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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
in 두산아트센터 Space111, 2022.04.20 8시
황상호 역 이강욱, 이동욱 역 이형훈, 박영권 역 심완준, 강문실 역 문현정.
반복적이고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하루들이 누적되며 무기력과 무의욕이 만성적으로 굳어가고 있다. 원인이야 차고 넘치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아 막연하던 차에, 운 좋게 시간이 났고 타이밍 맞게 매진극의 표를 구했다. 죽음의 집에 방문해보면 죽음을 마주하고 생을 직시하며 삶을 채워갈 원동력을 조금이나마 얻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나의 무력감은 더 깊고 무심함은 더 짙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인지하고 나서야 하나씩 소중하게 늘어놓는 일상의 찰나들이 애틋하다기보다 도리어 숨통을 조여왔다. 무대 위의 언어가 무대 밖의 현실을 부정적으로 일깨우고 있음을 자각하는 찰나가 어찌나 허탈하고 막막하던지. 지금 정말 힘들구나, 나.
물론 명성대로 잘 짜인 극이었다.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 형광등이라는 일상적인 조명을 근간으로 시작하지만, 원근법을 가시화한 듯 무대의 안쪽으로 폭이 좁아지는 공간의 모양새와 지나치게 새하얀 벽과 천장과 바닥을 채우는 조명의 색감 차이가 야기하는 비대칭성이 비현실적인 감각을 유도했다. 장면마다 시의적절하게 바꿔내는 조명의 톤과 범위가 일관성과 대비감을 적합하게 선사하며 이야기의 질감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각적 효과에 더해 청각적인 요소에서도 창작진의 치밀함이 느껴졌다.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소음들이 뒤섞여 쏟아지는 그 너머로, 지독히 규칙적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굵고 무겁게 반복된다. 째깍째깍. 남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미쳐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청각 연출이 촘촘한 긴장감으로 극의 첫인상을 맺는다.
극을 보고 나니 포스터의 의미도 와닿는다. 신경질적으로 벽시계를 떼고 건전지를 빼는 첫 장면과 건전지를 넣고 조심스럽게 벽시계를 제 위치에 돌려놓는 마지막 장면의 수미쌍관적 구성은, 행위자의 존재가 다르기 때문에 보다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극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희미하게 깔리는데, 이는 대화의 일상성과 무관하게 상황의 비정상성을 환기시키며 극적 긴장을 더한다. 그 소리는 첫 장면의 복작복작한 일상 소음 같기도, 고요한 병실에서 외로이 생명을 이어가는 아득한 기계음 같기도 하다. 극 중 "코마 상태는 아닐 것이다"라는 언급이 있으나, 이를 통해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역으로 제시하는 인상을 준다.
왁자지껄한 대화가 오가는 상황에서, 무대 오른편 객석 바로 앞쪽에 쪼그려 앉은 상호에게만 붉은 톤의 조명이 강렬하게 비치며 이질감을 드러낸다. 한쪽에 집중하면 다른 한쪽의 대사는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두 개의 대화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며 목소리들이 물리는 연출도 서너 번 반복되는데, 소통하되 어긋나는 관계를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광란의 내부와 막막하고 고독한 발코니 너머 외부의 대비가 선연하고, 극단적으로 선언하는 명명과 실질의 간극이 아찔하다. 그냥 있자, 라는 상호의 말에 "그래 그냥 있자!" 라고 시원하게 답하는 동욱과 "그래 그냥 잊자니까!" 라고 기껍게 동의하는 영권의 관점은 명확히 다르다. 살아있음의 이유로 월급을 언급하는 동욱의 멋쩍은 표정과, 그 월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뜻이니 멋있다면서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은 없고 해야 할 일만 있다고 말하는 문실의 허망한 얼굴 또한 전혀 다른 질감이다. 확연히 달라진 동욱과 상호의 거리는 생과 사의 위치를 절감케 한다.
죽음이란 결국, 잊혀짐일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흐릿해지는 존재감. 죽음의 집은 대체 어떤 장소인가. 그 공간 안에서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을 주장하던 이들이 마주한 충격적인 상황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는가. 다양한 연출이 상징하고 의도한 바는 무엇인가. 관객으로 하여금 곱씹고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음"을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관극을 하기 전과 후의 나는 완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톰브라운 브랜드 시그니처인 상의 왼팔 가로줄을 만날 때마다 이 극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유난히 아름다운 코스모스를 발견할 때마다 확실히 발걸음을 멈추게 되겠지. 둔탁해졌던 감각은 경험을 통해 다시 벼리고, 날카로워진 인지는 또 다른 도전으로 삶을 이끌어주리라 믿으며 다시 일상으로 뛰어들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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