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엘리자벳
in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2015.07.24 8시 공연
류배우님 덕질을 하다가 강 같은 엘리자벳의 ost를 듣게 되고, 그걸 한참 듣다 보니 '토드(죽음)'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결정타는 은케니의 '키치'. 밀크 축공 영상을 볼 때만 해도 그냥 넘겼는데, 키치 넘버 듣고 이걸 무대에서 한 번은 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조엘리+동톧 캐스팅을 홀라당 예매하고 바로 관람하러 가게됐다.
캐스팅보드가 이곳저곳에 엄청 많았다. 24일 캐스트는 조정은, 전동석, 최민철.
※스포일러 있음※
음원을 들으며 상상하던 무대를 직접 보는 건 또다른 재미였다. 스포를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첫 관극 전에는 되도록 아무 정보 없이 가는 편인데, 엘리자벳은 어쩔 수 없었다. 무대는 프롤로그, 밀크, 마지막춤만 두어번씩 보고 나머지 넘버들은 대충 상상만 했었는데, 화려한 무대가 기대치를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일단 조엘리. 참 사랑스러운 배우였다. 예쁘고,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하고. 토드도 요제프도 한순간 사랑에 빠졌던 게 이해가 됐다. 자유를 사랑하던 발랄한 소녀가 궁 안에 갇혀 생기를 잃어가다가 결국 분연히 떨쳐내며 주체성을 강하게 보이는 1막의 연기가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좋았던 2막의 감정선. 특히 루돌프의 죽음에 절규하며 토드에게 제발 자신을 데려가라 애원하는 연기가 상당히 절박했다. 그 부탁을 거부하는 토드가 이해가 됐달까. 그렇게 무너지고 망가진 엘리자벳을, 고고하고 단호한 죽음이 원할 리 없다. 여기서 동토드가 더 강하게 비웃듯이 지금은 안돼! 라고 연기해줬음 훨씬 좋았을 텐데. 조엘리는 표정도 풍부하고 노래도 좋았다.
동토드는 다떠나서 잘생겼다ㅋ 키도 크고 스타일링도 완전 마음에 들어서, 무대 위에 토드가 나오면 계속 시선이 갔다. 넓은 음역대와 풍부하게 음을 다루며 강약을 조절하는 노래 실력이 아주 좋았다. 연기가 워낙 말이 많아서 거의 포기했었는데, 생각보다 좋아서 놀랐다. 당일에 류팬텀 마티네를 관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못하기만 해봐라-_-' 라고 살짝 벼르고 있었는데, 오히려 표정을 풍부하게 사용하며 감정을 연기해서 꽁기한 마음이 눈녹듯 사라졌다. 오른쪽 입꼬리를 끝까지 끌어올리며 짓던 썩소와 눈을 희번덕거리며 광기를 표현하던 표정연기가 인상깊었다. 자신을 거부하는 씨씨의 태도에 충격 받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 당황한 표정도 괜찮았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씨씨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토드의 모든 씬은, 연출가의 사적인 취향이 담뿍 들어간 캐릭터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토드가 지나치게 멋지잖아...... 아 젠장. 류토드 절대 네버 안돌아올텐데ㅠㅠㅠ 음역대 등의 비판을 적지않게 받았단 걸 알지만, 진짜 딱 한 번만 보고 싶다ㅠ 넌 내 손안에 있을 뿐이라던 고압적인 류톧이라니ㅠ 그나저나 2막 중간에 목걸이 던지면 토드가 받아야 하는 거였다고....? 손으로 아주 제대로 튕겨내고선 뻔뻔한 표정으로 서있길래 당연히 엘리자벳과 요제프의 사랑 징표인 목걸이를 거부하고 비웃는 게 노선인 줄 알았음ㅋ 아무래도 연기가 부족하다는 평의 근간은 몸을 잘 못쓰는 것 때문인가보다ㅋㅋ 다른 리뷰들 읽고 한참 웃었네.
최케니는 무대를 휘어잡는 연륜이 있었다. 초연 때도 있었던 배우라서 그런지 자유분방하게 대사를 치고 무대를 휘젓는 솜씨가 훌륭했다. 거의 송쓰루 수준인 극인데 루케니는 대사가 엄청 많다. 그걸 거의 안 씹고 유들거리며 소화해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2막에서 오블 쪽에 거울 들이밀며 얼굴 좀 보라고 하는데 너무 정확하게 나랑 눈이 마주쳐서 순간 눈화장이 엄청 번졌나, 하고 뻘한 당황을 했다ㅋㅋ 키치는 가까이선 봤는데 엽서는 하나도 못 받았다. 여기서 사용한 마이크가 제대로 음향조절을 안했는지 찢어지는 소리가 나서 아쉬웠다. 키치를 제일 기대했었는데ㅠㅠ 최케니는 광기와 조롱어린 비꼼, 건들거림이 인상적이다. 극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 루케니는, 애드립과 카리스마가 공존해야 소화가 가능한 캐릭터다.
요제프의 윤영석 배우도 노래와 목소리가 좋아서 연신 감탄했다. 보통 이런 캐릭터에 별 관심 안두는데, 멋지게 찌질한 황제를 연기해서 정말 좋았다. 소피 역의 이정화 배우는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라. 원캐시던데 기복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한 연기와 목소리를 보여주셔서 감사했다. 앙상블도 괜찮았다. 그로테스크하게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고 손발을 마리오네트마냥 직각목각으로 움직이는 군무는, 연출 상 이해는 가지만 취향은 아니었다. 신이여 지키소서 우리 젊은 황제, 부분에서 토드와 죽음의 천사들이 날개망토 펄럭이는 거 좀 웃겨.. 전반적으로 안무는 썩 내 취향이 아니었다.
연출은 과한데 이해는 간다. 한 씬이 끝나면 암전이 내리고 후다닥 막 내려오고 무대장치 움직이는 게 지나치게 반복되니까 극 안으로 몰입하지 못하고 '내가 극을 보고 있구나' 라는 환기가 계속 됐다. 이렇게 커다란 무대와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루는 극이기 때문에 이해는 충분히 되지만, 아쉬움이 없진 않다. 이 극을 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넘버였는데, 후반부에서 나오는 이 멜로디가 아까 그 넘버였었지! 라는 걸 바로바로 캐치하는 순발력이 있다면 극 자체를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오케도 잘 받쳐주고 넘버도 좋고. 다양하고 화려한 의상에 눈이 즐거웠고, 무빙워크나 계단, 거대한 문, 인형극 무대 등등의 무대장치가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넘버는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넘버도 연출도 연기도 목소리 합도 좋았다. 루돌프를 유혹하고 선동하여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토드의 매혹적인 성격이 가장 강하게 표현된다. 큰 계단이 움직이며 극의 웅장함과 생동감을 더했다. 죽음은 혈기왕성한 청년에게 저들을 구원하는 것이 너의 '운명'이고 사명이라 꼬드기고, 그 절정에서 군중들이 그에게 요구한다. 벅찬 감정으로 자신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 굳게 믿으며 제발로 죽음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그의 뒤에서 그 군중들이 말한다. 그가 성공하면 우리에게 좋은 거고, 실패한다면 우리 탓이 아니라고. 그 뒤에서 미친 듯 웃고 있는 토드. 이런 가혹한 운명의 장난, 완전 취향이다.
좋은 자리가 있길래 서둘러서 결제하고 하루 만에 갔는데, 저건 좋은 자리가 아냐...... 와 진짜 블퀘 음향.....ㅗ 이 공연장 만든 사람 얼굴 좀 봅시다. 중블쪽 통로 2번째 칸 오블인데, 그것도 1층 2열인데, 음향 진짜 이럴 수가 있는 거야? 오른쪽 대형스피커에서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게 다임. 이럴 거면 그냥 소형스피커 앞에 두고 극만 눈앞에서 보는 게 낫지, 공연장의 웅장하고 풍부한 음향은 대체 어디 갖다 버린거야? 극 후반에는 오른쪽 귀가 피곤해서 웅웅거렸다. 진짜 그 돈 내고 그딴 음향으로 극을 관람해야 한다는 게 어이가 없다. 앞으로 꼭 관람할 뮤지컬들은 제발, 부디 블퀘에 안 올라왔음 좋겠다. 하아. 짜증나.
혹시 모를 재관람 의사가 있을까봐 1막 끝날 때까지 긴장했다. 하지만 거지같은 음향이 일단 발목을 붙들었고, 극도 강한 한 방을 통한 취향저격에 실패했다. 이 극은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그리긴 했지만 그에게 집중하지 않았고, 그래서 산만해졌고, 그래서 극의 내용적 작품성은 떨어졌다고 본다. 곱씹어서 돌이켜보면 내용전개가 납득이 되긴 하지만, 삼연 정도면 더 매끄러운 흐름을 기대해도 되는 거 아닌가?
밀크 넘버 직후에 넘치는 우유와 화려한 생활을 하며 몸을 가꾸는 엘리자벳의 모습. 그런 그에게 항복하며 설설 기는 요제프.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운, 눈부신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나는 나만의 것' 이라 노래하는 엘리자벳. 그리고 2막으로 넘어가서 군중들에게 꽃다발을 받고 '내가 춤추고 싶을 때' 춤을 추겠다며 승리를 자축하는데, 그 중간의 개연성이 왜 안보이지......... 업적이 뭐고 어떤 위치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는 건지 모르겠다. 성병에 걸린 뒤 급작스럽게 늙어버린 그에게 루케니가 계속 거울을 들이미는데, 계속 부채로 얼굴을 가리면서 그 잔상에서 도망치려 하는 엘리자벳. 그런데 왜 아들 루돌프는 엘리자벳의 '거울'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거야?? 그럼 엄마가 날 바라봐주겠지, 라고 노래하는데 분명 거울을 거부하고 기피하던 엘리자벳이 대체 어느 순간부터 아들 대신 거울만 들여다보는 캐릭터가 된 거야? 비록 정신병원에 있지만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자신 또한 거울을 통해서 내면과 마주하며 자유로워지겠다, 라는 극적 개연성이 중간에 있었는데 내가 캐치를 못한 건가???? 조엘리는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지만 한계에 부딪쳐 절망하고 무기력해지는데 자유를 향한 그 집착은 분명 '정신병'이다. 자유를 원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 엘리자벳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을 제대로 해줘야 그의 감정선이 더 풍부하게 다가올텐데, 그 개연성이 너무 부족해서 아쉽다.
극적인 연출로서 미러링 사용한 건 좋았다. 1막에서 엘리자벳이 요제프에게 했던 대사. "당신마저 절 버리신단 거군요." 똑같은 말을 2막에서 루돌프가 엘리자벳에게 한다. 그리고 배.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처음 만나 데이트 하던 강가에서 배를 탔었는데, 루돌프의 죽음 이후 그가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던 조각배를 그 강 위에 띄운다. 황실을 배에 비유하던 것도 그렇고, 극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설정들이 있는 건 참 좋았다. 거울만 좀 어떻게..
1막 끝나고 이번 삼연은 회전문을 돌지 않을 것 같아서 초연ost를 질러버렸다. 비싸긴 하지만 라이센스 뮤지컬 한국 ost는 아주 드문 케이스니까 살 수 있을 때 사야겠더라. 요새 너무 실행력이 좋아... 망해써..ㅠㅠ
원하는 그 오슷이 맞는지 확실하게 확인. md직원분이 초연 음원이라 강조해주시는데, 그러니까 사는 거라고는 차마 말 못하고 네^^ 하고 말았다ㅋㅋ cd 플레이어 새로 사야하는데 이것도 얼른 질러야지ㅠㅠ
정말정말 재미있게 관극해서 뿌듯하고 즐거웠다. 커다란 공연장 뒤쪽으론 텅텅 비어서 배우분들이 속상하겠다 싶긴 하지만, 일단 나부터도 내돈 주고 재관람할 의사가 없으니ㅠ 일단 공연장 블퀘를 탓하고 그 다음 제작사를 탓해봅시다. 뮤덕이 아닌 일반인들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법한 공연인데 가격이 세니 추천하기도 어렵고 안타깝기만 하다. 이 업계는 알면 알수록 덕질하는 사람만 감정적 재정적으로 손해보는 관행으로 뿌리 끝까지 썩어 있다는 게 빤히 보여 절망적이다. 뮤덕은 정말이지 덕질의 끝이자, 덕후계의 하층민 중 하층민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극하고 회전문 돌고 이럴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자기만족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겠지.
이쯤에서 각설하고, 넘버도 좋고 볼거리도 많은 뮤지컬이니 한 번쯤 관람하는 걸 추천해본다. 배우 잘 고르시고. 영영 가버린 게 거의 확실한 류톧은, 음원이라도 남은 것에 감사하며 머릿속으로 상상이나 해야겠다ㅠㅠ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스노트 (2015.08.13 8시) (0) | 2015.08.14 |
---|---|
아리랑 (2015.07.30 8시) (0) | 2015.08.01 |
영웅 (2015.05.06 8시) (0) | 2015.05.07 |
캣츠 (2015.04.28 8시) (0) | 2015.05.03 |
쓰루더도어 (2015.04.15 8시) (0) | 2015.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