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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

in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15.12.26 3시 공연





삼연. 자첫. 아주 오랜만에 '백지' 상태로 마주한 극. 조금 많이 힘들었다. 





다이애나 정영주, 댄 이정열, 게이브 최재림, 나탈리 전성민, 헨리 백형훈, 의사 임현수.  



※스포있음※



'백지' 상태라고 언급했지만, 시상식 축공 '넌 몰라' 영상과 지게의 '난 살아있어' 음원은 접했다. 저 2개만으로도 게이브가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란 걸 짐작하긴 했고, 극의 중요한 반전들 역시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스포는 잘 피해다녔다. 그래서 첫 인상이 이토록 강렬하게 온 몸을 전율시켰다. 너무, 아프다.      



내가 이 극을 작년 여름 전에 만났다면, 분명 달랐을 것이다. 응, 그랬겠지. 



1막 중후반부터 소리만 내지 못했을 뿐, 오열 수준으로 울었다. 인터 시작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두 눈이 새빨갰다. 보통 관극할 때 상당히 많이 우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 현실을 직시하게 하며 고통스러움에 가슴을 쥐어뜯고 싶게 만든 극은 처음이었다. 니 곁을 지켰어. 댄이 하얀 수건을 들어 의자를 닦는 장면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차마 똑바로 마주할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마주보고 싶어 재차 눈을 뜬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댄의 왼손. 양동이 속으로 떨어지는 새빨간 물. 관극하고 이 장면만 열 번 가까이 곱씹는 중인데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와서 미쳐버릴 것 같다. 후우. 어디 가서 소리 좀 지르고 오고 싶다. 



2막도 많이 울긴 했는데,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애초에 이 극의 넘버가 게이브 넘버를 제외하고는 취향 범위가 아니기도 하고, 워낙 다른 가사가 겹치며 정확하게 안들리는 부분이 많아서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했다. 가사가 직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묘한 위화감이 느껴져서 번역은 불호 쪽인 것 같기도 하고. 다이애나의 '난 산이 그리워' 넘버는 진짜 이해가 잘 안간다. 이거 배경 미국 아닌가....?.... 뜬금없이 무슨 산....?.... 흠. 또 공부해야 하나. 





극 제목이 왜 저걸까, 고민하고 있는데 2막의 '어쩜(Next To Normal)' 에서 나탈리의 대사가 확 치고 들어왔다. 평범함 그 언저리라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괜찮다고. 극을 보기 전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리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극을 보니 이 이야기는 '평범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절규더라. 그래, 평범한 거, 그게 제일 어려운 거지. 



오히려 내 주변의 얘기를 극으로 만들면 더 드라마틱할 것 같는 생각을 했다. 문제는 결말을 아직도 모른다는 거. 지금 시놉을 써본다면 필경 새드로 끝날 이야기. 엔딩 넘버 '빛'을 들으며 참, 허무했다. 그래, 뭐, 그렇지. 그런 게 삶이긴 하지. 근데, 나처럼 도망치고 외면하는 인간이 할 법한 이야기라서. 그게 되게 짜증나고 더 아프더라.   





가장 공감한 캐릭터는 의외로 댄이었다. 여기선 다 말 못하지만, 그랬다. 게이브는 '괜찮아 사랑이야' 의  도경수 생각이 많이 나더라. "작가님, 저 이제 오지 마요?" 하던 울망이는 눈망울. 다이애나도 그저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됐다. 애정결핍의 나탈리 역시 많이 아팠다. 나탈리 인생, 앞으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다. 헨리? 아마 댄처럼 되던가 아니면 떠나던가 둘 중의 하나겠지. 다이애나의 전철을 똑같이 밟지는 않겠지만, 완치는 불가능해. 평생 껴안고 살아야겠지.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벗어나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도.  



아는 척 지껄이고 있지만, 나는 도피자고 도망자다. 응. 그리고 이 결정에 후회는 없다. 이렇게 달아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 역시 제정신은 아니니까. 사실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했다. 묶여 있는 끈이 조금 길어졌을 뿐이다. 





하아. 너무 아파서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다. 아프게 가슴을 후벼파는 가사들이, 그리 공감을 살만한 것들이 아니라서 언급하기 어렵기도 하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떠올리는 것조차 힘겹다. 이렇게, 아플 줄 상상도 못했다. 길을 잃어버렸다. 괜히 본 것 같기도,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상처를 마주하게 되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번 연말은 참, 힘드네. 여러 모로.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그게 나고, 그게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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