건 알겠는데 내용 전달은 가능해야죠. 승호레오폴드는 초반에 좀 웅얼거린달까 노선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후반부 갈수록 감정선 좋아졌다. 정욱진 배우는 자첫이었는데 2층에서도 보이는 형형한 눈빛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극 초대당첨되고 마음이 붕붕 떠서 연극 이것저것 찾아보고 예매도 하나 해놨는데 그로부터 6시간 후에 병크 터져서 덕심이 짜게 식었다. 소설이 재미있었고 쏭이 보고 싶어서 이번주 그 페어 회차 실결까지 했는데 취소수수료 물고 취소행..... 그리고 하루 뒤에 하차.... 시발ㅋㅋ 어쩐지 쎄하다 했어. 애초에 연극을 많이 보지 않아서 만날 일이 많지는 않았다지만, 연극을 볼 일이 있어도 연기 잘한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그 배우 회차는 굳이 안잡았었는데 이렇게 용납 불가한 인간이었을 줄이야. 이 전에 내 돈이 들어간 적이 없으니 이번 취수료가 크게 아깝진 않다. 좋은 연기로 보답 운운하지 말고 다시는 이쪽 업계에 얼굴 들이밀지 말기를. 아오. 2월에 연극 여러 편 볼 생각에 기분 좋았는데 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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