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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in 광림bbch아트홀, 2016.06.28 8시 공연





김동완 에드거 애런 포, 정상윤 그리스월드, 김지우 엘마이라, 장은아 버지니아, 안유진 엘리자베스, 유승엽 레이놀즈. 뎅포우, 토로그리. 뎅토로. 뎅포 자둘, 토그리 자둘. 포우 5차.



프리뷰 뎅포 첫공 이후 한 달만에 만나는 오빠얌. 공연이 거듭될수록 호평이 많아져서 다시 기대치를 높였는데, 중간중간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서 무척 행복했다. 매주 마포우만 만나다가 뎅포를 보니 두 배우 간의 다른 점들이 보여서 흥미진진하고 즐거웠다. 포우가 이렇게 말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고 노선도 차이가 나서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극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발성이 조금 더 묵직해졌고, 넘버를 소화하는데 있어 영리해졌다. 본인만의 보컬 강점을 살리고 극 내내 일관성 있게 캐릭터를 이끌어나가며 '대극장 주연'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오빠얌 걱정은 안해도 된다니까.



※스포있음※



뎅포우는 '철이 덜 든' 똑똑한 어린아이 같았다. 매의 날개에서 당당함과 포부가 한껏 부풀어오른 모습이었고, 모르그가에서는 떠오른 영감을 빠르게 적어내리고 장난꾸러기 같이 히히힛- 하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특유의 걸음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녔다. 첫대면 때의 그 탄성과 노골적으로 내뱉은 비웃음은 무척 무례하고 재수 없어서 이날 노선과 정말 잘 어울렸다. 실제 에드거 앨런 포가 그렇게 주변에 비난과 혹평을 거만하게 쏟아내고 다녀서 적이 많았다던데, 뎅포 역시 본인이 잘났다는 걸 알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마음 내키는대로 글을 쓰고 입을 터는 오만한 천재였다. 취향저격. 이러니까 그리스월드가 그렇게 포우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개연성이 한층 부각됐다. 포우들은 어그로를 어느 정도 끌어줘야 결말을 보는 관객들에게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불쌍하고 애처로운데 어느 정도 납득은 되는 비극. 절대선, 절대악은 재미없잖아. 그렇게 멋대로 펜을 휘두르면서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한껏 다정하고 따뜻하다는 간극 역시 인물의 입체성을 만들어준다. 엘마이라와 버지니아. 두 사람에게 느끼는 '사랑'의 색감이 같은 톤이지만 확연히 다르다. 2살 때 돌아가신, '아마도 좋은 분' 이셨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갈증. 모성애에 대한 갈망. 엘마이라로부터 간접적이나마 모성애를 처음으로 경험하며 안정감을 느끼고, 버지니아에게 어머니를 투영하여 조건 없는 헌신을 보여주고 사랑에 대한 갈망을 되돌려받으면서 불완전하고 위태롭지만 위안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를 경험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모두 곁에서 떠나고, 홀로 남아 텅 빈 관객석을 바라보는 기분을 느끼며 되돌아오지 않는 기도를 한다. 마포우가 '버지니아' 를 떠올리며 절규했다면, 뎅포우는 '자기 자신' 의 외로움과 고통에 몸서리쳤다.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건 마포우의 관객석이고, 가슴을 시리도록 아프게 만드는 건 뎅포우의 관객석이었다. 그리스월드의 방문에 스스로의 바닥을 아낌 없이 내보이며 자조를 뱉어내는 뎅포. 거짓말!! 절규와 함께 가슴을 쥐어뜯는 비통함이 얼얼할 정도로 피부에 와닿았다. 떠났던 엘마이라가 돌아오고 자신의 아름답고 열정적인 과거를 말하는 그의 말을 애써 부정하고 도망치려한다. 하지만 자신의 글. 다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와 문장들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던 뎅포가 천천히 깨어난다. 괴롭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본질을 끄집어내는 그 찰나가 무척 아름답고 섬세했다. 하지만 결국 비참한 비극. 엄마, 엄마, 너무 추워....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아파하는 그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 순간 얼굴에 피어나는 마지막 표정, 미소. 쓰러진 그에게 손을 내미는 엘리자베스. 몸을 일으켜 꽈악 껴안지만, 뒤를 가리키는 엄마의 손짓에 당황스러움과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미련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어깨.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얼굴에 아쉬움이 짙지만 아주 살며시 옅은 미소가 걸린다. 미련은 남지만 후회는 없어보이는, 무척 복합적인 기분. 영원. 나는, 에드거 앨런 포는, 영원해. 





넘버 얘기를 하기에 앞서, 일단 자리부터 말해야겠다. 1층 뒤 P열 중블로, 확실히 앞자리보다 음량이 작고 가사 뭉개짐이 심했다. 오케 음량까지 들쭉날쭉한 건 음향팀 쪽 문제일 듯 싶고. 시야는 무대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바닥까지 보인다. 배우 표정은 무대 앞쪽이나 돌출이 아니면 정확하게 보이진 않는다. 무대 연출을 제대로 즐길 수 있어서 좋았지만 개인 사정이 아니었다면 굳이 안 앉았을 자리다.



매의날개 고음부분에서 살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불안하지 않게 잘 소화해줬다. 본인도 조금 긴장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이긴 했지만, 특유의 음색으로 곡의 매력을 살렸다. 2막 매날맆은 정말 흠잡을데 없이 좋아서 포우의 죽음이 무척 아쉬웠다. 죽지 말고 노래 끝까지 불러주면 좋겠다, 라는 기분. 모르그가는 같은 오케 같은 앙상블 노래인데 분위기 자체가 마포우와 달라서 재미있었다. 이 넘버는 곡 자체보다는 연출을 훨씬 좋아하지만, 신이 나서 설명을 읊어주는 작가 뎅포의 목소리와 딕션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첫대면 때 넘버는 조금 아쉬운 편. 고음보다는 이 정도 음역대의 저음이 더 불안하게 들렸다. 울림통이 큰 발성이라면 단점이 부각되진 않을 텐데, 하는 미세한 아쉬움이랄까.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발성이 프리뷰 때보다 묵직해져서 듣기에는 편했다. 본인 음역대에 맞는 곡에서는 청량하고 맑은 음색과 담백한 톤으로 훨훨 날아다녔고. 대망의 함정과 진자. 자첫 때는 조명 색에 경악해서 제대로 즐기질 못했는데, 관극을 하면 할수록 마음에 쏙 들어오는 넘버다. 이날 뎅포의 함진을 보며 조금 울었다. 너무 좋아서. 글을 쓰고 싶어 근질거리는 손으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고는 미친 듯 문장을 적어내려간다. 완전히 글에 홀려버린 얼굴. 책상 아래에서 불쑥 솟아오른 손에 시선도 두지 않고 글을 쓰다가 그 손짓에 휘둘린다. 미쳐 있는 그 표정, 가사 하나하나에 이야기의 힘을 불어넣는 목소리의 강약조절과 휘청거리는 몸짓의 위태로움.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너무도 섹시하게 표현해낸다. 갈가마귀. 넘버 초반은 조금 아쉬웠는데,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클라이막스에서 영혼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한참 여운이 가시질 않아서 울컥이는 감정을 가다듬느라 다음 넘버에서 살짝 집중이 흐트러졌다. 달님맆. 패닉과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버지니아를 끌어안는 절박한 몸짓. 온 몸으로 표현하는 감정. 다 뛰어넘고 영원. 중반부터 급격하게 차오르는 비극미로 노래를 듣고 있는데 눈이 부신다는 기분이 들 즈음, 오케 반주가 없이 완전히 생목소리의 오빠얌 노래가 들려왔다. 음향 실수인 줄 알았는데, 오빠얌이 가사 실수를 해서 오케가 반주를 잠깐 멈추고 그 소절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로 이어갔고 잠시 멈췄던 오빠얌이 거기 맞춰서 다시 진행한 거였다. 내심 아찔했는데, 이 참사로 투명하고 맑은 뎅포의 무반주 영원을 잠시나마 들을 수 있어서 황홀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뎅옵이 얼마나 베테랑인지를 새삼 실감하기도 했고. 이 실수 때문에 커튼콜에서 하트를 안해준 거 같다ㅠ 토그리랑 하긴 했지만, 반쪽자리 하트는 취급 안함ㅋㅋ 아무튼 이날 영원이 박제됐으면 할 정도로 너무 좋았다. 풍성하고 풍부한 넘버.





전주 목요일 뎅토로 공연 이후 잠시 다른 공연하시다가 다시 돌아온 이날 토그리는, '부활' 답게 소름끼치도록 강하고 무시무시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 웃으며 농담도 하지만, 뒤에서는 무표정하고 분노하며 저주하고 증오하는 그 성격의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보고 있자면 오싹하기까지 하다. 싸이코패스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기분. 그래도 지난 마토로 때보다는 조금 '신실' 해진 모습이 있긴 했는데, 함진맆 때 무대 오른쪽으로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기도 했고, 날믿어맆에서 중간중간 성호도 긋고 입으로 주기도문을 중얼중얼거리기도 했다. 널심판해맆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시 입에 올리는 자" 라고 말하며 관객석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는 디테일이 엄청 취향이다. 관객을 극 속으로 확 끌어들이는 순간. 과하지 않고 딱 적절해서 좋다. 날믿어에서 내민 자신의 손을 잡지 않는 뎅포를 향해 싸한 표정으로 '잡아' 라고 입모양만으로 명령하는 디텔도 어울린다. 갈가마귀에서 '비둘기' 라고 일부러 틀리게 말했을 때 레이놀즈가 받아쳐줘야 하는데 승엽레이놀즈가 가만히 있어서ㅋㅋ 자문자답으로 아무렇지 않게 진행했다. 대사할 때나 노래할 때나, 가사에 맞게 완급조절을 잘 하는 배우다.    



뎅포 애드립. 1막 오버츄어에서 앙들이랑 몸짓 합이 완벽하게 맞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종맆에서는 토그리와 악수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고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동작들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날믿어에서도 씨익씨익 거리는 숨소리를 부러 크게 내는 것도 노선이랑 잘 맞아서 좋았고, 함진에서도 어찌나 신음을 잘 흘리는지 '프로신음러' 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았다. 2막 버지니아 솔로 넘버에서 엄마 무덤 앞 비석을 향해 토해내듯 말을 쏟아내는 디테일 좋더라. 마지막에는 그 위에 키스도 하면서 엄마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 아, 함진에서 왼팔 옷소매 흘러내렸는데 옷 위가 아니라 그 아래로 주사기 집어넣어서 살 위에 주사 놓는 거 진짜 고마웠다. 이런 사소한 거 신경쓰는 내가 싫다^_ㅠ... 결혼식에서도 마냥 행복한 게 아니라, 글에 매몰되고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이 유지되어 좋았다. 레이놀즈에게 술을 받고 나서, 마포우는 정말 필요 없다는 듯 치워버리고 싶다는 얼굴이었는데 뎅포는 고민하더라.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나서야 술병을 건네니까, 종에서 술을 애타게 갈구했다는 얼굴로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에 개연성이 들어갔다. 대사가 많으니까 뎅포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마침 이날 2차 플북이 나와서 샀다. 1차 플북이랑 연습실 사진이 다르다는 얘기를 들어서 조금 아쉽다. 지난 프랑켄 플북도 그랬는데, 공연사진 화질이 왜이렇게 떨어지지? 무대가 어두워서 흔들림도 생기고 번짐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아닌데, 좋은 카메라로 제대로 찍은 고퀄을 기대한 입장에서는 무척 아쉽다. 그래도 좋은 사진 몇 개가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이제 들고 있는 표가 막공주 뎅곰, 뎅토로 밖에 없다. 저 두 개도 주중이라 갈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다. 7,8월 너무 바쁘고 예측이 안된다ㅠㅠ 7월이라니 벌써부터 헤어짐이 아쉽다. 내년 재연, 은 과연 어떻게 될련지. 이번주 금욜에 뎅포 브이앱으로 세 명의 포우가 전부 나온다는데,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컨디션 관리 잘 해서 본인도, 관객도 만족스러운 공연을 매번 만들 수 있길 바라니까. 물론, 오빠얌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한 달 만에 만났는데 이토록 좋은 모습 보여줘서 고맙고 기쁘고 사랑스럽고, 뭐 그렇다. 이 맛에 오빠들을 여전히 좋아하는 거지. 뎅토로 공연 보느라 놓친 또오해영이랑 엠오빠 예능 챙겨봐야겠다. 이번달에 포우를 네 번이나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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