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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in DCF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2015.08.28 5시 특공
다음주가 막공주라서 이번주에 꼭 봐야겠다 생각했다. 8시 공연을 볼까 했는데 어쩌다보니 특공..... 자첫자막을 특공으로 하게 되다니 여러모로 의미가 남는 공연이었다. 넘버가 좋다는 평과 실존인물을 소재로 삼은 특이함이 뮤지컬 사의찬미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한 번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김경수, 안유진, 이규형. 김안뀨 페어.
※스포 있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에 자첫 관객은 헤맬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동시에 내가 문학작품을 꽤 많이 보긴 했구나, 하는 묘한 감정도 들었고. 영리한 연출과 조명사용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했을 뿐, 이해가 어렵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중간의 일본어 대사에 자막이 안떠서 살짝 당황했지만, 전부 자체번역이 되기도 했고 맥락상 꼭 이해할 필요가 있는 내용은 아니더라.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넘버로 이루어진 뮤지컬이지만, 여러모로 쉽게만 다가갈 수 있는 극은 아니다.
'사내'가 정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윤심덕'과 '김우진'의 인생. 하지만 그들은 운명을 거부하고 분연히 떨쳐 벗어나려 한다. 결말은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이지만. 스토리는 충분히 멘탈이 탈탈 털릴법한 극이고, 그 내용과 어울리게 조명도 어둡고 칙칙하지만 생각보다 무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연이라서 그런지, 꽤나 잘 다듬어진 극 같았다. 뭔가 극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해서 '완벽하게' 뽑아낸 작품 느낌으로, 스토리의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오히려 재미가 없었다... 극에 몰입해서 흥미진진하게는 봤지만, 자둘은 안할 것 같다.
사이드에서 봤더니 음향이 작았다. 고음 강하게 부를 때는 선명하게 잘 들렸는데, 그냥 부를 때는 아주 집중해야 가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작아서 금방 피곤해졌다. 가까이에서 배우들 표정을 생생히 보는 건 좋지만, 역시 대극장의 음향을 포기할 수는 없다ㅠㅠ 웅웅대도 풍성하게 울리는 소리가 훨씬 좋아.....
가장 좋았던 장면은 사내와 김우진의 첫만남. 설득력 넘치는 뀨사내의 연기와 목소리에 감탄하며 몰입하게 됐다. 마지막 쯤에 세 사람이 함께 부르는 넘버도 화음이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극장에서 트리오가 뭉개짐 없이 들린 건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뮤덕으로서 참으로 비극적인 현실이네.......ㅠ 안유진 씨의 카랑카랑하고 깔끔한 목소리가 매력적이었고, 김경수 씨의 소심하지만 강단 있는 연기도 인상 깊었다. 이규형 씨의 대사처리와 노래도 훌륭했는데, 마지막 씬에서 결말을 읽으며 남자/여자 목소리를 분리하는 디테일이 좋았다. 그런데 이 극이 원래 이렇게 담배를 주구장창 피는 건가....?? 간접흡연 너무 심해....ㅠ 공연 통틀어서 한 갑은 사용된 것 같았다. 물론 그 시대상에서 비쩍 마른 지식인이 주구장창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이미지는 참으로 매혹적이긴 하지만, 배우들 건강도 조금 염려되기도 하고 끝없이 피어오르는 연기가 계속 신경 쓰였다.
공연 시작 10분 전 안내와 공연 직전 안내를 배우가 직접 하는 건가....? 아주 음산하게 내리까는 목소리가, 마치 죽음의 강을 건너는 배로 이끄는 듯해서 서늘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정말 '사(死)'를 찬미해야 할 것 같은 느낌. 자신이 정한 시나리오 대로 재능 있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사신 같은 존재인 '사내' 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내는 누군가의 인생에 억지로 운명을 덧씌우며 유도하는 일을 하면서 대체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새삼 궁금하다. 결국 자신이 정한 길에서 벗어난 윤심덕과 김우진은 그에게 어떤 존재로 남았을까. 두 사람이 정말로 이태리에 가서 잘 살았을까, 라는 의문보다는, 사내가 그 이후로도 또다시 새로운 인형을 찾아서 '극'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걸 계속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더 강하게 남는다. 사내에게 강하게 반발한 김우진과 안심덕이었지만, 인간이면서 신의 역할을 하려드는 사내가 더 인상 깊게 남았나보다.
덕질하기에는 정말 좋은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선권도 있고, 오슷도 있고, 이런저런 혜택도 많고. 심지어는 실황 영상을 cd로 구워서 주기도 하더라. 완전 신세계였다. 실황이라니....ㅠㅠ 부럽다. 흡.
이왕 뮤덕질을 하게 된 이상 다작러가 되고 싶은데, 회전문 도는 극이 있는 한 쉽지만은 않은 목표 같다. 연극은 아직까지 엄두도 못내고 있고. 게다가 뭔가에 혹해서 회전문 돌고 싶어지는 극은 죄다 대극장.......... 대학로 주변 중소극장 극들은 틈날 때마다 의식적으로라도 챙겨봐야겠다. 그나마 중소극에는 잘 안 치이는 게 어디야^_ㅠ... 이게 정말로 위안할 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ㅎ 이번 여름은 휴가 대신 관극 덕질로 알차게 보냈다. 나중에 2015년 여름을 돌이켜보면 참 많은 극들이 스쳐지나갈 것 같다. 이번 가을 겨울은 또 어떤 극으로 채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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