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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in 예스24스테이지 3관, 2024.10.11 8시
곽동연 에스터, 박정복 밸, 정재원 무대조감독. 고기기 자첫자막.
올해 첫 관극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였기 때문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라는 극 제목을 보자마자 반드시 관극하리라는 결심을 했더랬다. 원래 1차 오픈 때 자리를 잡아 뒀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극이 늦어진 편이다. 오랜만에 보는 고정페어여서 안정감 있는 호흡을 볼 수 있었다. 간만에 앉은 중블 1열에서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지켜보고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즐거웠고. 자리가 너무 가까운 나머지, 낡은 의상을 털 때 날리는 먼지와 열렬한 대사 처리로 튀는 배우들의 침까지 4D로 체험했다. 역시 자리가 좋아야 관극에 몰입이 잘 된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극이다. 하지만 그 극을 이미 보았기에 더 몰입이 되고 더 공감이 되는 지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신구 배우의 에스트라공과 박건형 배우의 블라디미르의 녹음된 목소리가 무대의 위편, 그러니까 극중극의 무대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에 내 눈 앞의 공간이 백스테이지라는 점이 확 와닿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중 어느 즈음의 장면이었는지 새록새록 기억이 떠오르고, 아무도 이 극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대사에 격하게 공감도 하다 보니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나름대로 해석을 얹어서 관극 후기를 썼었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는 극은 아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후기
가뜩이나 극소수만 대중과 자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 업계에서, 그저그런 주연이나 아주 작은 분량만 있는 조연도 아니고 무대 밖에서 '비상시를 대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일'인 언더스터디는 소외와 배제, 자괴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으리라. 꽤 오래 이 일을 해 온 선배 에스터는 이 고통을 견디고 인내해야 언젠가 빛을 보리라고 믿는다. 반면 갓 일을 시작한 신참 밸은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인한 무력감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관성에 적응하고 길들여진 에스터는 '기다림'에, 이 찰나들이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밸은 '고도'에 집중하는 것이다. 막막한 미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맞닥뜨리고 느끼는 이들의 고민과 절망이 아프게 심장을 찔러온다.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볼 수 있으리라 믿으며 견디고 견디고 또 견뎌낼 것인가, 당장 이 어둡고 침침한 곳을 박차고 나가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
언더스터디라는 역할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여러 작품의 총막 무대 인사에서 주연 배우들이 언더스터디 배우들을 챙기며 감사를 전하는 모습도 봤다. 실제로 언더스터디가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아주 드물지만 들었었고. 그러나, 모든 역할을 정확하게 연습해둔 상태로 매일같이 출근하여 줄곧 무대 뒤에 있어야 하는 심정이 어떠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것은 2년 전의 연극 <언더스터디> 때문이었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관객의 환호를 받기도 어렵고 스스로의 자긍심을 채우기도 힘든 역할. 어떻게보면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살면서 누군가의 언더스터디이자 조연으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으니 비단 배우라는 직업에서만 행할 수 있는 고민은 아니리라. 우리는 그렇게나 중요하다는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을 대신하길 또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장난처럼 금기를 어기며 '맥베스'를 불러대던 이들에게 급작스럽게 닥쳐온 차가운 결말이 참 가혹했다. 이 역시 현실이겠지. 정말이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이 아닌가. 클라이막스의 갈등에 깊이 공감하다가 맞이한 충격적인 상황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들었다. 복밸의 울망거리는 눈망울과 곽에스터의 당혹에서 결의로 이어지는 눈빛이 더더욱 감정을 끌어올렸고. 무대에서 자주 만나진 못한 배우들이지만, 자연스럽고 완급 조절이 훌륭한 연기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같은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상상이 잘 안 될 정도랄까.
관극을 하며 몇 가지 의문이랄까 반박이 들었다. "아무도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모른다"는 말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대들은 계약을 하지 않았을까요? 무급인지 유급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까 언더스터디로 매일 출근을 하시는 걸텐데, 그걸 누구도 모를 리가요. 소속사 계약했다고 뛰쳐나가면 위약금은 물지 않으시나요. 그리고 아무리 백스테이지라도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시면 무대 위는 물론이고 객석까지도 들릴 거 같은데 정말 괜찮은 건가요. 캐스팅보드에도 "크게 말하면 객석에 들립니다 대화는 조용히!" 라고 써놨으면서! 조명 지시 내리는 조감독이 배우들 대사를 이렇게 큰 목소리로 다 따라 하면 정신없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가뜩이나 짧은 인터미션 동안 무대조감독을 이렇게 오래 붙들고 있어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뭐 이런 뻘한 생각들이 중간중간 들더라.
<고도를 기다리며> 극 중에서 에스트라공의 신발은 중요한 소품이다. 그래서 구두에 집착하다 못해 과민반응하며 혼자 장황한 소설을 쓰는 에스터의 신경질적인 면모가 잘 이해됐다. 익숙한 극작가의 이름이나 <햄릿> 등 다른 작품의 대사가 나오는 것도 재미있었다. 특히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 하는 에스터의 말에 지뢰를 거하게 밟았다. 그나저나 극 초반과 중반에 곽에스터가 베토벤 흉상 들고 역성호를 긋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그리스정교 디테일이라는 가설을 세웠으나, 극 중에서 가톨릭 신자라니 무신론자니 하는 대사가 나와서 기각했다. 오른쪽 어깨 먼저, 그다음에 왼쪽 어깨를 짚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그래서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GODOT)는 누구일까. 아니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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