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일랜더
in 우란2경, 2022.08.18 8시
유주혜 아란 외, 이예은 에일리 외.
다작러는 키난섬 주민도 되어보기로 했다. 로비부터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도 소리가 가득해서 마음이 일렁거렸다. 우란에서 올리는 작품답게 독특하고 눈부시고 매력적인 극이었다. 특히 루프스테이션이라는 문물을 통해 다채롭고 풍성하게 "소리"를 활용하는 점이 가장 신선하고 감탄스러웠다. 두 배우의 목소리, 숨소리, 발 구르는 소리, 박수 소리, 탄성 등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반복하여 화음을 쌓고 주변음을 만들고 효과음을 노린다. 학창 시절 교실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화음 놀이가 떠올라서 괜히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모래 위에 그어진 2인극의 한계선을 파도 하나로 쓱 지워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포근했다.
기기 결함과 같은 이상이 생기면 극 자체가 뒤흔들릴 연출이기에 음향팀이 공연 내내 긴장하고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의 동작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팀 역시 한껏 날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을까. 몽환적인 아름다움은 쉽게 완성해내기 어렵다는 감상도 따라왔다. 역할명에서 알 수 있듯, 두 명의 배우가 주인공인 아란과 에일리 외의 다양한 인물들도 연기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키난 주민들을 표현하기 위해 동작과 표정과 목소리에 변화를 주는 배우들의 연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특히 유주혜 배우 할미와 아란의 극명한 대비가 눈부셔서, 그의 눈단어를 보지 못한 것이 새삼스레 아쉬워질 정도였다.
"흘러 흘러 바다로 간 강물은
다시 돌고 돌아 뭍으로 돌아오네"
전설은 땅에서 솟아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며 "인간들이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다는 할미의 통찰처럼, 키난섬의 전설은 세타섬의 역사다. 천둥이 쾅! 울려 두 개로 갈라져버린 섬의 이야기가 반복될 때마다 헤드윅이 떠올랐다. 이어져 있었으나 분리되었고, 그럼에도 다시 하나로 돌아오는 순환의 고리.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고래들이 있는 한, 섬들이 있는 한, 키난섬이자 세타섬인 우리들이 있는 한, 언젠가는 돌아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사과가 변화의 시작임을 아는 소녀와 대화가 이해의 발판임을 아는 소녀는 풍랑에 흔들릴지언정 휩쓸리지는 않으리라.
원형무대의 바닥을 가득 채우는 조명과 영상이 벅차게 눈부셨고, 치밀하게 짜인 동선에 따라 그 무대를 누비며 다양한 각도로 섬과 바다를 그려내는 배우들의 존재가 더없이 아름다웠다. 자리에 따라 볼 수 있는 배우들의 역할과 표정이 몹시 달라질 수밖에 없는 무대임에도, 전략적으로 배우의 위치를 배정한 연출 덕분에 어느 장면에서도 소외받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두 배우가 여러 명의 키난 주민들로 휙휙 바뀌는 장면에서는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지 않아서 많이 답답했다. 전개와 흐름 상 어떤 사람이고 어떤 말을 했는지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모든 극이 그러하듯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관객의 집중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집중이 떨어지면 감동은 반감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고.
"파도가 너를 안내할거야
햇빛이 너를 비춰줄거야
길을 잃어도 어둔 밤 와도
아침은 올 거야"
다분히 특색 있고 실험적인 우란의 작품들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비록 온전히 취향에 쏙 들어오는 작품은 아직 만나지 못했음에도, 새로운 연출과 기법과 기술을 선보이는 우란의 시도를 항상 응원할 수밖에 없다. 다음 작품 역시 설렘과 감탄을 끌어내 주길 간절히 바라며.
'공연예술 > Musi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편제 (2022.09.15 7시반) (1) | 2022.09.16 |
---|---|
미세스 다웃파이어 (2022.09.09 7시) (0) | 2022.09.10 |
전설의 리틀 농구단 (2022.08.12 8시) (0) | 2022.08.13 |
아이다 (2022.08.06 7시) (0) | 2022.08.07 |
유진과 유진 (2022.07.26 8시) (0) | 2022.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