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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들의 집
in 우란2경, 2022.06.17 8시
임강희 노라, 이석준 한인국, 김정민 김주연, 하성광 유진만, 장석환 신용진.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현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각색한 연극이라니. 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틈 날 때마다 매진 회차들 예매창을 들락날락하면서 어렵게 표를 잡았다. 우란에서 올리는 작품이라는 점도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원작의 날카로운 감각은 지독히 익숙하고 평범한 이야기로 둔탁해졌고, 송곳처럼 핵심을 찌르던 원작의 대사는 분노로 온 몸을 파들대면서도 말을 고르는 노라의 인내에 침묵했다. 인형의 집이라는 공간의 호칭과 시대가 요구하는 완벽한 여성상을 연기하는 노라의 이름 외에는 원작의 매력을 연상시킬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시공간을 바꿔 원작을 각색한 의도를 알 수 없는 극이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공간을 런웨이처럼 활용한 연출이나 무대 천장의 영상 연출은 좋았다. 법은 개정되었으나 소급이 되지 않으므로 과거의 범죄는 처벌할 수 없다거나, 이혼할 수 있는 법적 조건이 아직도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짚어서 사회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고화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노라 개인의 노력과 희생보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끔 만들었다. 너무나 익숙한 남성들의 헛소리가 듣기 어려울 정도였고, 극적 과장을 위해 바닥에 드러누워 발을 구르는 연출 지시는 너무 1차원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은유보다는 적나라하게 직설적인 대사들이 많아서 곱씹을수록 참 아쉽다.
"매일 수백만명의 여자들이 그렇게 해."
자존심을 잃은 남자가 가만히 있겠느냐는 한인국의 겸연쩍은 말에 노라가 차분히 가라앉은 얼굴로 말한다. 수많은 여자들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노라고. 자신의 자존심보다 남성의 기분을 우선시하며 살고 있노라고. 매일매일 자신을 죽이고 남을 위해 살고 있었다고.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사회 구조로 고착화되고 주입된 불평등을 무력하게 좌시하거나 체념할 수는 없다. 여성들은 부당함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인형의 집 문을 박차고 나온 인형은 끝내 그 집을 산산조각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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