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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테노레

in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2024.01.10 7시반

 

 

박은태 윤이선, 박지연 서진연, 전재홍 이수한, 아드리아나 토메우 베커 여사, 이하 원캐. 최호중 최철.  

 

2024년 첫 뮤지컬 관극. 오디컴퍼니 창작뮤지컬 초연이라서 당연히 챙겨보려다가 음악감독 이름 석자에 불매를 다짐했더랬다. 그걸 홀랑 까먹고는 통신사 할인만 보고 예매를 하고 관극을 하러 오다니. 심지어 커튼콜 때 기억해 냈다. 멀리서 봐도 음감이 누군지 알아챌 정도의 덕후력과, 애매한 탈덕의 기로에 서는 바람에 늘어난 망각력이 한탄스럽다. 웃고 울며 재미나게 관극 해놓고 마지막에 기분 다 망쳐버림. 이게 다 오디 때문이다.

 

 

스토리 구성이나 무대 연출,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수작이었다. 간만에 잘 만든 창작뮤지컬을 만나니 감격스러울 정도로. 대극장 2층을 정말 오랜만에 앉아봤는데, 역시 장단이 있었다. 무대 전체가 보여서 극을 전반적으로 관망할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배우의 표정이나 디테일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 무대 바닥이 잘 보여서 회전 무대를 사용하리란 걸 짐작했는데, 막상 2막에서 무대가 돌아갈 때의 시각적 임팩트가 약했다. 1층 앞열에서 다시 보고 싶단 생각을 잠시 했을 정도였으나, 컷콜에서의 깨달음 덕분에 마음을 접었다.

 

주인공은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 일 테노레 윤이선이다. 하지만 서진연 캐릭터가 몹시나 중하고 매력적이다. 찰떡같이 인물을 소화하는 젼진연의 시원시원한 음색과 정확한 딕션과 맛깔나는 연기 덕분에 관극 내내 행복했다. 2막 멜빵바지 입고 나오는 장면에서 <모래시계>가 문득 연상됐는데, 나중에 혜린이 해주면 좋겠다. 다채로운 앙상블의 활용도 좋았다. 익숙한 얼굴들도 꽤나 보였고.

 

 

"작고 완벽한 이 세상

여기 우리가 만든 세상

저 문 바깥의 그 어떤 위험도

이곳엔 존재하지 않아"

 

마음에 든 가사들이 꽤 있긴 했지만, 가장 깊숙하게 다가온 건 역시 이 부분이다. 바깥과 단절된 공간에 만들어지는 특별한 세상. 무대 위와 아래의 모든 이들이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인정하여 함께 만들어내는 이 눈부심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통스럽고 잔인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새로운 세상 속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공연 예술의 가장 큰 매력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작고, 완벽한, 아름다운 세상.

 

미래를 꿈꾸는 청년들 개개인의 삶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낸 작품이다. 넘버가 다소 극악하여 재연이 금방 돌아올지 잘 모르겠다. 극이 궁금하다면 늦지 않게 만나고 오는 것을 추천하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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