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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in 예스24스테이지 1관, 2022.10.22 5시반
최재웅 세르주, 박은석 마크, 박정복 이반.
초연 웅범철 페어를 워낙 재미있게 봐서 다시 보게 된다면 역시 웅범을 택하겠다고 생각한 극인데, 히보 은어윈에 치이는 바람에 은마크 회차를 열심히 산책했다. 그러다 혼자 동동 떠있는 중블 H열 왼쪽을 냉큼 주웠고, 일주일 만에 무대에서 다시 만났다. 마크의 동선이 무대 왼쪽에 많은 덕분에 은마크 회색 정장과 까만 와이셔츠 착장을 100분 내내 맘껏 볼 수 있어서 몹시 만족스러웠다.
초연 당시의 범마크는 어그로를 정말 심하게 끌어서, 마크의 사상에 좀 더 가까운 관객마저 세르주의 복장 터지는 마음을 격하게 공감하도록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범마크가 극렬하게 세르주의 허영을 비난하고 비웃는 만큼, 웅르주 역시 지지 않고 강하게 그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힐난했다. 그래서 그 사이의 철이반은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어 너덜너덜 해지다 못해 온몸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4년 전의 관극이니 당연히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 웅범철 페어의 이 이미지로 극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날의 아트가 꽤나 신선했다.
일단 은마크는 귀엽다. 하얗기만 한 판떼기를 5억씩이나 주고 산 세르주가 보이지도 않는 색깔을 읊으며 모더니즘에 대해 자신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을 답답해하면서도, 비언어적인 몸짓과 표정을 전부 포괄한 비아냥의 수위가 범마크보다는 덜 잔인했다. 범마크가 사람을 빡치게 했다면 은마크는 짜증나게 얄밉달까. 그래서인지 웅르주 역시 범마크와 페어일 때보다는 훨씬 어린 느낌이었다. 소파에 앉아있다가 미끄러지듯 바닥에 내려오며 발을 어린애처럼 쾅쾅 구르는 웅르주라니! 얄밉게 소파에 폭 엎어진 채 다리를 휘적이며 세네카를 읽는 척하는 은마크의 방실대는 표정을 보고 귀엽다고 탄식하는 웅르주 역시 귀여웠다. 웅범 페어는 그래도 개싸움 직전까지는 위선을 떠는 어른미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은웅 페어는 가식조차 얄팍해서 아웅다웅 싸우는 게 귀엽기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순진한 복이반이 중심을 확 잡아주더라. 으이구 내가 봐준다, 하며 그동안 은마크와 웅르주가 서로 못이기는 척 유야무야 잘 지내왔던 건, 눈치는 없지만 의리가 있는 복이반이 사이에 있기 때문이었다. 철이반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지만 범마크의 광역어그로가 너무 심하게 먹혀서 안쓰러웠다고 기억한다. 그렇지만 복이반은 아메바라는 둥의 은마크와 웅르주의 무심한 말실수에 상처를 받을 지언정 그들을 진심으로 떠날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두사람 사이에서 눈이 풀린 채 술을 들이키는 복이반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존쎄의 향기가 풀풀 풍겼달까. 이쯤되니 웅범 사이의 복이반이 조금 궁금해지기도 하네. 1인다역을 하며 지각한 이유를 구구절절 풀어내는 장면은, 복이반의 캐릭터 구축과 목소리 변화는 물론이고 호흡과 딕션까지 완벽해서 짜릿했다. 정복켄 레드 다시 보고 싶었는데 왜 안 돌아왔어요.
개싸움도 재미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애드립은 배우들 현웃 터진 장면. 이반의 한쪽 손은 마크가 다른 쪽은 세르주가 잡아야 했을 텐데, 은마크가 복이반의 양쪽 손을 다 붙잡아 제 쪽으로 몸을 돌려버린 바람에 웅르주가 복이반 등을 쓰다듬다가 또 일종의 개싸움이 되었다. 은마크와 복이반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와중에 웅르주만 눈을 부리부리 뜬 채 무표정으로 객석을 노려보길래 내적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웅르주 본캐가 갑자기 "슬픈 생각을 해 이 새끼들아!" 라고 버럭 소리를 쳐서 극장 전체가 뒤집어짐ㅋㅋ 너무 웃겨서 객석 박수가 두 번이나 나왔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장면이었다. 결국 정신 차린 복이반이 대사 이어나가는 걸 보고 역시 배우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시즌 아트에는 시니어 페어가 새로 생겼다. 후기들을 읽어보니 그 페어에 맞춘 대사 및 동선 변화가 좀 있는 것 같더라. 그러니 다음 시즌에는 여배 페어도 달라! 지적 허영 부리는 여성들의 우정과 개싸움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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