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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in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2016.01.22 8시 공연





2차 관극. 양준모, 김우형, 조정은. 양발장, 우형자베르(소녀자베르), 선녀판틴. 민우혁 앙졸라, 곽이안 가브로쉬. 자체레전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감정선이, 쌓아나가는 이야기가, 캐릭터들 간의 합이, 아주 쫀쫀하고 임팩트 있었다. 나 양발장이랑 잘 맞나봐. 1210 공연도 그렇고, 내 관극일에 유난히 평이 좋네:)



지난달 1차 관극 때는 음향과 오케에 대한 아쉬움이 짙었는데, 이날은 오케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괜찮았다. 일단 지휘자가 문정음감님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본은 하고 들어갔고, 1층 중블 통로석이 의외로(!!) 음향이 나쁘지 않았다. 음향팀의 발전이라 말하기엔 소소한 음향 실수가 꽤나 많아서 단언할 수 없다. 왜 이 공연장은 방문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지....ㅠ 엘리 관극 때 크게 깨달았듯 사블만큼은 무조건 피해야겠다. 



※스포주의※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눈물을 쏟았다. 특히 2막은, 너무 아프게 울어서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프롤로그부터 양발장의 감정이 엄청 생생해서 강렬하게 심장이 요동쳤다. 심지어 1210 때보다 노래도 더 좋아! 아, 브링힘홈은 1210이 쬐끔 더 좋았다. 감정은 둘다 좋았고. 다른 인생을 살겠노라 결심하고 찢어버리는 노란 딱지. 원작에서는 마차에 깔린 시민을 용감하게 구한 뒤 시장이 되었다고 기억하기에 뮤지컬의 바뀐 순서가 생경했지만, 장발장과 자베르의 팽팽한 긴장감과 바로 이어지는 나는 누구 넘버까지 아주 흡입력있게 전개되어서 그 변주를 납득했다. 양발장이랑 우형자베르 대립각이 너무 좋다. 그나저나 고뇌하다가 재판장에 가서 "난 누구? 난 장발장!" 이라고 외치는 그 중요한 장면에서 마이크가 말썽일 일이냐고. 바로 직후 가사는 또 제대로 들린 걸 보면 옷 같은 것에 가려진 것 같기도 하고. 우형자베르는 특유의 표정이 상상하는 자베르의 이미지에 정확하게 부합해서 취향이다. 악역 같은 메이크업과 표정임에도, 꼿꼿하게 선 채 내부의 굳은 신념이 무너져내리는 걸 사력을 다해 막아보려는 연기가 너무 좋아서 극 후반에는 자베르의 얼굴만 봐도 마음이 아팠다. 게다가 노래도 잘한다. 중저음으로 눌러 부르는 stars 는 우형자베르 덕분에 최애곡 중 하나가 되었다. 하아, 레미라센도 뮤비 같은 거 있음 좋겠다. 아님 오슷...ㅎ.... 2차 플북이 나왔는데 가사가 없어서 일단 구매를 보류했다. 가사집 좀 팔아줘..ㅠㅠ





선녀판틴은 음색이 참 좋다. 죽음 직전의 장면에서 온갖 생각이 뒤엉킨 감정표현이 최고였다. 당장이라도 코젯을 데려다가 그의 품에 안겨주며 토닥여주고 싶었다. 새하얀 옷에 조명을 받아 더욱 눈부시던 장면. 격한 싸움 끝에 장발장은 자베르를 쓰러뜨리고 도망친다. 장발장은 여러 차례 자베르에게 동정을, 상황에 따른 유연함을, 약간의 관용을 간절히 요청한다. 자신은 돌아오겠다고, 할 일만 끝내고 당신이 말하는 죗값을 달게 치르겠다고 말한다. 원칙주의자 자베르의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가소로운 부탁일 뿐이지만, 레 미제라블, 불쌍한 사람 하나를 차마 버리고 갈 수 없는 장발장의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자신을 내던지리란 결단이다. 끝없이 이어진 평행선처럼, 교차하는 부분 하나 없어보이는 두 사람의 대립. 하지만 결국 근간은 같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법률 그 자체를 맹신하며 지키려는 자베르나, 바로 주변에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인간을 지키려는 장발장 모두 본질적으로 닮아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자베르나 장발장의 방식은 양 극단을 상징하기 때문에 둘다 지나친 부분이 있지만, '레미제라블'이라는 컨텐츠의 핵심인 인간애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이 극이 고전인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 하나하나 허투루 만드는 일 없이,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며 그래도 존중받아 마땅할 존재들이라는 애정 어린 시선을 견지한다. 





바리케이드의 학생들 이야기로 넘어가보자면, 그들의 모습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Red and Black 부터 정의를 갈망하는 그 열기가 데일 듯한 뜨거움으로 느껴졌다. 무기를 들고, 피를 각오하며 바리케이드를 세운다. 갑자기 그들의 모습에 우리의 역사가, 거리가, 항쟁이, 무엇보다 광주가, 겹쳐졌다. 숨이 턱턱 막혀왔다. 너무도 가벼이 흩날리는 목숨들. 총성과 화약냄새. 바리케이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탕, 거짓말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아이의 몸. 마지막 전투. 끝까지, 바리케이드에 남아 있는 사람들. 한 사람 또 한 사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며 조명으로 번갈아 비춰주는 그 연출이 너무나도 가학적으로 느껴졌다. 지독하게 아팠다. 아득하다.



소호마리 이날 좋았다. 엠티체어의 잔잔하고 고통스런 감정선이 제일 좋긴 하지만, 다른 넘버들도 꽤 매력적으로 소화했다. 민졸라는 바리케이드를 치기 전까지만 해도 한 톨의 의심 없는 강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혁명가였는데 바리케이드 이후에는 고뇌와 의심과 불안함이 얼핏 스치며 위태롭게 흔들리는 청년이었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복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새로운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주조연 배우들이다. 레미는 앙상블 배우 몇몇에게도 솔로 파트가 주어지는데,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목소리라서 극이 더욱 풍성해진다. 원데이모어 같은 합창에서는 또 얼마나 화음이 잘 맞던지. 에필로그, 딱딱한 의자에 한껏 몸을 웅크리고 코젯의 손을 잡은 채 죽음을 맞이하는 장발장. 그의 어깨에서 담요를 걷어내는 판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펴는 양발장의 표정이 눈부시다. 살아서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남겨두고 떠나는 죽은 사람들. 쏟아지듯 울려퍼지는 노래. 목소리들. 





레미제라블은 격동의 시절을 살아간, 풍파 많은 한 사람의 일생을 주축으로 삼는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기지만 산만하다거나 뜬금없다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이토록 좋은 원작에 훌륭한 넘버와 잘 다듬어진 연출과 탄탄한 실력의 배우가 함께한다. 보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극이라서 가열차게 관극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 극이야말로 오픈런이 필요합니다.... 공연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이번 주말의 다른 관극 하나는 취소해버렸다. 여운을 오래오래 되씹고 싶다. 뿌듯하다. 행복,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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