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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n 대학로 TOM 1관, 2017.06.15 8시 공연
※극극극극불호 리뷰이므로 주의 요망※
박건형 유진 킴, 김재범 싱클레어 고든, 김주연 조안 시니어, 강수영 피아니스트. 건형유진, 범싱클, 주연조안. 뮤터뷰 자첫자막. 극에 대한 평이 썩 좋지 않았지만, 직접 보고 판단해보자는 생각과 아끼는 배우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공티친 쿠폰 사용해서 관극일 바로 전날 표를 잡았다. 그리고 후회한다. '보고 까자' 라는 생각, 앞으로 버려야겠다. 내 시간과 정신력이 너무 아까웠다. 공연장 나오자마자 마트로 직행하여 맥주캔을 길거리에서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야 짜증과 불쾌함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2년 정도 뮤덕을 자처하며 꽤 많은 작품을 보며 그 와중에 불호인 극들이 제법 있었지만, 이 극은 '관극'이라는 취미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색깔 자체가 다른 극불호였다. '창작뮤지컬' 이라는 미명만 내세우고 비슷한 구조, 반복되는 소재, 안이한 연출,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과도한 폭력과 자극에 넌덜머리가 난다. 관객들에게 고민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설명충 그 자체인 대사들, 극의 완결성에 집착하면서 고작 선택하는 것이라고는 수미쌍관이라는 형식의 진부함, 모든 캐릭터에 이야기를 꾸역꾸역 집어 넣어 결국 본래의 주제를 희석시켜 버리는 내용의 난잡함, 불필요하게 길고 자극적이고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인 연출의 원시성. 현재 이 업계에서 공연 외적인 문제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그 제작사, 그 관계자, 그 배우 등 특정 무언가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이렇게 공연 내적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니 힘이 쫙 빠진다. 발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과거 회귀적인 모습을 보이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에 대해, 공연 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관객으로서 대체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지친다.
배우들은 좋았다. 하지만 배우가 아무리 훌륭한 역량을 지녔다 하더라도, 안 되는 게 있는 거다. 그러니까 연출가가 있고 제작자가 있고 기타 스태프들이 있는 '종합예술'인 거지. 이 공연에서 가장, 그리고 유일하게 좋았던 건, 강수영 피아니스트의 연주였다. 피아노 정말 좋더라. 오슷에 배우들 목소리 빼고 피아노 연주만 담기면 구매 의향이 있다. 배우들 노래가 별로였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멜로디야 뭐 취향 탓이니까 넘기더라도, 가사가 진짜... 한숨 나오는 수준이라서. 대사도 똑같은 말을 대체 몇 번을 반복하는 건지. 그래도 극 초반은 강강으로 부딪히는 건형유진과 범싱클의 합이 흥미진진해서 꽤나 몰입도가 높았음에도, 중후반부의 전개와 연출이 좋았던 점을 싹 잊게 만들었다. 작년 여름 휴덕에 돌입하려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붙들어줬던 범백작이었는데, 이런 대대적인 현타 비스무리한 허탈감을 느끼게 만든 관극에 범싱클이 있다는 게 묘한 기분이 든다. 애정배우가 싱클레어 역을 한다면 꼭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서 기대를 내심 했었는데, 연기력 면에서는 흠 잡을 곳이 없었지만 '굳이' 꼭 만났어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만 짙다.
※스포주의※
위에서 언급했듯, 초반부까지만 해도 꽤 몰입력이 높았다. 건형유진의 처음 독백은 조금 아쉬웠지만, 범싱클이 등장하고 나서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의 핑퐁이 깔끔하면서도 긴장감 있고 흥미로웠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포우를 꼽으며 '애너벨 리'를 읊는 범싱클의 노래에 포우 지뢰를 강하게 밟았고, 학대와 무관심 속 노네임이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든 어린아이 우디의 감정이 너무 좋아서 극에 훅 빨려들어갔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23아이덴티티>와 닮은 점이 아주 많은 극이다. '진화'를 운운하는 대사들이나 색깔 있는 인격들, 그걸 표현해내는 범싱클의 연기를 보며 비록 익숙하고 진부할 지언정 영화라는 장르와는 또다른 '공연'만의 특색을 찾아내어 비교해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창뮤 <스모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연출, 창뮤 <블랙메리포핀스>와 유사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 방점을 엉뚱한 곳에 찍으며 의문과 불편과 불쾌를 남기는 전개 방식, 창뮤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꾸준히 지적된 과하게 폭력적이고 길고 쓰잘데기 없이 실감나게 표현한 구타 및 살인 장면 연출까지, 기존 작품들의 단점투성이 요소들을 죄다 넣어 놓고는 자랑스럽다는 듯 내보이는 이 극의 오만함을 보고 있자니 참담함마저 느껴졌다. 물론 폭력성은 <맨오브라만차>나 <지킬앤하이드> 등 아주 많은,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의 라센뮤지컬에서도 목격되는 바이지만, 그래도 '새로이' 만들어지는 '창작' 뮤지컬까지 그 구시대적인 요소를 답습할 필요는 결코 없다. 관객이 그런 자극을 기대하고 잔혹성에 환호하며 좋아하리라 믿는다면, 그 사람은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의 연출가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런 류의 극이 자꾸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것은, 배우 낭비이자 극장 낭비, 장비 및 자본 낭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관객의 마음을 모독하는 감정 낭비다. 이 극의 소재 혹은 그것을 통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무가치 하지 않은 것이기에 더욱 화가 난다.
최근 <파리의 생활 좌파들(2015, 목수정 지음)>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충격적인 문장을 접했다. "예술의 영역에서 혁명이란 단지 주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략) 세상의 변혁에 기여하려는 작가, 예술가라면 형식적인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p.75, [세상의 좋은 것들을 자본가에게 뺏기지 마라- 자크 제르베르 인터뷰 中])" 대단히 신선한 말은 아니지만, '형식에서의 혁명'이라는 부분이 근래 고민하던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어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다. 연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너무나 식상하고 뻔하며 지루한 극들을 마주하는 것에 몹시 넌덜머리가 난다. 다양한 공연을 너무 많이 봐서 어지간하게 신선한 자극이 아니라면 크게 감흥 받지 않는 게 당연한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넘어가기에는 뮤덕으로서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뿐더러 관극의 폭이 엄청 넓지도 않다. 찰나의 예술인 공연을 사랑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단 한 순간이라는 짜릿한 경험 공유 때문인데, 요새는 그저 반복되고 되풀이 되는 쳇바퀴 속 경험일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관극의 유의미함이 절절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되니 어느 순간부터 덕질 자체도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극이 별로여도 배우는 잘하니까, 음악이 좋으니까, 가끔은 조명이 예쁘니까, 라는 단편적인 이유만으로 관극을 하게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린 기분이다.
이대로 뮤덕임을 포기한다거나 휴덕을 한다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로는 치닫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근원적인 고민을 안고 관극을 한 순간부터,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만 그 시간을 향유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아. 다른 괜찮은 공연을 본다거나, 시라노가 시작한다거나 하면 다시 불타오르겠지만, 이 묵직한 고민과 공허함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 모로 막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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