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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in 대학로 자유극장, 2022.07.26 8시
이아진 큰유진, 송영미 작은유진. 투유진 자첫.
이런 극이야말로 대학로에 꾸준히 올라오고 계속해서 회자되어야만 하는 갓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면의 구성과 이야기의 짜임새와 감정의 흐름과 호흡이 깔끔하게 균형 잡혀있다. 덮고 지우며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과거의 상흔이 어떠한 형태로 현재의 마음과 삶을 짓이기는지, 동일한 사건을 거쳐 다르게 걸어가는 유진이들을 통해 그려낸다. 이 극에는 운 나쁘게 맞닥뜨려야 했던 고통을 전시하는 가학성이 부재한다. 대신 그로 인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러 피해자들의 아픔과 분노와 괴로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친개한테 물린 게 왜 우리 잘못이야!"
내 잘못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머리로는 뚜렷이 인지하고 있지만, 피해자를 앞세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의 폭력적인 언어가 자꾸만 발 밑을 무너뜨린다. 피를 뚝뚝 흘리게 만든 상처는 아물지언정 결코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에, 그 흔적을 헤짚는 찰나들은 끝내 일상마저 잠식하기 마련이다. 무감각한 눈동자들 앞에서 하얗게 질린 채 외줄 타기를 하고, 차라리 환상 속 괴물이 나았노라 비명처럼 외치며, 제 모든 건 가짜일 뿐이라 절망한다. 온 감각을 뒤흔드는 재난과 같은 유진이들의 감정적 나락을, 이 극은 적재적소의 음악과 가사와 영상과 조명 연출을 통해 객석의 관객에게 공유한다.
대극장에서 보고 반했던 두 배우로 맞춰서 관극일을 잡았고, 100분 내내 벅찬 마음을 거둘 길이 없었다. 사랑스럽고 톡톡 튀는 큰유진과 짙은 우중충함을 방어막처럼 둘러싼 작은유진의 결이 너무도 달라서 애틋했고, 그럼에도 서로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끌어안을 수 있게 하는 그들의 연대가 다정했다. 발랄하게 그 시절 그 감성을 끌어내고 강렬하게 무대를 휘어잡는 춤을 추다가, 곧장 나락으로 뚝 떨어지는 극단적인 감정 변주가 지독히 유려하여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맑고 투명한 아진 배우와 밀도 높은 영미 배우라는 엄마오리 페어가 생겨버렸다. 맏딸 특유의 억압된 감각 속에서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온갖 부정적 감정에 시시각각 눈빛이 돌아버리는 영미유진의 표정을 못 본 사람이 제발 없기를!
"발 밑이 자꾸만 무너져내려
발 밑이 자꾸만 사라져버려"
잊고 있었던 과거에 발목을 붙잡혀 억울하고 화나고 비참한 마음을 펑 터뜨리는 큰유진의 오열에 가슴이 미어졌다. 다시 마주한 과거에 스스로의 몸마저 끔찍하다 여기며 분하고 답답하고 절망적인 감정에 억눌린 채 몸부림치는 작은유진의 얼굴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잘못 없이 당한 치부를 지닌 너는 "그런 애" 라고 규정짓는 폭력에 사위가 무너지고, 몹쓸 짓을 당한 너의 흉은 감추고 네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책임 전가에 일순 발 밑이 사라진다. 대비할 수 없는 2차 가해 앞에서 피해자들은 무력해진다.
밝고 가벼운 아이라는 방어기제를 둘러싼 큰유진이 낮고 무감정한 목소리로 벽을 세우는 작은유진의 엄마로 분하고,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던 작은유진이 목소리도 크고 잔소리도 많지만 계속해서 사랑한다 말해주는 큰유진의 엄마를 연기하는 간극이 작품을 한층 복합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는 비단 유진이들만이 아니라는 점을 짚으면서도, 아이를 지키지 못한 어른의 부족함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엄마들도 어리고 모자랐지만, 그것이 아이들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한 잘못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기에.
"그렇게 엄마를 이해해버리면, 그때의 내가 괴로웠던 게 전부 내 잘못처럼 느껴질까봐 두려워."
엄마를 납득하기 위해 착한 아이, 공부 잘하는 학생, 말 잘 듣는 맏딸이라는 틀에 꾸역꾸역 맞춰 살아온 어린 유진은 괴롭고 외롭고 아팠다. 그즈음 엄마의 나이가 된 유진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음에 불편하고 슬프고 고독하다.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가해자가 마냥 미워하고 마음껏 원망할 수 있는 이가 아니라는 것이 피해자 스스로를 더욱 갉아먹게 한다. 하지만 유진은 유진이 있었기에 안다. 나를 위해 손을 뻗는 건 나뿐이라는 것을. 과거의 나를 보듬고 위로하여 치유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고 고스란히 끌어안으며, 생채기는 흉터로 남아 옹이가 된다.
"가끔 괜찮지 않아도
또 괜찮아질 거야"
나무에 새겨진 생채기가 다 같은 옹이가 되는 건 아니다. 상흔의 깊이에 따라, 나무 자체의 크기에 따라, 자리 잡고 있는 위치에 따라, 옹이는 각기 다른 모양과 형태로 자리를 잡고 나무의 일부가 된다. 때로 괜찮지 않은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이미 만들어낸 옹이가 다시 괜찮아질 수 있노라는 경험이자 증거가 되어 주리라. 그렇게 나무는 자라고 변한다. 세상 모든 유진이들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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