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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노트

in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2015.08.13 8시 공연





막공을 이틀 남기고, 결국 관극했다. 볼까말까 고민했던 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결정적인 건 그놈의 테니스 씬. 정말 그 장면 하나 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었다던 여러 후기를 접하고, 휴덕 중이지만 테니뮤 덕으로써 호기심이 잔뜩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 배우들을 하나의 무대에서 볼 기회가 흔치 않다는 세간의 평가 또한 귀를 팔랑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다들 이름만 많이 들었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배우들이라서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관극이 꽤나 재미있었다. 비록 노할인이고, 공연장도 별로고, 중간에 차가 끊겨 택시 타고 1시에 귀가했지만 말이다.





야가미 라이토 홍광호, 엘 김준수, 미사 정선아, 렘 박혜나, 류크 강홍석. 



※스포 있음(비록 공연 다 끝나가지만..)※



당시 원작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챙겨 읽었던 만화덕으로서 극의 내용전개에 아쉬움이 분명 있지만, 핵심을 뽑아 '뮤지컬'로 담아낸 전략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본다.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캐릭터들의 성격도 잘 살려냈다. 그리고 결말도 나쁘진 않았다. 엄청 허무하다, 헐, 뭐야 저게!!!!!! 라는 리뷰들을 미리 읽어서 대강 예상하고 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원작의 결말 또한 클라이막스에서 뚝 떨어지듯 마무리지어졌기 때문에 이 극이 유별나게 허무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애초에 데스노트를 줍고 그걸 무기 삼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대던 사람이 맞이하게 될 최후란 건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정의'를 확고하게 가지고 있던 똑똑한 사람이 작은 계기 하나를 통해 점차 폭주하고 결국 스스로를 신세계의 '신'이라 자칭하는 시점에서 사신 류크가 흥미를 잃는 건 당연했다. 이미 인간들에겐 '신'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래서 죽음보다도 지루한 시간들을 소모하고 있던 사신이, 다른 인간들 위에 군림하며 '신'처럼 손쉽게 힘을 휘두르는 인간 하나에 새삼 흥미로워 할 리가 없다. 잘 가지고 놀다가 버려진 장난감처럼 한 순간에 팽 당한 라이토의 최후가 덧없는 찰나의 인생 같아서 입이 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배우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일단 홍광호 배우. 와, 얼굴도 목소리도 잘생겼어....! 대사와 노래에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변주시켜 여러 차례의 전율을 야기했다. 고음도 아주 선명하고 깔끔하게 잘 나오고 저음도 섹시하다. 다음에는 풍부한 저음을 사용하는 캐릭터로 만나보고 싶다. 김준수 배우. 마침내 드디어 만나보게 됐다는 말부터 하고 시작하자. 그리고 앞으로는 뮤지컬 무대에서는 굳이 만나볼 일 없을 것 같다는 말도 같이 해야겠다. 예전에 블로그에도 살짝 언급하고 넘어갔던 것 같은데, 목소리가 내 취향이 아니다. 역시, 첫 넘버부터 1막 끝까지는 그의 노래를 감상했지만, 2막에는 비슷하게 강강강 진행되는 목소리에 살짝 지치는 기분을 느꼈다. 호불호가 갈리는 배우라는 평에는 '불호'에 더 가깝다. 개성이 아주 뚜렷한 '엘'이라는 캐릭터 덕분에 목소리와 연기의 유니크함을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른 극의 다른 캐릭터에서는 나와 맞지 않는 배우임이 명백해질 듯하다. 물론 몸연기는 인정. 중력이 적용되지 않는 듯, 만화책에서 톡 튀어나온 듯, 동작 하나하나가 매끄럽고 자연스럽긴 했다.


강홍석 배우. 킹키부츠 이후로 떠오르는 신인이라던데, 정말 대단했다. 사신 류크의 기괴한 동작을 어색함 없이 소화했고,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결말 부분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정선아 배우. 너무 예쁘다ㅠㅠ 그리고 모든 넘버를 아주 매끄럽게 소화했다. 목소리가 어쩜 그렇게 짱짱하지? 박혜나 배우도 같은 맥락에서 연신 감탄하게 됐다. 특히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는데, 다른 극에서 만났으면 살짝 취향이 아니었을 것도 같지만, 사신 렘이라는 역할 안에서는 너무도 완벽한 싱크로를 자랑했다. 





그리고 이제 연출. 무대 앞쪽 양 옆으로 T자 돌출을 만들고 가운데에 오케석이 있었다. 당연히 그 돌출무대에서 테니스 씬이 진행될 줄 알았는데 본무대여서 살짝 당황했다. 게다가 가설 무대들로 인해 본무대가 너무 좁아서 테니스를 치는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운데 내려온 그래피티 아크릴판 대체 뭐야!!!!!! 아오, 메인 회전무대를 사용하는데 왜 그걸 굳이 가운데 둬서 시야를 방해한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무대에서 공 없이 테니스 칠 때는 '조명'과 '소리'가 핵심인데, 조명은 거의 없고 소리는 갈수록 배우들 휘두르는 동작과 타이밍이 안 맞더라^_ㅠ 내 기대치가 높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난 테니뮤 수준의 퀄리티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다고........... 그래도 테니뮤 무대를 참고하긴 했겠지, 정도의 기대였다고............. 흡. 무대에서 테니스 채만 가지고 테니스 시합을 구현해내는 걸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감탄했겠지만, 뜯어 고치고 싶은 면면이 너무 많이 보이던 나로서는 매우 아쉬운 장면이었다ㅠㅠ 테니스 끝나고 뒤쪽으로 지나가는 전철 그림자가 보이던데 설마 그거 의도한 연출인가...??! 일본만화 원작에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극이라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일본 분위기를 풍기는 연출이라니 새삼 놀라웠다. 시부야 씬에서도 거대한 횡단보도가 시부야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걸 알아야 빼곡하게 움직이는 사람 이름들을 보다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치코 동상도 깨알같이 소품으로 올라오기에 살짝 터졌는데, 아는 사람 눈에만 잘 보이는 소소한 연출들이 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넘버는 reprise 엄청 많더라. 가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면서 아까 그 노래와 지금 이 노래가 명확히 구분되어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reprise의 궁극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 극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넘버는 결국 이거.





라이토와 엘 넘버는 유투브 영상으로 몇 번 들었는데, 라이토 넘버가 더 취향이다. 가사도 그렇고.


그리고 성남......... 블퀘와는 또다른 의미로 애정극이 결코 올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공연장이 되었습니다. 짝짝짝. 딱 무대 주변에만 스피커가 있더라. 그 음향부족을 뚫고 선명한 노래를 들려준 몇몇 배우분들께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본무대가 세종문화회관 급으로 먼데, 무대는 더 작아. 그리고 세종은 음향 잘만 다루면 괜찮다며. 위치도 그렇고 주변 편의시설 없는 것도 그렇고, 정말 다 떠나서 시설이 너무 별로라 안되겠다. 성남에서 뮤지컬 올리지 맙시다........ㅠㅠ 





뮤지컬 데스노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두 개다. '정의' 그리고 '사랑'. 각자 저마다의 정의를 품에 지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악'이 없어지는 목적 자체가 정의. 다른 누군가에게는 '법'이 전제하는 원칙 자체가 정의.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자신의 정의. 그들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존재는 즐거움과 흥미를 느꼈고, 다른 존재는 연민과 동경을 느꼈다. 굳게 믿는 정의를 추구하다가 결국 파멸로 치닫는 그들의 면면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작 자체도 꽤나 철학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데, 뮤지컬도 그걸 잘 담아낸 것 같아 만족스럽다. 



"결국 나쁜 놈은 너만 남겠네?" 라는 류크의 말에 발끈하던 치기어린 라이토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분명히 올바르다 굳게 믿으며 선의로 시작된 일인데,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세상의 진리는 여전히 유효한지 점차 광기어린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그의 행보가 묘한 기시감을 남겼다. "그레이존이 많은" 수사를 하는 엘 또한 목적을 위해서는 올바르지 않을 수도 있는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믿는다. 분명 다른데도 아주 닮은 라이토와 엘을 보고 있자면 결국 절대적인 '선'이나 '정의'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것이 정확히 와닿는다.    



보지 않았다해도 크게 땅을 치며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보게 되서 다행인 극이었다. 막공 주의 끄트머리에 만나 이제 응원할 건 별로 없지만, 배우들의 차기작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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