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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
in 광림아트센터 bbch홀, 2022.06.16 8시
최정원 다이애나, 이건명 댄, 노윤 게이브, 이아진 나탈리, 김현진 헨리, 박인배 의사.
드디어 넥이 돌아왔다. 무려 7년 만에. 이야기 자체의 강렬함에 사적인 경험까지 더해져 참 쉽지 않은 극이었고, 그래서 더 생생하게 심장에 남아있던 작품이다. 그저 또 다른 날을 살아가다 문득 넘버 한 소절을 흥얼대며 힘을 내기도 했고,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이들을 떠올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상처를 문지르며 흐르지 않는 핏자국을 애써 문질러 지우기도 했다. 일견 극단적이지만 실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모습이 아프게 상흔을 헤집는데도, 그 일상성이 동질의 고통을 공유하는 카타르시스로 연결된다. "좋아질 거야 다" 라고 과할 정도로 밝게 반복하는 자기 최면보다, "살아있어야 행복해" 라는 담담한 말이 한층 두텁고 현실적인 위로를 건넨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트리거 요소가 많아서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는 극이다. 하지만 경쾌한 멜로디와 다양한 악기, 다채로운 조명과 널찍한 3층 구조물을 시원시원하게 사용하는 동선이 몹시 매력적이다. 우울증을 다룬다고 하여 우울하기만 했다면, 이 작품을 '모두가 기다려온 완벽한 뮤지컬'이라 칭할 리가 없지 않은가. 트리거 요소만 사전에 인지하고 간다면 충분히 즐겁고 벅차게 관극 할 수 있는 극이다. 제발 넥 좀 봐주세요. 이제 가면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촘촘하고 완전하게 구성된 이 뮤지컬을 만나지 않는다는 건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라구요. 행복만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넥을 봐야 행복을, 평범의 소중함을,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요!
"행복만을 위해 사는 건 아니지만
살아있어야 행복해"
이번 시즌에 대한 간단한 후기. 치킨홀로 옮기고 음향 최악이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 마음을 비웠는데, 각오했던 것보다는 잘 들렸다. 가사를 이미 알고 있는 덕분이긴 하겠지만, 기본 밸런스는 잡은 듯하다. 물론 음향이 좋다고 하는 건 절대 아니며, 초반 다이애나 볼륨을 키우는 등의 추가적인 조정이 더 필요할 것 같다. OP석 시야도 목이 조금 아픈 것 빼고는 생각보다 괜찮았으나, 이 작품은 무대 전체적인 조명을 반드시 봐야 하므로 자첫이라면 후진을 강하게 권한다. 마지막 티켓팅 참전 예정인데 중블 1-3열 정중앙으로 잡아볼 계획이다. 경력직 다이앤과 댄 다시 만나러 가야지. (15년 자둘 후기)
정원다이앤은 워낙 본체가 건강미 넘치시는지라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는데, 멀쩡한 외양이 위태롭고 불안한 정신 상태를 더욱 극명하게 부각해서 신선했다. 신경질적이기보다는 불안정한 모습이 강한 다이애나였다. 굳건하게 땅에 발을 고정하고 있는 건댄은 하늘을 부유하는 다이앤의 발목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는데, 다정하기에 더 갑갑한 '집'이자 '현실' 그 자체여서 다이앤의 증상 악화가 이해가 될 정도였다. 2015년 관극 당시에는 댄에게 엄청나게 이입했었는데, 건댄의 노선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나 역시 많이 변했기 때문인지, 연민보다 부담이 앞섰다. 맹목적이기까지 한 다이앤을 향한 사랑과 집착 같은 안정 추구는 은은한 광기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부드럽지만 완고한 얼굴이 지독한 고통으로 일그러지던 두어 번의 찰나는, 아득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다이애나의 곁에서 같이 곪아가고 있는 댄의 아득한 절망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건댄의 그 표정이 심장에 박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만 같다.
싸에서 처음 만나 노래 믿보배가 된 노윤게이브의 시원시원한 음색이 넘버와 잘 어울렸다. 나탈리가 평생 끌어안고 살아온 열등감의 현신으로서 형형하게 빛내는 눈빛과, 다이앤의 꿈이자 공포이자 불꽃이자 그림자로서 다양하게 변하는 표정들이 게이브라는 인물을 깔끔하게 그려냈다. 다만 크고 극단적인 동작은 위압적으로 잘 표현했는데, 봉을 잡은 채 부드럽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동작은 살짝 아쉬운 면이 있었다. 아진나탈리도 일부러 맞춰 본 건데 정말 좋았다! 요새 다작하고 계시던데 이대로 필모 알차게 잘 쌓아가길 바라는 배우! 현진헨리는 무난했고, 오랜만에 만난 까라스코 인배의사도 대사 하나 씹은 거 말고는 괜찮았다. 그간 세대교체가 많이 되었음을 넥을 통해 절감했다. 7년 전에 재게와 켱헨리를 봤는데 말이죠.
"평범 같은 건 안 바래
그건 너무 멀어
그 주변 어딘가면 다 괜찮아"
넥은 묻는다. 행복의 정의란 무엇인지, 평범함이 어떤 형태인가를. 정답이 없는 질문 앞에서 저마다의 답을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넥은 말한다. 누구나 각자의 무게로 견뎌내고 있다고. 그러니 고통을 마주하고 인정할 용기를,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끝내 먼동을 마주할 의지를, 빛을 향해 손을 뻗을 힘을 내라고. 평범 주변 그 어딘가에 반드시 그대의 행복이 있노라고.
나에겐 넥을 다시 만난 이 순간이 또 하나의 빛이자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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