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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in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16.06.24 8시 공연





마이클리 포우, 최수형 그리스월드, 정명은 엘마이라, 오진영 버지니아, 안유진 엘리자베스, 최종선 레이놀즈. 포우 자넷, 마포우 자셋, 셩그리 자첫. 마셩 페어 자첫. 진영버지니아 자첫. 



공연이 너무너무 좋아서, 리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네 번의 관극 중 가히 레전이었는데, 순간순간이 흘러가버리는 게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무대 위 마포우의 넘버들을 죄다 박제하고 싶었다. 1막 내내 너무나도 행복했다. 2막은 여전히 늘어져서 1막만큼 재미있지 않았지만, 관객석 그 어딘가나 영원이 너무나도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스포주의※



지난 두 관극 때는 완전히 '글에 미쳐있던' 작가 마포우였지만, 이날 공연에서는 조금 더 단단히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현실 속의 '인간다운' 작가였다. 처음 편집장을 찾아갔을 때부터 자신만만하고 열정 넘치는 청년미가 돋보였고, 간간히 환청이 들리는 제스쳐를 취하는 디테일은 여전했지만 초반에는 그 환청이 마냥 '부정적' 이지만은 않았다. 범인들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천재이기에 들려오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환청은 함정과 진자 이후부터 좀 더 비극적이고 위태롭게 아슬아슬한 포우의 감정선을 흔들어대는 것 같았다. 비유하자면, 초반의 환청은 매의 날개 가사 중 "하늘의 종소리" 였다면 후반부에서는 갈가마귀의 "Lenore" 이자 종의 "장례식의 종소리" 같았다. 재능이 저주가 되어 괴롭힌다는 노선으로 받아들여져서, 무척 취향이었다. 2막 초반, 이모의 꾸중과 버지니아의 기침소리에도 완전히 글에 정신이 팔려있던 지난 공연의 마포우 대신, 절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암울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그로 인한 무력감으로 한층 더 괴로워하는 '인간' 이 보였다. 그 와중에 자신의 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애정은 무척 강렬하게 느껴졌다. 갈가마귀에서 양쪽의 앙들을 번갈아 한 번 씩 바라보며, 마치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니 들어달라는 듯 온 마음을 다해 눌러부른다. 그리고 쏟아져나오는 감정을 폭발시키며 앞으로 걸어나오는데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 날믿어 에서 그리스월드의 감언이설에 멍한 얼굴로 고개까지 미세하게 끄덕이며 몸을 기울이고 설득을 당하려다가 "당신 작품을 내가 관리하면" 이라는 말에 얼굴색까지 변하며 그의 손에서 잽싸게 빠져나온다. "내 작품이 나를 살게 했소" 라는 말처럼, 자신의 글로써 되살아난 마지막 매날맆까지 정말 좋았다. 배우가 만들어내는 설득력이라는 게 이런 거지. 마지막 영원은 늘 좋다.   



달라진 노선은 또 하나 있었는데, 엘마이라에 대한 연애적 '사랑' 이 보다 강렬했고 버지니아에 대한 감정과는 전혀 달랐다. 그저 가족이자 보살펴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고, 마지막 키스 역시 다가오는 버지니아를 굳이 밀어내지 않는 느낌이었다. 반면 엘마이라는 재회했을 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지난 공연들에서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부끄럽다는 이미지였다면, 이날은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난 놀라움에 믿기지 않는 듯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제 꼴을 돌이켜보고 자괴감을 느끼며 피하려는 인상이었다. 이렇게 연기하니까 여자 캐릭터들의 정체성이 보다 말끔하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모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꽤 많이 한 극이지만, 캐릭터가 너무 많은데다가 그 여성들이 주인공 '포우' 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서 내용이 늘어지는 느낌이 강하다. 매번 말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천재 에드거 앨런 포우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성세력 그리스월드 간의 갈등을 더 강조했어야만 했다, 이 극은.   





셩그리는 자첫이었는데, 워낙 '목사' 라는 리뷰를 많이 읽고 간 터라 기대했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진중함이나 무거움이 덜 해서 당황했다. 미묘하게 토그리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그나마 '신'을 믿기는 하는 사람이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디테일도 두 번이나 나왔고, 코트 벗어던지며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디테일도 있더라. 이날 마포우의 어그로(...) 지수가 꽤나 높아서 다른 때보다 더 강한 노선을 취한 건가 싶기도 했다. "추잡한 이 책" 이라는 말에 얼굴 가득 비웃음과 어이없음을 띄우던 그가 성큼성큼 포우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한다. 여기서 포우랑 그리랑 악수하는 건 처음 본 거 같은데, 이름을 듣자마자 순간 마포우의 얼굴에 스치던 그 경멸의 표정이란. "성직자입니다" 라는 말에 제대로 비웃음을 입가에 걸다가 손으로 가리며 표정을 정리하기도 했다. "평론할 어떤 자격도 없는 자" 에서 앞에 "평론할" 이라는 가사를 빼먹었는데 실수인지 일부러 뺀 건지 모르겠다. 이 첫대면 부분 정말 취향이다. 셩그리는 저 오만하고 패기만 있는 어린 녀석을 살짝 족쳐서 무릎을 꿇려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갈가마귀를 듣고 생각이 바뀐다. 토그리는 그 시를 듣고 '역시 쟤는 내가 직접 바닥까지 끌어내려 망가뜨려야겠네' 라고 생각하고, 곰그리는 '와.. 정말... 천재긴 한데... 위험하다. 안 돼. 절대 안 돼.' 라는 판단을 한다면, 셩그리는 그런 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악과 평생 믿어온 자신의 세계에 감히 흠집을 내려는 시도에 대한 오싹함과 충격을 경험한다. 포우는 천재가 맞고, 그 재능은 하늘이 주신 것도 맞지만, 결코 '자신의 신' 이 주신 건 아니라고 말한다. 함진맆 가사 처럼 "악마가 준 것" 일 뿐이지. 그래서 포우의 작품을 모조리 완벽하게 몰살시킬 것 같던 토그리와는 다르게, 셩그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포우의 작품을 완전히 훼손시키고 변형시킬 것 같았다. 



개막 초반에 마셩이 '정석 페어' 라고 불렸는데, 마포우 고정에 세 명의 그리스월드를 모두 보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물론 매 공연마다 배우들의 노선이 미세하게 바뀌기 때문에 이 생각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셩그리의 노선은 그리스월드의 모든 가사들을 가장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토그리는 위선을 떨고, 곰그리는 이상을 추구하지만 현실적으로 질투하고 경계하는 작가 느낌이 강했다면, 셩그리는 보다 '신' 에게 방점을 두고 있었다. 예상하고 있던 캐릭터와 정확하게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극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표현해준 그리스월드였다. 3인3색,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마포우 앞머리 좀 누가 정리해줘...ㅠㅠ 앙들 얼굴은 대충 익어서 어디 서있는지도 대강 파악을 했다. 모르그가에서 병광배우 말고 경초 앙? 이 오랑우탄을 했는데,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재미있었다. 갈가마귀 시작 전 셩그리가 '뻐꾸기' 라고 고의로 잘못 말하며 비웃는데, 그 뒷모습을 시선으로 쫓으며 노려보던 마포우의 눈길이 종선레이놀즈에게까지 닿았다. 그 눈빛에 움찔하며 왜 노려보냐는 듯 움찔거리는 종선레이놀즈의 모습에 짘슈 지뢰를 밟았다ㅠㅠ 그가 결혼식 때 술병 건넬 때, 예의바르게 인사하던 마포우가 그리스월드의 이름을 듣고 허리를 채 펴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버리는 모습이나 첫대면 때 "그래서 얼마나 주실 건지 여쭸습니다" 라는 대사를 다 끝내고 성호를 긋는 디테일 같은 게 기억에 남는다. 관객석에서 관에 손을 차마 못대는 디테일을 똑같이 해줘서 좋았다. 이 넘버 정말 너무 좋다. 2막에서 회색 목도리 두르고 나오는 마포우를 보며, 보지도 않은 서편제의 마동호 지뢰를 매번 밟기도 한다. 매날에서 유독 돋보이는 특유의 제스쳐들이 있는데, '영혼'을 말할 때 손가락을 모으고는 통 튕기는 손동작, 한 쪽 손을 하늘 향해 뻗거나 양팔을 벌리는 동작, 우아해보이는 단정한 걸음걸이 등등이 '무대' 라는 곳에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무척 가슴을 뛰게 만든다. 넘버마다 목소리의 질감과 색이 전혀 다른 것도 매력적이다. 함진에서 문장 끝내는 '-다' 음절 뒤에 '-으↗' 하고 붙이는 애드립이 제대로 취향이다. 이날은 함진 마지막 음을 비명처럼 끝내서 한동안 소름이 가시질 않았다. 하아. 덕후 맞아요^^.. 딕션과 발음, 억양을 가장 중시하던 내 취향마저 완벽하게 짓누를 정도로 영혼을 울리는 그의 목소리와 연기에 지독하게 홀리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기필코, 무대 위에서 영어로 노래하고 대사하는 마이클리 배우를 만나리라. 물론 한국 활동은 부디 계속해주시길. 브로드웨이 가계신 동안 내내 아쉬웠어요. 





다음주에 자다섯 관극이 있는데, 전부 다른 페어다ㅋㅋ 포우는 9개극이 맞아요. 나는야 다작러! 매번 김성수 음감님만 동일했다. 공연 중에도 가끔 시선을 강탈당했는데, 공연 내내 완벽하게 집중해야 하는 그 역할의 막중함이 새삼 놀라웠다. 페스트도 음감님 때문에 꼭 보려고 한다ㅎ 편곡 궁금해.  



마포우 세미막 예대 터졌는데, 이날 공연이 너무 좋아서 귀가 후에도 한참을 돌이키며 푹 빠져있다가 자정 직후에 깨달았다. 입금 까먹었다. 아오 젠장ㅠㅠ 그래도 이 공연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막 원통스럽고 자괴감 느낄 정도로 안타깝지는 않았는데, 속상하긴 하다... 그거 때문에 JCS 아레나 영화도 더 안 좋은 자리임에도 다른 날로 바꿔서 예매했는데 말이다. 힝. 다시 예대 걸긴 했는데, 터질 지 모르겠다. 마포우 자막을 하기에 손색이 없는 공연이긴 했지만, 아직 2주나 남아서 벌써 끝이라 말하기엔 너무 성급한 일이니까. 부디 막공주간에 칼퇴를 할 수 있길....ㅠ 그나저나 재포우는 대체 언제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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