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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보이즈

in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2022.10.15 2시

 

 

 

 

박은석 어윈, 정상훈 헥터, 윤승우 데이킨, 김리현 포스너, 강찬 스크립스, 구준모 럿지, 이하 원캐. 이지현 린톳, 견민성 교장, 이예준 락우드, 홍준기 악타, 김원중 팀스, 김준식 크라우더. 히보 자첫자막.

 

 

영국의 국립 고등학교를 잠시 방문하고 나왔더니 대한민국이 먹통이 되어 있었다. 주사용 메신저의 부재는 다소의 불편함만을 초래했지만, 며칠간 빈 페이지만 뜨는 티스토리의 오류는 분노와 걱정을 끌어안게 만들었다. 텍스트를 긁어서 파일로 백업을 하고는 있지만, 작년인가부터는 그조차 까먹고 있었기에 초조했다. 다행히 복구는 되었으나, 또다시 본질적인 고민을 마주하고 있다. 블로그 옮겨야 하나. 아무튼 이 모든 상황으로 인해 후기를 쓰지 못한 극의 기억은 점점 날아갔다. 은어윈만 빼고.

 

 

히보라는 극의 존재는 연뮤덕이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특히 5연 때는 은킨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꼭 챙겨봐야지 싶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자첫은 미뤄졌다. 돌아온 6연에서는 은킨이 아니라 은어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핫했고, 지금이 아니면 영영 보지 못할 듯하여 드디어 보고 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데이킨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로 은어윈이 너무나도 취향이었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설렐 정도로 말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뒤로는, 철없고 치기 어린 질풍노도의 청소년의 성장 스토리에 크게 마음이 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학원물은 점점 취향 범위를 벗어나게 되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히보 역시 싸와 마찬가지로 극 자체가 취향일 거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남학생만 득시글한 남고라니, 아무리 연출이 힘을 내더라도 불편한 부분이 없지 않을 게 분명했고. 무덤덤하게 보고 있던 극 초반에서 유일하게 안식처가 되어준 지현린톳에 이어, 풀정장을 입고 다소 어색한 태도로 면접을 보러 온 은윈을 보자마자 절감했다. 아 맞다 나 이런 거 좋아했지.

 

 

 

 

어린 티를 채 다 벗지는 못했지만 주체적인 성인, 성숙하지만 내면에 불완전성이 있는 인간, 하지만 그 위태로움을 잘 숨길 줄 아는, 어른.

 

 

건들거리며 멋대로 날뛰는 아이들과의 첫 수업에서 정장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스듬하게 책상에 기대 선 채 침묵과 눈짓만으로 행하는 기선제압. 쓰레기라며 아이들의 레포트를 허공에 휙휙 던지는 오만함과 틀에 갇힌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선동성. 유대인인 포스너가 점수를 매길 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고통스럽게 반복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문장에 "득점" 을 선언하는 권위적인 말투. 그럼에도 그 모든 행동 이면에는 그 나잇대만의 경험을 해본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유대와 공감과 연민이 존재하기에 짙어지는 관계성.

 

 

학생을 사랑하게 된 어른은 그 마음을 감춰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상대를 밀어낸다. 비록 속으로는 앓을지언정 결코 먼저 표현하지 않는다. 곤란하거나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할 때마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엄지와 중지를 안경테의 양 끝에 대고 안경을 고쳐 쓰는 은윈의 디테일이 적합한 순간마다 활용된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진지하게 받아치며 상대에게 휘말리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2막 후반부 데이킨과의 독대는 섹슈얼한 텐션이 아니라 바로 관계의 긴장을 풀고 조이는 은윈의 능숙함 덕분에 쫀득했다. 말려드는가 싶더라도 솜씨 좋게 빠져나오는 그 어른스러움이 몹시도 취향이었다. 특히 퍼스널 스페이스 없이 이미 가깝게 얼굴을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고개를 살짝 틀더니 "난 안경은 마지막에 벗어" 라고 속삭이는 은어윈의 분위기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한 인물에게 푹 빠져서 이렇게 길게 후기 쓰는 건 오랜만이라고 적는 와중에 은케니가 떠올랐다. 올 가을은 은배우님들이 설렘과 벅참을 선사해주네. 비록 은킨을 만나지 못했지만, 은킨을 지나왔기에 가능한 은어윈을 만날 수 있어 무척 행복하다. 기회만 되면 은윈만 한 번 더 보고 싶어. 자연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거나 앉거나 일어날 때마다 넥타이를 정리하는 작은 동작들마저 취향이었어. 네이비 정장을 풀착장한 옷태도 그냥 와이셔츠 차림의 뒷태도 아른거린다. 일단 아트 은마크는 꼭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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