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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in LG아트센터 U+스테이지, 2024.12.28 7시
윤나무 게르트 비즐러, 정승길 게오르그 드라이만, 최희서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트, 김정호 브루노 햄프 외, 이호철 그루비츠 외, 박성민 우도 외.
연극 관극 후 바로 영화를 봤더니 장면들이 더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 위에서 다양한 장소들을 표현하는 연출의 중요성도 새삼 느꼈고. 영화와 약간씩 다른 부분이 보이는 것도 재밌다. 예를 들면 드라이만이 받은 선물이 영화에서는 악보였는데 연극에서는 LP판이다. 피아노를 직접 치는 장면을 넣을 수 있는 영화와 다르게, 연극에서는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외에도 1인 다역을 위해 소품이나 의상뿐만 아니라, 걸음걸이와 말투, 목소리 등을 바꿔내는 방식이 유려해서 이야기에 몰입이 잘 됐다.
비즐러가 변화하는 미묘한 찰나는 확실히 영화가 더 직관적이다. 윤나무 배우의 밀도 높은 연기가 없었다면 서사가 이렇게 깊이감 있게 느껴지지 못했으리라. 특히 마지막 서점 장면의 그 눈빛, 얼굴 근육의 떨림, 뺨과 입술 끝의 전율이 강렬하게 일렁인다. 드라이만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며 극을 지어내는 장면에서 휙휙 바뀌는 인물 연기를 보며 쇼맨이 떠오른다. 믿보배. 앞으로도 좋은 극에서 자주 만날 수 있길.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타인을 억압하고 괴롭히던 이가 평생 굳건히 믿어 온 신념을 버리는 것이 가능한가. 타인에게 감화되고 애정을 쏟게 되어 스스로의 행동을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는가. 그런 그를, 용서할 수 있는가. 그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렇게 사회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실시간으로 악행과 음모가 드러나고 있는 이 시국이기에, 비즐러라는 타인의 삶에 조금 더 거리를 두게 된다. 유의미한 변화를 근거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 감형받아도 괜찮은 것인가.
역시 좋은 연극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올해의 마지막 관극은 이렇게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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