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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in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2022.07.15 7시반
정택운 서인우, 고은영 인태희, 정재환 임현빈, 지수연 어혜주, 박근식 나대근, 장재웅 윤기석.
워낙 유명한 창작뮤지컬이어서 당연히 관극 예정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당일에 택인우 회차를 예매하고 자첫자막을 하게 됐다. 홍아센의 모든 자리가 공평하게 악몽인건 이제 말하기도 입아픈 수준이니 아예 사블 벽붙 자리를 할인 먹여 잡았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음량이 일괄적으로 작으니 오히려 가사가 전부 들리는 기적이! 약간 등짝미가 있긴 했으나 무대 양쪽을 고르게 쓰는 편인 택인우 얼굴은 꽤 자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미모와 피지컬이 워낙 내 취향 착붙인 분이신지라 눈이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빅스의 레오는 좋아했으나 그의 뮤지컬은 거의 챙겨보지 않았었다. 데뷔작이기에 본 <풀하우스>와 신엘리 막공이어서 본 택토드가 다소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도 있고, 대극장을 엠개 작품으로 시작하여 내리 그 제작사와 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극장 데뷔작이자 류배우님과 함께 했던 마타 초연 택르망도 극을 불매하느라 못 봤고, 역시 류배우님과 함께 무대에 선 몬테 택버트도 회차가 적어서 놓쳤다. 더라키와 마리앙은 류배우님도 없는 엠개극 굳이 팔아주고 싶지 않아서 패스했고. 그렇게 뮤지컬 하는 정택운을 잊고 지냈는데, 복귀작이 프랑켄이라니! 앙리 전캐를 찍어야 한다는 욕망을 핑계 삼아 관극을 했고, 단단해진 발성과 톤과 연기에 처음으로 만족했다.
택앙리를 믿고 택인우를 선택했고,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그의 뮤기작이 궁금해질 만큼. 하이톤의 미성이 매력적인 아이돌 메인보컬이기에, 다양한 음역대를 부드럽게 넘나들며 연기를 해야 하는 뮤지컬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느껴졌다. 그 한계를 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프랑켄이 아주 좋은 분기점이 되어준 것 같다. 대사뿐만이 아니라 넘버를 부를 때도 견고하게 발음을 꾹 누르며 딕션에 신경을 쓴다거나, 울림통을 음역대에 맞게 바꿔가면서 필요한 부분에 강세와 힘을 주며 넘버를 한층 다채롭고 풍성하게 구성하는, 정직하기에 더 매력적이고 든든한 발성과 노래가 정말 좋아졌다. 페어마다 관계성이 달라지는 프랑켄 작품 특성 덕분인지 캐릭터 연구와 노선에 대한 탐구 역시 깊어졌다. 번점 2막에서 택인우가 "현빈이 너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오래 해!" 라고 버럭 소리 지르는 순간, 그 광공력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을 정도로 짜릿했다. 관극 후에 후기를 찾아보니 이날 택인우 노선이 평소와 달랐다고 해서 더 좋았고. 다음 필모가 기대되는 '배우'로 정택운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뿌듯하고 반갑고 기쁘다.
작품은 예상했던 대로 취향은 아니었다. 목재 질감의 무대 구조물과 바닥의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입체적으로 장면을 전환하는 무대 연출은 아주 좋았지만, 기승전결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낡고 길었다. 관객이 원작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보다는 극 중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대에 발맞추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앙상블들이 사랑스럽고 톡톡 튀어서 감내하고 볼 수 있었다. 1막 내내 비가 오는데, 빅스가 리메이크한 R.ef 이별공식의 '이별 장면에선 항상 비가 오지 / 열대 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 라는 가사가 자꾸 떠올라서 웃음이 배실배실 나왔다. 칠판에 적혀있던 'ㅇㅅㅇ' 이모티콘도 그렇고, 택인우 본체가 엮인 사소한 요소들이 재미를 더했다.
"자 마시자
우린 오늘 좀 마셔야겠어
버스 끊길 걱정도 없잖아
오늘 하루 정돈 필름 끊겨도 돼"
홍아센 오케피트에 오케스트라가 있는 걸 처음 봤는데, 이 극의 서정성을 잘 살려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다만 장면 전환을 포함하여 모든 장면에서 효과음과 배경음악이 절대 끊기지 않아서, 음향이 조금만 더 빵빵했다면 귀가 피로해졌을 것 같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솔로곡 아니면 떼창인 넘버들이 좋더라. 조명과 영상 연출도 깔끔하여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2막에서 현빈이 라이터를 켜는 클라이막스 장면은 배우가 뜨겁지 않을지 걱정되며 극이 아니라 배우 손가락에 더 집중하느라 몰입이 와장창 깨졌다. 불이 탁, 켜지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러내리게 했는데, 그 직후의 몰아치는 깨달음은 하나도 감동적이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 한눈에 풍덩 사로잡히는 사랑이든, 그저 한눈에 알아보는 마땅한 사랑이든, 언젠가는 그런 사랑을 만나게 되리라 여전히 믿고 있다. 그 운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고 애정을 쏟고 있는 이 모든 사랑 또한 포괄적인 의미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밀씨가 나풀나풀 떨어져 작은 바늘 위에 꽂힐, 그 계산도 안 되는 기막힌 확률로 만난 인연들이고, 그 찰나를 알아본 내가 붙들고 사랑하고 덕질하는 운명이라고 말이다. 인연과 운명과 사랑으로 엮여 아끼게 된 모든 이들의 행복을 새삼스레 바라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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